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반대운동 페이지가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해 신고를 했어요. 처음에는 페이지를 신고했는데, 페이스북 쪽에서 커뮤니티 표준을 위반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았죠. 그래서 추가로 그 페이지에 있는 특정 게시물을 신고했는데, 그것도 위반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  '동성애반대운동' 페이지를 향한 ㄱ씨의 두 번의 신고는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동성애반대운동' 페이지를 향한 ㄱ씨의 두 번의 신고는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커뮤니티 표준을 위반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페이스북 사용자 ㄱ씨는 얼마 전 페이스북에 개설된 페이지 한 곳을 규정 위반으로 신고했다. 페이지 이름은 ‘동성애반대운동’.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동성애 차별 발언을 적나라하게 쏟아내는 페이지다. 처음 ㄱ씨가 페이지를 신고했을 때 페이스북으로부터 받은 답변은 신고하신 페이지를 검토했으나 커뮤니티 표준을 위반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라는 메시지였다. 페이지가 아니라 해당 페이지에 게시된 특정 게시물을 신고했을 때도 페이스북에서 돌아온 답변은 마찬가지였다.

“분명 동성애 혐오를 담고 있는 페이지와 게시물인데도 페이스북 쪽에서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아 좀 실망스러웠어요.”

차별과 혐오는 현실세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차별과 혐오를 주요 소재로 콘텐츠를 만드는 그룹이나 페이지가 페이스북 가상 공간에 깃발을 꽂고 영토를 넓히고 있다. ‘좋아요’를 누른 이들은 혐오의 땅에서 쏟아내는 게시물을 여과 없이 취득한다. 이 같은 게시물을 마치 유머 콘텐츠인양 받아들이는 이들도 적잖다.

문제는 이 같은 게시물을 양산하는 페이지에 감시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다는 점이다. 혐오 발언을 접한 사용자가 페이스북 쪽에 해당 게시물이나 페이지를 신고해도 ‘커뮤니티 규정을 위반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답변을 받기 일쑤다.

▲  '김치녀'를 주요 글감으로 활용하는 페이지도 활발하게 활동 중인데, 이들 페이지에 대한 신고도 대부분 무시된다.
▲ '김치녀'를 주요 글감으로 활용하는 페이지도 활발하게 활동 중인데, 이들 페이지에 대한 신고도 대부분 무시된다.

 

신고 처리도 오락가락

‘김치녀’ 페이지는 여성에 대한 혐오 발언을 끊임없이 생산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중 하나다. 김치녀는 한국의 여성 집단 전반을 비하하는 의도가 담긴 신조어다. 김치녀는 주로 남성에 의존적이며, 과도한 소비를 즐기고, 여성이라는 점을 앞세워 이득을 취하려는 여성을 호명한다. 물론, 이 같은 잣대로 여성 집단을 분류하는 이들은 대개 남성이다. 멋대로 정한 기준을 따르지 않는 이들을 김치녀라고 싸잡아 정의하는 식이다. 2000년대 초반 유행한 ‘된장녀’보다 비난의 수위가 좀 더 짙은 말이다.에는 ‘된장녀’라는 말 덕분에 세상이 떠들썩했다면, 십여년이 지난 지금은 김치녀라는 말을 더 자주 볼 수 있다.

ㄴ씨도 최근 김치녀 관련 페이지 몇 개를 신고했다. 김치녀를 주제로 삼은 페이지는 부지기수다. 페이스북 검색창에 김치녀라고만 입력해도 20여건에 이르는 검색결과를 볼 수 있을 정도다. 그 중 12만여명이 좋아요를 누른 페이지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이 페이지에서 최근 올린 게시물에는 3천여개가 넘는 좋아요가 찍혀 있다.

ㄴ씨가 최근 한 달 사이 신고한 김치녀 관련 페이지는 총 네 곳. 이 중 세 곳에는 페이스북이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답변은 ㄱ씨가 받은 것과 같다. ‘커뮤니티 표준을 위반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일 처리가 독특하게 진행된 쪽은 네 번째 페이지다. ㄴ씨 설명을 따르면, 이 페이지도 처음엔 페이스북이 커뮤니티 규정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조금 시간이 흐르고 페이스북은 네 번째 페이지에 대해 ‘커뮤니티 표준을 위반하는 것으로 확인되어 삭제했습니다’라고 태도를 바꿨다. 페이지가 삭제됐음은 물론이다. ㄴ씨는 해당 페이지를 재차 신고한 적이 없다. 페이스북이 약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같은 신고에 대해 전혀 다른 판단을 했다는 뜻이다.

▲  '서로 존중하는 페이스북'이라는 구호가 민망하다.
▲ '서로 존중하는 페이스북'이라는 구호가 민망하다.

 

말뿐인 '커뮤니티 표준'

페이스북은 ‘커뮤니티 표준’ 중 ‘편파적 발언’ 항목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편파적 발언

페이스북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타인을 직접 공격하는 콘텐츠가 포함된 편파적 발언을 삭제합니다. △인종 △민족 △국적 △종교 △성적 취향 △성별 또는 성적 정체성 △심각한 신체적 장애 또는 질병

이처럼 보호받는 소수 그룹을 향한 적개심을 조장하는 단체나 개인은 페이스북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다른 모든 표준 조항과 마찬가지로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여러분의 신고가 중요합니다.


페이스북의 커뮤니티 표준에 따르면, 여성혐오 발언이나 동성애 차별을 담은 게시물은 삭제돼야 합당하다. 성별이나 성적 취향을 근거로 다른 이들을 공격하는 페이지는 삭제한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ㄱ씨가 신고한 동성애반대운동 페이지와 ㄴ씨가 문제라고 지적한 페이지 세 곳은 지금도 여전히 활동 중이다.

어떤 경우에 페이지가 삭제되는지, 반대로 어떤 내용은 신고가 반려되는지 페이스북쪽에서는 뚜렷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신고가 접수되면 누가 심사하는지도 모른다. 심사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불투명하다. 사용자는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

사용자들의 혼란은 페이스북에 혐오발언 페이지 삭제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온라인 서명운동 사이트 '체인지닷오아르지'에 지난 6월12일 '페이스북코리아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조장하는 콘텐츠를 삭제해야 한다'라는 이름의 서명운동이 등록됐다. 이 서명운동은 '김치녀'가 상징하는 여성혐오와 폭력을 기술하고 있다. 지금까지 총 7300여명이 서명에 참여했다.

서명운동을 처음으로 제안한 이는 "페이스북의 신고를 통해 혐오로 가득 찬 콘텐츠를 삭제하려는 사용자들의 많은 시도가 있었다"라며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커뮤니티 표준을 위반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라는 페이스북의 간단한 기술로 인해 광범위하게 무시당하고 있다"라고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  '체인지닷오아르지'에 등록된 페이스북 혐오 게시물 삭제 서명운동
▲ '체인지닷오아르지'에 등록된 페이스북 혐오 게시물 삭제 서명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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