팬택 '베가 팝업노트'는 100점을 줄 만한 제품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시장에 적절한 제품임에는 틀림없다. 이 정도 제품이 지금 시장에 필요하다.

팬택은 지난 6월부터 베가 팝업노트 출시를 벼르고 있었는데, 워크아웃과 법정관리를 거치면서 제때 생산을 하지 못했다. 결국 세상의 빛을 못 보나 싶더니 11월 말 드디어 세상에 발을 내디뎠다. 여전히 매각을 둔 불안감이 남아 있지만 제품 자체는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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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가 팝업노트의 프로세서는 스냅드래곤 801이다. 요즘 플래그십 제품의 대세는 스냅드래곤 805인데 한박자 정도 늦은 셈이다. 팬택은 적어도 새 프로세서는 삼성과 LG에 뒤지지 않을 만큼 빠르게 받아들여 제품을 내놓았다. 거의 분기마다 신제품을 내놓을 만큼 회전이 빨랐던 체질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마 이번 제품은 출시 시기를 놓치면서 최신의 프로세서를 쓰지는 않았다. 디스플레이도 너도나도 내고 있는 2560×1440은 아니고 1920×1080 픽셀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베가 팝업노트가 성능이 떨어지는 폰은 아니다. 풀HD 정도의 해상도면 여전히 매우 좋은 화질을 낸다. 또한 퀄컴의 스냅드래곤 800대 프로세서는 800부터 801, 805까지 그 자체의 성능에는 세대를 가를 정도의 큰 차이는 없다. 설계 아키텍처가 같고 그래픽 성능의 차이 정도가 있는데, 스냅드래곤 801로 못할 게임은 아직 없다. 퀄컴의 스냅드래곤 800 시리즈 제품은 아직 현역으로 뒤처지지 않는다. 중저가폰은 스냅드래곤 600이나 400 시리즈쪽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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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새 폰이 이른바 ‘최신사양’이 아니라서 걱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덮고도 남을 것이 바로 가격이다. 팬텍은 이 제품을 35만2천원에 판매한다. 통신사와 계약하는 출고가가 이 정도고, 실제는 여기에 보조금과 약정 요금 할인이 붙어서 거의 공짜폰에 가깝게 팔린다. 요즘 뜨거운 관심을 받는 중국 스마트폰도 결국 구입하면 이것보다 돈을 더 내야 한다.

‘이렇게 팔 수 있었는데 비싸게 받았던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팬택은 가격과 원가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고, 출시와 함께 박창진 부사장이 "통신비 부담으로 프리미엄 스마트폰 사용을 꺼리던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대안이 될 것”이라고 언급한 정도다. 하지만 사실은 묶여 있는 자금 회전을 위한 어쩔 수 없이 결정된 가격이다. 부품 원가에 최소 유통마진 정도로만 이뤄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가격 현실화가 아니라 팬택의 절박함이 묻어 있는 가격이다.

성능 외의 부분은 이전 '시크릿노트'나 '시크릿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근래 팬택의 UX는 별도 런처를 쓰지 않아도 아기자기하게 꾸밀 수 있는 요소들이 많고, 개인화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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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면의 지문인식 센서는 잠금을 풀고, 메뉴를 고르기도 하고, 앱이나 개인정보를 숨기는 용도로도 쓸 수 있다. 이 센서가 더해진 지도 1년이 넘어가고 있는데 아직 대중적인 앱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쓰고 있지는 않지만 팬택 스스로 시스템에 잘 녹여가고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펜이다. 이 펜은 스마트폰 옆의 버튼을 누르면 툭 하고 위로 튀어나온다. 뜻하지 않게 빠지지 않고, 뺼 때는 손톱으로 당기지 않아도 된다. 그냥 빠지지 않도록 한 이유 중 하나는 이를 DMB안테나로도 쓰기 때문이다. 펜 끝을 잡아당기면 DMB 안테나가 나온다. 제품을 뒤돌아보게 만들만큼 엄청나게 큰 특징은 아니지만 소소하게 재미를 주는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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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 이전 제품인 '베가 아이언2'에 비해 아주 예쁘다고 할 만큼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제품의 가치를 보면 성능이나 가격 모두를 따져도 현재 살 수 있는 스마트폰 중 가장 좋은 선택지로 꼽을만 하다. 그래서 최근의 팬택의 상황이 더 안타깝다.

스마트폰을 고르는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간 팬택의 제품은 매력적이게도 혹은 그렇지 않게 보이기도 했다. 스마트폰의 기기적 성능만 보겠다고 하면 퀄컴의 새 프로세서와 모뎀이 가장 빨리 적용되는 기기 중 하나다. 전반적으로 제품의 완성도나 기술력 자체도 삼성이나 LG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여러 가지 시도가 많았다. 일년에 4~5개의 신제품을 내놓지만 그 모두에 독특한 요소를 집어넣기도 했다.

문제라면 브랜드였을텐데, 스마트폰 자체가 패션 요소로 해석되면서 어느 회사의 제품을 쓰느냐가 중요한 요소가 됐고, 엇비슷한 고가 경쟁에서 팬택이 자리를 잡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보조금 경쟁에서 팬택 홀로 출고가를 낮출 수도 없었다.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시장 안에서 팬택은 꽤 선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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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상황에서 ‘팬택 살리기’ 같은 감성적인 말은 팬택에도 시장에도 좋은 말은 아니다. 단통법과 영업정지는 사면초가에 빠진 팬택을 더 어려운 사지로 몰았지만 한편으로 팬택엔 다시 기회가 될 수 있다. 시장은 작아졌지만 스마트폰 성능이 어느 정도 한계에 이르고, 제조사간 마케팅 보조금이 제품을 결정하는 경쟁력이 아니게 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팬택은 당장 해외에 제품을 팔지 않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가격을 맞춰야 하는 부담도 없다. 35만2천원은 정상적인 가격은 아니지만 적절한 선에서 성능과 가격을 조정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어떨까 싶다.

그런데 그게 바로 시장에서 팬택이 필요한 이유기도 하다. 베가 팝업노트는 절박함 속에서 꺼내 놓은 힌트가 될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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