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경제에 좋은 서비스가 나오려면 경쟁이 잘 돼야 합니다. 공정한 조건 아래서 좋은 기술을 가진 업체가 자유롭게 나와 서로 경쟁해야 좋은 기술이 적정한 가격에 공급돼 생태계가 건전해지죠. PG사와 관련해 불합리한 부분이 여럿 있는 듯합니다."

▲  유창하 테크앤로 소속 미국변호사
▲ 유창하 테크앤로 소속 미국변호사

법무법인 테크앤로 소속 유창하 변호사는 여신금융협회가 내놓은 신용카드 저장 기준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핀테크포럼이 12월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디캠프에서 마련한 공개 포럼 자리였다. 한국핀테크포럼은 열악한 국내 핀테크 창업 환경을 개선하고자 핀테크 스타트업과 업계 관계자가 모인 단체다.

신용카드 회사가 모인 사단법인 여신금융협회는 지난 10월1일 온라인에서 신용카드 결제 서비스를 구현하는 결제대행회사(PG)도 신용카드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신용카드 정보 저장은 간편결제 서비스를 구현할 때 꼭 필요한 요소다. 아마존 원클릭 같은 해외 간편결제 서비스는 첫 거래 이후에 사용자 결제정보를 저장해두기 때문에 클릭 한번에도 물건값을 내준다.

반면 국내에서 온라인으로 물건을 살 때는 매번 카드번호를 입력해야 했다. 쇼핑몰에 온라인 결제 기능을 제공하는 PG사가 카드정보를 저장할 수 없도록 막아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진짜’ 간편결제 서비스를 만날 수 없던 이유다.

여신금융협회 발표 뒤에 ‘한국에서도 간편 결제 가능해진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하지만 아직도 온라인 쇼핑을 할 때는 일일이 카드정보를 입력해야 한다. 왜일까.

여신금융협회가 내놓은 기준이 터무니 없이 높아 웬만한 PG사는 엄두를 낼 수 없는 탓이다. 여신금융협회는 자본금 400억원 이상에 순부채 비율이 200% 아래인 PG사에만 카드정보 저장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또 보안 기준으로는 국제 금융보안 기준인 PCI-DSS 인증을 받고, 부정거래방지기술(FDS)도 마련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유창하 변호사는 이런 기준이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이 정도 기준을 갖출 만한 회사는 한국에 주요 은행이나 카드회사, 대형 포털 외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기준을 지키면서 사업을 할 수 있는 기술 스타트업이 몇이나 있을지 의문스럽습니다."

여신금융협회가 내놓은 기준은 핀테크 산업을 육성하려는 정부 기조에도 반한다. 유 변호사는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이 금융 신기술 회사에는 자본금 요건을 50억원으로 대폭 축소한 마당에 여신금융협회는 장벽을 높여 우수한 기술을 가진 젊은 기업이 못들어오게 하는 모순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Fintech_PG_Financial_Criteria_Problem_20141218_02
▲ Fintech_PG_Financial_Criteria_Problem_20141218_02

유창하 변호사는 PG사가 간편결제 시장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진입장벽을 세운 여신금융협회의 기준이 단합일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신용카드회사가 모인 여신금융협회가 간편결제 시장에서 경쟁 상대인 PG사의 발목을 꺾는다는 지적이다.

“카드회사가 (여신금융)협회 구성원인데, 이들이 나서 기준을 올려서 더 저렴하고 좋은 기술을 제공하는 업체가 시장에 나설 기회를 빼앗는 점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사업자 단체의 부당한 공동행위라고 지적한 사례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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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ntech_PG_Financial_Criteria_Problem_20141218_01

물론 금융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적절한 기준은 필요하다. 하지만 기준이 소비자 보호를 넘어서 시장에서 경쟁을 가로막으면 장기적으로 소비자도 손해를 입는다. 유창하 변호사는 “소비자 보호도 중요하지만 기준이 적정한지 봐야하고, 장기적으로 보면 경쟁 활성화를 통해 소비자 후생이 증진되는 면이 있으니 두가지 측면을 잘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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