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P2P 대출 사업을 시작했던 핀테크 스타트업이 철퇴를 맞았다.

금융감독원(금감원) 중소서민지원팀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 8퍼센트 웹사이트를 차단해달라고 요청했다. 대부업자로 등록하지 않고 대출을 중개해줬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2월2일 방통위는 8퍼센트 웹사이트를 차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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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percent_website_blocked_01

8퍼센트는 웹사이트를 플랫폼으로 투자자와 대출 신청자 사이에 다리를 놓는 P2P 대출 스타트업이다. 온라인으로 하는 계모임과 비슷하다. P2P 대출회사는 온라인에서 돈을 빌려줄 이와 빌려갈 사람이 만날 플랫폼을 제공하고 수수료를 받는다. 직접 자금을 운용하는 은행과 다르다. 지난해 말 렌딩클럽이라는 P2P 대출회사는 기업가치를 9조원으로 평가받으며 뉴욕 증권거래소에 성공적으로 상장했다. 중소상공인 전문 P2P 대출회사 온덱도 기업가치를 1.5조원으로 평가받았다.

▲  8퍼센트 웹사이트 갈무리
▲ 8퍼센트 웹사이트 갈무리

해외에선 가장 잘나가는 핀테크 사업 모델인 P2P 대출은 국내 법대로 따지면 불법이다.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유사수신행위법)에 따르면 금융회사나 대부업자로 인허가를 받거나 등록하지 않고 불특정 다수에게 돈을 모아 투자하면 불법이다.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불법으로 영업을 벌이니 웹사이트를 차단해달라고 금감원에 민원이 들어왔다고 방통위 관계자는 밝혔다.

온라인으로 고객을 만나고 사업을 벌이는 핀테크 스타트업이 웹사이트를 차단당하면 운영할 도리가 없다. 8퍼센트 이효진 공동대표는 “1차 베타서비스를 종료하고 2차 베타서비스를 내놓으려던 차에 사이트를 차단당했다”라며 “규제기관과 계속 협력하고 조율해 방법을 찾으면 서비스를 바로 시작할 수 있도록 꾸준히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  등록하지 않은 자가 수신업을 할 수 없도록 못박은 유사수신업법
▲ 등록하지 않은 자가 수신업을 할 수 없도록 못박은 유사수신업법

위에서는 '육성', 실무조직은 여전히 '쇄국'

금융위의 행적을 돌아보면 8퍼센트 웹사이트를 왜 차단했는지 의아하다. 8퍼센트는 이미 1월27일 금감원 핀테크상담지원센터에 질의를 넣어둔 상태였다. ‘현행법상 이런저런 점이 우리 사업에 걸림돌이 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겠느냐’라고 공식적으로 물어봤다는 얘기다. 핀테크상담지원센터는 지난 1월 금융위 대통령 업무부고 때 핀테크 육성 최전선으로 꼽힌 조직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신제윤 금융위원장까지 핀테크 시장을 키우겠다고 공언했다. 금융위는 지난 1월27일 핀테크 산업을 전방위로 육성하겠다는 IT·금융 융합 지원방안까지 발표한 터였다. 그런데 일선 실무조직은 ‘현행법과 맞지 않는다’며 핀테크 스타트업의 팔목을 꺾었다.

아이러니하다. 앞에서는 좋은 소리를 다 해놓고 막상 진짜로 핀테크 사업을 시작하려면 안 된다고 가로막으니 말이다. 구태언 테크앤로 대표변호사는 이런 상황을 대한제국 말 쇄국정책에 빗댔다.

“제한적 경쟁이라는 장벽 안에 자리잡은 국내 금융회사를 향해 밖에서 쓰나미가 몰려오는데, 이걸 금융당국이 세운 방파제로 막을 수 있을까요. 흥선대원군이 구한말 쇄국정책을 벌였다 근대화가 늦어져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우를 범한 것처럼, 금융산업이 규제로 쇄국정책을 취하다가는 핀테크 산업을 키울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습니다."

8퍼센트는 신규 대출을 중지하고 규제기관의 판단을 기다리는 중이다. 손정환 금융감독원 핀테크상담지원센터 선임검사역은 “다음 주에 8퍼센트와 사업 내용을 두고 회의하기로 했는데 다른 팀에서 차단을 요청했다”라며 “금감원에서는 8퍼센트 사업을 막기보다 위법적인 행위를 피해서 합법적으로 영업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려 한다”라고 설명했다.

현행법을 어기는 위험을 감수하고 사업을 시작했다고 8퍼센트를 나무랄 수도 있다. 하지만 베타서비스 기간에 진행한 대출 건에는 수수료를 물리지 않았기 때문에 불법 대부업을 벌였다고 단정짓기도 어렵다고 구태언 변호사는 지적했다. 불법 대부업이라면 대출을 중개하고 수수료를 얻어야 하는데, 8퍼센트는 수수료를 안 받았다는 설명이다. 이효진 대표는 "핀테크상담지원센터에 질의를 넣고 구청에 가서 대부업 등록 신청서를 접수하던 차에 웹사이트가 차단됐다는 연락을 받았다”라며 “오프라인 계는 합법인데 온라인은 불법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하다”라고 말했다.

도돌이표 규제 피하려면 '핀테크 콘트롤타워' 세워야 

이번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에 그칠 수도 있다. 금융위 안에서 서로 다른 조직끼리 손발이 안 맞은 탓에 문제가 불거진 문제이기 때문에 금융위 안에서 의견을 모으면 해결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앞으로도 서로 다른 규제기관끼리 엇박자를 내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핀테크는 IT와 금융이 만나는 산업이다. 인터넷과 금융 등 많은 산업군이 겹치기 때문에 규제 주체도 다양하게 얽힌다. 단순히 핀테크 업계 의견을 모아 원스톱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원센터를 꾸린다고 풀릴 문제가 아니다. 관련 부처가 힘을 모아 권한을 내 주고 핀테크 정책을 이끌어갈 조직을 꾸려야 한다. '컨트롤타워' 없이 중구난방으로 지원책만 쏟아내면 조만간 또 다른 8퍼센트가 나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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