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어두운 방. 급한 자료를 보내달라는 팀장의 전화에 부스스 눈을 뜬다. 가방에서 USB 메모리를 찾아 노트북 옆구리로 가져간다. 덜컥. 그럼 그렇지. USB는 절대로 한 번에 꽂히지 않는다. 돌려서 끼워볼까. 또 덜컥. 어라. 이번에도 실패다. 이쯤 되면 전등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켜고 USB 단자 모양을 확인해야 한다. 위인지 아래인지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제서야 USB는 기다렸다는 듯 노트북 옆구리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USB는 왜 항상 이모양일까. 포스트맨이 항상 벨을 두 번 울리듯, USB는 항상 세 번 도전해야 꽂힌다.

USB란 원래 이렇게 생겨먹은 물건이다. USB로 경험하는 짜증은 생활에서 마주치는 작은 불편 중 하나다. 하지만 바꿀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최신 ‘아이폰’ 사용자들은 안다. 아이폰 충전 단자 모양이 위∙아래 구분없는 라이트닝으로 바뀐 이후 사소한 짜증을 낼 일이 조금 줄어들었다는 것을. 애플이 새로 발표한 ‘맥북’에 적용된 새 USB 규격 ‘USB-C(USB 타입 C)’에 눈길이 갈 수 밖에. 위∙아래 구분 없는 USB-C는 사용자의 귀찮음을 덜어줄 작지만 고마운 차세대 USB 표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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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c_usb_c_1_800

새 맥북, ‘USB 3.1’과 ‘USB 타입C’ 적용

USB 규격은 USB 프로모터 그룹에서 표준으로 관리한다. USB 사양은 두 가지로 나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하나는 프로토콜이고, 다른 하나는 커넥터다. 프로토콜은 주로 전송 속도와 관련이 있는 표준을 말한다. 커넥터는 USB 모양을 정의한다. 프로토콜은 숫자로 표기하고, 모양은 영문 알파벳 A, B, C로 나타낸다.

좀 더 다양한 USB 제품으로 예를 들어 살펴보자. 노트북이나 데스크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직사각형의 검은색 USB는 USB 2.0 프로토콜을 따르는 USB 타입 A 모양 커넥터다. USB2.0 프로토콜 표준이 적용됐으니 전송 속도는 1초에 최대 480Mbps다. 직사각형 모양의 USB 커넥터는 USB 타입A를 따르기 때문에 그렇다.

만약 노트북이나 데스크톱 USB 구멍이 파란색이라면, USB3.0 프로토콜이 적용된 USB 타입A 커넥터다. USB3.0 규격에 따라 지원되는 최대 전송속도는 1초에 5Gbps, 기존 USB 부품과 함께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USB 타입A 모양으로 설계된 제품이다.

이번엔 새 맥북에 적용된 USB 타입C를 보자. USB 타입C 커넥터 모양은 지난 2014년 8월 표준으로 정해졌다. 위∙아래 구분이 없는 모양으로 설계돼 사용자가 쉽게 쓸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크기도 기존 USB 타입A와 비교해 작다. 노트북 등 제품을 작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새 맥북에는 USB3.1 표준도 적용됐다. USB 타입C 커넥터와 마찬가지로 2014년 8월 USB 프로모터 그룹이 표준으로 정했다. USB3.1의 가장 큰 특징은 전송 속도가 빨라졌다는 점이다. USB3.1 규격을 쓰면, 1초에 10Gbps 속도로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다. USB3.0과 비교해 두 배 빠르다. 2.5GB짜리 영화 파일을 2초 만에 전송할 수 있는 속도다. 애플은 새 맥북을 설명하며 USB-C라고 설명한 바 있는데, 이는 USB3.1 프로토콜이 적용된 USB 타입C 모양의 커넥터라고 풀어서 이해하면 된다.

▲  'USB 3.0 타입 A' 커넥터(위)와 'USB 2.0 타입 A' 커넥터
▲ 'USB 3.0 타입 A' 커넥터(위)와 'USB 2.0 타입 A' 커넥터

범용성 높지만, 보편화는 아직

업계에서는 빠른 속도로 USB 타입C 커넥터와 USB3.1 표준이 확산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범용성이 높고, 무엇보다 편리한 덕분이다.

업계 관계자는 “빠른 속도로 넘어갈 것으로 생각을 한다”라며 “방향과 관계없이 아무렇게나 꽂아도 된다는 점에서 너무 편하고, 기존 USB 타입A와 비교해 크기도 작아 제품을 작게 디자인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새 USB 표준이 널리 퍼지려면, PC 제조업체의 도움이 필요하다. PC에 새 규격이 적용돼야 외장 하드디스크나 USB 메모리 등 액세서리 제조업체에서 제품을 만들어 팔 수 있기 때문이다. PC 제조업체가 새 USB 표준을 적용하려면 프로세서 제조업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새 USB 프로토콜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텔이 대표적이다.

인텔이 현재 출시한 최신 프로세서는 5세대 코어M ‘브로드웰'이다. 차세대 프로세서인 ‘스카이레이크’도 준비 중이다. 안타깝지만, 브로드웰과 스카이레이크 모두 USB3.1 컨트롤러가 내장돼 있지 않다. PC 제조업체가 브로드웰과 스카이레이크로 USB3.1을 지원하려면, 별도의 지원 칩을 달아야 한다는 얘기다.

PC 제조업체는 브로드웰이나 스카이레이크로 PC를 만들 때 3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인텔이 만든 별도의 USB3.1 컨트롤러 칩 ‘알파인릿지’를 구입해 탑재하거나, 인텔이 아닌 다른 업체에서 만든 USB3.1 컨트롤러 칩을 탑재하거나, 혹은 USB3.1 지원을 포기하거나.

제조업체가 과연 별도의 컨트롤러 칩을 적용하려고 할까. PC 제조업체 처지에서는 인텔이 프로세서 내부에 USB3.1 컨트롤러를 내장할 때 까지 기다리는 편이 편하다. USB3.1 표준이 그리 빠른 시일 안에 보편화 할 것으로 기대할 수 없는 까닭이 바로 여기 있다. 그때까지 애플은 USB3.1 프로토콜에 USB 타입C 커넥터를 지원하는 업체로 홀로 남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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