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두는 2014년 5월 구글 뒷마당을 갈아엎었다. 그리곤 이곳에 인공지능 기술의 코어라고 불리는 딥러닝센터, 정확히는 인공지능센터 건물을 세워 올렸다. 바이두는 이를 위해 3억달러라는 큰 돈을 통크게 쏟아냈다. 2015년엔 이 분야 전문 연구자 200여명을 고용하겠다고 선언했다. 딥러닝 분야 최고 권위자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구글 출신의 앤드류 응 교수까지 영입했다. 전세계 기술 경쟁의 각축전이 벌어지는 한복판에 바이두는 보란 듯이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중국의 구글’ 바이두가 구글을 긴장시키고 있다. BAT라 불리는 중국의 3대 테크 기업 가운데 막내지만 성장 속도는 그 어디에 뒤지지 않는다. 바이두의 영향력은 아시아권을 넘어 실리콘밸리를 망라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수 소식, 지치지 않고 전달되는 신규 제품 출시 소뉴스는 바이두를 그저그런 ‘구글의 모방품’ 정도로 바라보는 기존의 인식을 철저하게 깨부수고 있다. 그 망치를 손에 쥔 이가 바로 바이두의 공동창업자 리옌홍이다.

▲  리옌홍 바이두 공동 창업자.(사진 : 플리커 keso s, CC by-nc-nd)
▲ 리옌홍 바이두 공동 창업자.(사진 : 플리커 keso s, CC by-nc-nd)

랭크덱스, 리옌홍의 운명을 바꾸다

공장 노동자 부모 슬하에서 넷째로 태어난 리옌홍은 자수성가형 천재과에 속한다. 매부리코에 호남형 외모, 점잖은 성격에 집념까지 갖춘 중국 최고 명문대학 졸업자이자 미국 뉴욕대 유학파. 여기에 29살에 첫 번째 특허를 미국에서 출원하고, 30살에 바이두 검색엔진의 기초가 되는 논문까지 발표했다. 그런 거침없는 20대의 경험이 오늘의 바이두를 일궈낸 밑거름이 됐다.

리옌홍의 천재성은 '랭크덱스'라는 검색엔진으로 터져나왔다. 랭크덱스 개발은 그의 운명을 바꿔놓은 결정적 사건이다. 그는 IDD 인포메이션 서비스에 근무하고 있던 1996년, 이 새로운 개념의 검색 알고리즘을 설계했다. 웹사이트의 품질 측정을 위해 하이퍼링크를 활용한 최초의 검색엔진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그리고 1997년 특허를 신청하고 논문도 발표했다.

랭크덱스의 핵심 개념은 '하이퍼링크 벡터 보팅'(HVV)이다. 구글 검색에 페이지랭크가 있다면 바이두엔 HVV가 있다. 하이퍼링크의 백링크값을 검색 랭킹에 반영하는 알고리즘이다. 리옌홍은 과학논문 인용 방식에서 이 알고리즘을 착안했다. 그는 1996년 랭크덱스에 먼저 적용했고 1997년 논문 ‘관련성 랭킹을 넘어 : 하이퍼링크 벡터 보팅’에서 공식 발표했다. 구글의 페이지랭크 논문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의 일이다. 1997년 그의 이름으로 특허 출원도 했다.

▲  바이두 검색엔진의 모태가 된 랭크덱스의 HVV 관련 알고리즘 특허. (출처 : 특허 문서)
▲ 바이두 검색엔진의 모태가 된 랭크덱스의 HVV 관련 알고리즘 특허. (출처 : 특허 문서)

리옌홍은 이듬해 ‘질적 검색엔진을 향하여’라는 논문을 통해 한결 개선된 HVV 방법을 제시해 한번 더 세상을 놀래켰다. 하지만 구글에 묻히고 말았다.

그의 아이디어는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자가 페이지랭크 특허 문서에서 인용할 만큼 탁월했다. 구글의 페이지랭크 알고리즘에도 영향을 미쳤다. 종종 바이두를 구글의 모방작 정도로 평가절하하지만, 이는 그의 소프트웨어 실력을 간과한 평가다.

그는 이 논문에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전통적인 검색엔진은 문서의 품질을 랭킹 결과에 고려하지 않는다. 하이퍼링크 벡터 보팅(HVV) 방법은 해당 문서의 하이퍼링크 수와 서술문을 가공함으로써 질적 차원을 랭킹 구조에 추가한다.”

1998년은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가 페이지 랭크의 원리를 담은 논문 ‘The Anatomy of a Large-Scale Hypertextual Web Search Engine’를 발표했던 때다. 이 두 논문이 공식 발표된 시점은 불과 2~3개월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2000년 대학 선배인 슝위와  바이두 공동창업

▲  구글 페이지랭크 특허 문서에 인용된 리옌홍의 랭크덱스.(출처 : 2000년 구글 특허 문서)
▲ 구글 페이지랭크 특허 문서에 인용된 리옌홍의 랭크덱스.(출처 : 2000년 구글 특허 문서)

리옌홍은 베이징대 동창이자 선배인 슝위와 함께 2000년 1월1일 바이두를 창업했다. 수십만달러 연봉까지 포기한 결정이었다. 이들은 송나라 시인 신기질의 시구 따 바이두(百度)라고 이름 지었다. 랭크덱스를 적용한 HVV는 바이두 검색엔진의 핵심 기술로 탑재됐다. 바이두는 구글보다 2년 뒤졌지만 중국에선 사실상 첫 검색엔진 전문 기업이었다.

리옌홍과 슝위의 인연은 미국 유학 시절로 되돌아간다. 1998년 인포시크 개발자로 일하고 있던 리옌홍은 회사에 잔뜩 불만을 품고 있었다. 조만간 디즈니에 회사가 인수될 것이라는 소문이 흉흉했기 때문이다. 디스니에 인수된다면 인포시크의 검색 기술은 사라질 운영에 놓일 게 뻔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검색은 인기 없는 서비스였다. 야후가 자사 검색엔진을 당시 스타트업이었던 구글에 외주를 줄 정도였다.

이 무렵 슝위는 실리콘밸리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었다. 생화학 박사였던 슝위는 나름 실리콘밸리에선 적잖은 투자자 인맥을 갖고 있었다. 때마침 리옌홍이 인포시크를 그만두고 자신에게 부탁을 해온 상황이었다. 리옌홍은 슝위를 찾아가 몰래 자신의 창업 아이디어를 알려줬다. 바로 검색엔진이었다.

슝위는 고개를 끄덕였고 펀딩을 맡겠다며 앞장섰다. 리옌홍은 검색엔진을 개발하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리옌홍과 슝위는 두 곳의 VC로부터 120만달러를 투자받은 뒤 중국으로 돌아가 바이두를 설립했다. 그것도 모교인 베이징대 캠퍼스가 내려다보이는 호텔방에서다.

▲  중국 베이징 중관춘에 위치한 바이두 본사.(출처 : 위키미디어 brunozzi, cc-by-sa)
▲ 중국 베이징 중관춘에 위치한 바이두 본사.(출처 : 위키미디어 brunozzi, cc-by-sa)

9개월이 지난 뒤인 2000년 9월, 미국의 두 벤처캐피털이 투자를 제안해 왔다. 이번에는 무려 1천만달러에 달했다. 당시는 전세계적인 IT 버블의 끝물이었다. 운이 좋게도 두 청년 사업가들은 바이두를 성장시키기 위한 씨앗자금을 수혈 받는데 성공했다.

모든 스타트업이 그렇듯, 초기 1~2년은 변변치 못했다. 이들은 자체 검색서비스를 선보이는 대신 중국 내 포털에 검색엔진을 공급하는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그러다 한계를 느낀 리옌홍은 자체 검색 서비스를 시작하기로 마음 먹는다.

리옌홍은 이사회를 소집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볼멘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왜 당장 돈 되는 서비스를 포기하려 하느냐는 불만이었다. 리옌홍은 투자자들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체 검색엔진 개발을 강행했다. 그리고 1년 뒤인 2001년 9월, 중국의 검색엔진 바이두닷컴이 마침내 문을 열었다. 분명 첫화면은 구글을 베낀 듯 닮아 있었다.

바이두는 검색서비스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고 곧바로 미국 시장 기업공개(IPO) 준비에 들어갔다. 리옌홍의 한길만 파는 전략은 정밀했고, 2005년 8월5일 성공적인 기업공개로 마무리됐다. 당시 바이두는 40억달러, 우리 돈 4조원에 이르는 기업으로 가치를 평가받았다. 중국의 구글이라는 칭호와 함께 미국 시장 내에서 혁신적인 기업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매출 규모 네이버 4배... 페이스북 뒤쫓는다

▲  2007년 이후 바이두 매출 성장세.(출처 : 스타티스타)
▲ 2007년 이후 바이두 매출 성장세.(출처 : 스타티스타)

2014년 3분기 바이두 매출은 52%나 상승한 135억위안(22억달러)을 기록했다. 우리돈으로 무려 2조3998억원이다. 라인 매출을 합한 네이버의 3분기 매출액이 7천억원인 것과 비교하면 대략 3배가 넘는다. 순익을 비교하면 격차는 4배로 벌어진다. 바이두는 3분기 35억위안(우리돈 6368억)의 순이익을 냈고, 네이버는 1537억을 기록했다.

오히려 바이두는 페이스북에 비견될 만하다. 페이스북의 3분기 매출이 32억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격차는 적지 않다. 하지만 워낙 성장세가 빨라 둘의 격차가 앞으로 어떤 변화를 보일지 짐작하기 어렵다. 바이두의 전세계적 위상이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바이두의 고공비행은 리옌홍을 일약 세계적 부호 자리에 올려놨다. 그는 현재 알리바바 마윈에 이어 중국 내 2번째 부자로 등극했다. 그가 보유한 바이두 지분 15.9%의 현재 평가 가치는 약 12조원에 육박한다. 그의 아내 멜리사 마의 지분 가치까지 더하면 어마어마한 규모다. 지난 2013년에는 중국 최고의 부호 자리까지 꿰차기도 했다.

바이두가 아직도 '짝퉁'으로 보이는가

실리콘밸리에 건립된 인공지능센터는 바이두의 미래를 상징한다. 더 이상 '구글 짝퉁'으로 남지 않겠다는 선전포고로 들리기도 한다. 미국은 중국 시장을 쉽게 공략할 수 없지만, 중국은 미국 시장을 언제든 뛰어들 수 있다. 이런 불균형적 정치적 환경은 언젠간 리옌홍에겐 날개가 될 수도 있다.

꼬리표처럼 따라붙던 ‘구글 짝퉁’이라는 표현은 이제 더 이상 바이두에 어울리지 않는다. 어쩌면 구글이 바이두의 모방품일 수도 있다. 이렇듯 서로가 서로를 인용하고 참고하고 벤치마킹하며 전세계를 호령하고 있다. 누가 누구의 닮은 꼴인지는 의미가 사라졌다.

바로 지금, 구글 래리 페이지가 흠모했고 에릭 슈미트가 경계했던 바이두는 구글을 뒤집을 수 있는 유일한 테크 거인으로 거듭나고 있다. 중국과 미국의 천재가 검색의 미래, 아니 IT 생태계의 미래를 위해 벌이는 승부는 그래서 더욱 흥미진진하다. 동양과 서양의 대결이고, 중관춘과 실리콘밸리의 대리전이어서 그렇기도 하다.

리옌홍은 2008년 모교인 베이징대 졸업 축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 가지에 미쳐야 차별화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남들이 해내지 못한 일도 할 수 있게 됩니다.” 검색에 미친 그가 무엇까지 이뤄낼 수 있을지 구글마저도 긴장하며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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