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에선 플랫폼이 가장 중요합니다. 개별 기술로 세계시장에 진출할 수 없어요. 개별 기술이 플랫폼 차원으로 녹아들어 플랫폼 단위로 경쟁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동안 대기업에 고도성장을 떠맡겨 왔기 때문에 플랫폼이라는 얘기는 갑자기 나온 얘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도 각 은행에서 전담부서 만들어 핀테크 개발하잖아요. 인식 체계는 금방 바뀔 수 없습니다."

▲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자문위원
▲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자문위원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자문위원은 핀테크 산업을 육성하려면 전체 생태계를 키우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3월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코리안리빌딩에서 세계닷컴과 세계파이낸스가 연 ‘핀테크 협업 성공 전략 세미나’ 주제발표 자리였다. 최공필 위원은 핀테크 생태계를 키우는 방법으로 핀테크 플랫폼을 마련해 해외에 수출하자고 제안했다.

“옛날에 물건 만들어 수출하듯 경제주체가 경제 행위하는 모든 방식을 플랫폼에 태워 해외에 뿌려 그걸 통해 다음번 먹거리를 확보하자는 겁니다."

‘각자도생’ 은행권, 감독당국이 이끌어야

패널토론에 나선 김주윤 흥국생명 사장은 우물 안에 갇힌 은행을 비판했다.

“제가 금융업계에 34년 있으며 봤습니다. 은행만 해도 나만 먼저 살겠다고 접근해요. 금융결제원이라는 전세계에 유례가 없는 금융허브를 갖고 있으면서도 이걸 활용해 은행 전체 기차를 높일 생각을 못했습니다."

김주윤 사장은 은행이 사용자 인증 도구로 일회용비밀번호(OTP)를 도입하던 때를 예로 들었다. 그는 은행이 처음 OTP 도입을 논의하던 당시에는 공동 규격을 만들어 모든 은행이 함께 쓰자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엇갈린 은행 사이에 분란이 일어나 지금처럼 시중은행 14곳이 각자 OTP 서버를 만들고 앱을 만들고 관리 인력을 두기 시작했다. 김주윤 사장은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다고 꼬집었다.

“이런 부분을 감독당국이 이끌어줬다면 OTP 하나로 모든 은행에서 거래할 수 있었을텐데요. 지금은 은행 4곳과 거래하려면 OTP 4개가 필요합니다. 당시에는 은행과 금융기관 수익성이 받쳐줘서 아쉬움이 없었던 것 같아요. 실수를 저지른 거죠."

박소영 한국핀테크포럼 의장(페이게이트 대표)은 한발 더 나아가 은행간 상호 연동을 제안했다. 한 은행과 서비스를 하면 다른 은행과 자동으로 연계되도록 하자는 주장이다. 지금은 핀테크 회사가 은행과 서비스를 연동할 때 각 은행과 따로 논의하고 은행별로 내부 보안성 심사를 거쳐야 한다. 이 때문에 어떤 은행에서는 쓸 수 있는 서비스를 다른 은행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일이 생긴다. 박소영 의장은 해외처럼 표준 규격을 만들고 이걸 준수하는 핀테크 회사는 바로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빨리 만들고 빨리 실패할 수 있는 기반 마련해야

이영환 건국대학교 교수는 핀테크 기술이 활발히 나올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안도 내놓았다. 핀테크 스타트업이 서비스를 시험 가동해볼 수 있는 테스트베드를 만들고, 아이디어를 시제품으로 빨리 만들어볼 수 있도록 샌드박스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영환 교수는 “기업 1만개, 2만개가 나와야 그 중에서 2~3개가 성공한다”라며 “이 중에서 세계적인 기업이 나오는 게 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영환 교수는 교육의 중요성도 역설했다. 금융거래가 비대면으로 바뀌는 와중에 남아도는 금융업계 인력을 핀테크 전문가로 재교육해야 한다고 이 교수는 얘기했다.

규제 예측 가능성이 핀테크 발전의 기본

법·규제 측면에서는 예측가능성을 확보하고 핀테크 서비스를 가볍게 시작할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구태언 테크앤로 대표변호사는 규제를 예측 가능하게 바꿔야 핀테크 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핀테크가 금융과 IT가 결합한 분야인지라 다양한 산업에 적영되던 규제를 한꺼번에 짊어진다. 이런 점이 핀테크 스타트업이 사업을 시작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구 변호사는 지적했다.

“(핀테크) 사업이 활발해지면 규제 문제가 바로 현실로 나타날 겁니다. 그러니 산업을 만들고 육상하는 면에서 초기부터 함께 법적인 구조를 검토해야 합니다. 법 규제를 바꾸고 없애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니 빨리 시작해야 합니다."

구 변호사는 법적 책임도 사업 규모에 비례해 부과해 핀테크 스타트업의 진입 장벽을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규모에 따른 진입장벽은 보험이나 사후감독을 통해 금융소비자에게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유도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핀테크 기업이 발전할 수 있을 겁니다. 책임도 규모에 비례헤서 지우고요. 과도기적 상황에서 책임과 능력 불일치가 금융소비자 피해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핀테크 산업 일으키겠다는 관점에서는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세계닷컴과 세계파이낸스가 3월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코리안리빌딩에서 연 '핀테크 협업 성공 전략 세미나' 패널토론. 왼쪽부터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자문위원, 구태언 테크앤로 대표변호사, 김유미 금융감독원 IT정보보호단장, 사회자 이인호 서울대학교 교수, 김주윤 흥국생명 사장, 박소영 한국핀테크포럼 의장, 이영환 건국대학교 교수, 참관한 김동환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국 전자금융과장
▲ 세계닷컴과 세계파이낸스가 3월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코리안리빌딩에서 연 '핀테크 협업 성공 전략 세미나' 패널토론. 왼쪽부터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자문위원, 구태언 테크앤로 대표변호사, 김유미 금융감독원 IT정보보호단장, 사회자 이인호 서울대학교 교수, 김주윤 흥국생명 사장, 박소영 한국핀테크포럼 의장, 이영환 건국대학교 교수, 참관한 김동환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국 전자금융과장

이영환 교수 역시 법·규제에 전향적인 태도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그는 단순히 자본금 규모를 내리는 데 그치지 말고 핀테크 서비스가 금융업계에 가볍게 들어와 실제로 서비스를 해볼 마당을 만든다는 차원에서 은행법을 리뷰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 교수는 개인정보보호법도 문제로 들었다. 개인정보보호법이 주민등록번호 보호에만 힘쓴 탓에 핀테크 회사가 금융정보를 활용해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을 길이 막혔다는 지적이다.

이영환 교수는 “중요한 개인정보보호법을 개선하려면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 오랫동안 고민해 정책을 만들어야 하는데, 담당 공무원이 자꾸 자리를 옮겨 일관된 정책이 없어져 주민등록번호가 문제인 것처럼 비춰진다”라고 풀이했다. 그는 “개인정보를 비밀번호나 키로 쓰는 사람이 잘못”이라며 “이런 것은 성찰하지 않고 전문적인 지식 없이 개인정보 유출만 막는 일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현장 목소리 정책에 반영할 것"

이날 세미나를 참관한 김동환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국 전자금융과장은 “엊그제 취임한 신임 금융위원장이 현장을 중시해 기회가 닿는 대로 매주 여러 현장을 찾겠다고 말씀하셨다”라며 “오늘 세미나에 참석한 것도 현장에서 나오는 인식과 과제를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김동환 과장은 낡은 규제를 빨리 개선해 핀테크 시장을 초기에 육성하고, 기존 금융회사와 핀테크 기업 사이에 간극을 좁히는 작업을 정부가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김유미 금융감독원 IT정보보호단장은 변화 관리와 협업, 소통 3가지를 강조했다. 핀테크 육성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니 그에 맞춰 감독기관이 관리 역할을 잘 해야 한다는 해석이다.

김유미 단장은 국내 금융 관련 IT가 많이 발전했지만 그동안 특정 기술을 강요해 온 규제 때문에 국내에서 폐쇄적으로 개발된 탓에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기는 힘들었다고 평가하며 “금융당국과 핀테크 기업, 금융회사 세 주체가 협업하고 열린 마음으로 서로 열심히 소통해서 변화하면 소비자가 원하는 더 편리하고 안전한 금융서비스를 만드는 계기가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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