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미디어인 시대다. 언론사를 거치지 않아도 다양한 채널로 기업의 메시지를 소비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 막강한 유통 파워로 언론사 이상의 도달 효과를 내는 기업들도 출현하고 있다. 전통 매체에 의존하던 기존의 홍보 관행이 서서히 바뀌고 있는 흐름이다. 이를 통상 '브랜드 저널리즘'이라고 표현한다.

이와 관련해 황당할 수 있지만 흥미로운 가정을 해보자. 만약 네이버 뉴스 검색 상단에 기업 보도자료나 공식 입장문이  노출된다면 사용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기사를 신뢰할까, 보도자료를 신뢰할까. 천차만별이겠지만 논란이 뜨거워질 건 분명해보인다. 다시 말하지만 가정일 뿐이다. 그러나 이 가정이 언제 현실이 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구글, 오는 9월부터 뉴스 검색에 기업 자료 상단 배치 계획

▲  구글 검색 'in the news'에 노출된 젤마토의 보도자료. (사진 : 구글 검색 캡처)
▲ 구글 검색 'in the news'에 노출된 젤마토의 보도자료. (사진 : 구글 검색 캡처)

<로이터>는 구글이 오는 9월 검색 결과 페이지를 일부 개편할 계획이라고 지난 3월11일 보도했다. 개편 계획이 구체화하진 않았지만 여기엔 다소 흥미로운 내용이 담겨 있다. 구글 뉴스 검색(in the news)에 기업의 성명이나 보도자료가 포함될 예정이라는 것이다.

구글 대변인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검색엔진의 목표는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정확한 답을 찾아주는 것”이라며 “기존 언론사나 소규모 틈새 언론사로부터 결과값을 반환한다는 의미이며 사실 보도자료도 여기에 해당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보도자료를 뉴스 검색 결과에 포함하는 안을 담은 검색 개편이 공식화 된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구글은 이미 몇몇 기업 키워드의 검색 결과값으로 보도자료를 뉴스 검색 상위에 노출하고 있다. 젤마토(Gelmato) 사례가 대표적이다. 구글 검색에서 ‘gelmato’를 입력하면 구글은 ‘뉴스 내 검색’ 상위에 보도자료를 보여준다. 물론 보도자료(press release)라는 문구가 명확히 표시돼있다.

이는 구글이 기사와 보도자료를 동일한 가치로 다루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기업의 브랜드 저널리즘을 검색엔진이 수용하는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음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같은 구글의 뉴스 검색 정책이 국내 포털로 이어진다면 국내 저널리즘 생태계는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다.

네이버 "기업 보도자료 검색 노출, 검토한 적 없다"

▲  네이버는 현재 청와대나 정당, 정부부처 입장 발표문 등을 뉴스 검색 카테고리 내에 서비스하고 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검색 화면 캡처)
▲ 네이버는 현재 청와대나 정당, 정부부처 입장 발표문 등을 뉴스 검색 카테고리 내에 서비스하고 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검색 화면 캡처)

국내 최대 뉴스 검색 서비스는 단연 네이버다. 대다수 국내 언론사가 네이버의 트래픽 세례를 받고 있다. 네이버 뉴스 검색 정책이 변경되면 언론사들은 분주해진다. 곧바로 대응책도 쏟아진다. 때론 기가 막힌 어뷰징 전략으로 응수하기도 한다. 이같은 현실에서 네이버가 기업의 보도자료를 뉴스 검색에 반영하고 노출 순위를 높일 경우 언론사가 받은 타격은 결코 작지 않다.

현재 네이버는 정치 분야에 한정해 홍보 정보를 뉴스 검색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를 테면 청와대나 정당, 정부부처의 공식 입장이나 보도자료는 언론사 기사와 묶여 ‘뉴스’ 검색 카테고리에 노출된다. 하지만 뉴스 검색 상단에 노출하지는 않는다. 제목 전문으로 검색하지 않는 이상 사용자가 청와대나 정부부처의 공식 성명 문서를 뉴스 검색 결과에서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네이버는 구글처럼 기업의 보도자료나 공식 성명 자료를 뉴스 검색에 반영할 계획은 없다고 했다. 김정우 네이버 홍보실 차장은 “노출되는 언론사는 제휴평가위원회를 통과해야만 하는 사안”이라며 “언론사 외에 기업의 보도자료를 노출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검토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네이버의 다른 관계자도 “아젠다로 논의할 만한 이야기인 것은 맞지만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런 사안은 단일 사업자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네이버 뉴스 검색에 콘텐츠가 노출되기 위해선 네이버 제휴평가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제휴 대상도 정기 간행물 및 방송통신사업자, 인터넷신문사업자로 한정돼있다. 방송, 신문 등 언론사가 아니면 현재로서는 네이버 뉴스 검색에 진입할 수 없다. 청와대나 정당 성명, 정부 정책브리핑 자료 등도 심사위원회를 통과한 매체들이다.

기업들은 작가 고용해 자체 뉴스룸 운영

▲  2012년 잡지 형태로 전환된 코카콜라 기업 웹사이트. (사진 출처 : 코라콜라 웹사이트 캡처)
▲ 2012년 잡지 형태로 전환된 코카콜라 기업 웹사이트. (사진 출처 : 코라콜라 웹사이트 캡처)

검색 서비스의 흐름과는 별개로 자체 뉴스룸을 구축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스타벅스나 맥도날드, 코카콜라는 기자를 직접 고용해 적극적으로 브랜드 콘텐츠를 생산한다. 언론사를 거치지 않고 스스로 미디어화 하려는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코카콜라는 2012년 기업 홈페이지를 매거진 사이트로 전환하고 작가 40명으로 편집국을 구성했다.

국내 대기업도 브랜드 저널리즘을 적극 수용하고 있다. 홍보마케팅 전문 잡지 <더피알>은 지난 1월7일 삼성전자가 자체 뉴스룸 구축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현대자동차그룹도 외부 에이전시와 제휴하는 형태로 홍보실 내에 편집 관련 부서를 설치한 상태다.

이 부서는 구글 등으로부터 검색엔진최적화(SEO)와 관련한 조언도 받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제작한 다양한 콘텐츠가 검색 결과에 상위에 노출되도록 하려는 전략이다. 국내 포털도 정확하고 유익한 내용이 검색 결과 상위에 노출되길 기대하고 있기에 현대차그룹은 콘텐츠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네이버 뉴스 검색과의 제휴는 현재 검토하지 않고 있다. 박동준 현대자동차그룹 홍보실 과장은 “포털로부터 제안이 들어오면 모르겠지만 우리가 직접 나서기는 어렵다”면서 “언론사와 관련된 부분이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 입장에선 포털 뉴스 검색 카테고리 안에서 언론사와 직접 경쟁하는 모양새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품질 높은 네이티브 광고에 기사가 설자리는...

▲  뉴욕타임스 온라인판에 게시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네이티브 광고. 앨런 튜링의 삶을 기술하면서 동시에 에니그마 머신의 작동 원리를 인터렉티브 앱으로 표현하고 있다.(사진 출처 : 뉴욕타임스 광고)
▲ 뉴욕타임스 온라인판에 게시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네이티브 광고. 앨런 튜링의 삶을 기술하면서 동시에 에니그마 머신의 작동 원리를 인터렉티브 앱으로 표현하고 있다.(사진 출처 : 뉴욕타임스 광고)

뉴스 검색 노출이 중요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강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은 “브랜드 저널리즘 콘텐츠가 뉴스 검색에 노출되든 다른 카테고리에 노출되든 그것은 큰 의미는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보도자료나 브랜드 콘텐츠가 언론사의 뉴스와 뒤섞여 혼란을 줄 수도 있겠지만 표기만 전제된다면 사용자들은 그 맥락에서 콘텐츠를 소비할 것이라는 얘기다. 오히려 강 연구위원은 “검색에 의한 노출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표적 수용자의 반응도가 의미 있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는 흐름”이라며 “검색 랭킹과 노출 정도가 메시지 전달의 핵심 요소는 아니다”고 말했다.

보도자료나 브랜드 콘텐츠를 뉴스 검색 안에 비중 있게 노출하는 정책은 양면적 효과를 낳는다. 보도자료를 오려붙이는 수준의 기사가 감소하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기업의 입장만을 반영한 일방적 정보가 수용자에게 직접 전달되는 부작용도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섣부른 예측이 될 수 있다. 브랜드 저널리즘은 기업이 제작하는 콘텐츠와 언론사가 생산하는 뉴스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기업과 언론사가 뉴스 검색 카테고리에서 콘텐츠 경쟁을 벌이는 상황은 지금은 가정이지만 내일은 현실일 수 있다. 앨런 튜링의 삶을 다룬 <뉴욕타임스>의 고품질 네이티브 광고가 브랜드 콘텐츠로 재포장되는 현실 앞에서 언론사는 마냥 위기론만 되뇌일 수는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저작권자 © 블로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