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사에서 블록체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봤다. 블록체인은 사용자가 직접 기록하고 검증하고 관리하는 공개 거래장부다. 블록체인을 쓰는 사용자 컴퓨터에서 연산력을 빌려오는 P2P 네트워크 형식으로 존재한다. 블록체인에는 거래내역뿐 아니라 일정 크기 데이터를 기록할 수 있어 데이터베이스(DB)나 인증 수단으로 활용한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핀테크 얘기를 하겠다. 금융 서비스에 블록체인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살펴보자. 우선 왜 블록체인이 금융서비스를 혁신하는 밑거름이 되는지 살펴본 뒤 실제 사례도 소개한다.

블록체인이 금융을 혁신하는 까닭

먼저 블록체인 기술이 가진 특정을 돌아보자. 블록체인은 거래장부를 P2P 네트워크상에 공유하고 관리한다. 블록체인을 작성하고 검증하는 이는 그 블록체인을 활용하는 사용자다. 주인이 곧 고객인 셈이다. 은행이나 신용카드 회사 같이 거래를 중개하고 보증하는 제3자 없이도 가치를 주고받을 수 있다. 이런 구조 때문에 다음과 같은 특징이 생긴다.

▲  블록체인 구조도 (출처 : 더씽 블로그)
▲ 블록체인 구조도 (출처 : 더씽 블로그)

첫째, 블록체인의 신뢰성을 담보할 중앙집중적 조직이나 구조가 필요 없다. 블록체인 시스템 자체가 그 안에 담긴 기록의 무결성을 증명하고 보증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블록체인을 활용하면 고도의 인프라를 구축하지 않고도 안전하고 편리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시스템 구축 및 유지보수 비용이 줄어드니 당연히 금융거래에 드는 비용도 아낄 수 있다. 덕분에 금융 서비스의 문턱이 낮아진다. 블록체인을 활용하는 금융서비스 대부분은 P2P 분산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덕분에 얻은 안전성과 경제성을 활용한다.

둘째, 인터넷처럼 분산된 구조라 중앙집중적인 기존 금융 시스템보다 안전하다. 은행은 서버를 해킹당하면 데이터가 조작될 수 있지만 블록체인은 일정 규모에 도달하면 사실상 조작이 불가능하다. 또 모든 사용자(노드)가 거래장부를 갖고 있기 때문에 네트워크 일부에 문제가 생겨도 전체 블록체인이 작동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핵전쟁이 나도 거미줄처럼 연결된 인터넷은 살아남는다는 얘기와 같은 맥락이다. 블록체인을 '가치의 인터넷'(internet of value)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셋째, 거래 내역이 투명하게 공개된다. 지금껏 금융 거래는 금융회사와 거래 당사자 사이 비밀이었다. 블록체인은 모든 거래내역을 기록하고 공유한다. 어떤 금융 시스템보다 투명하고 추적하기 쉬운 시스템이다.

넷째, 고객정보가 필요 없다. 블록체인을 쓸 때는 내가 누구인지 증명할 필요가 없다. 그냥 쓰면 된다. 은행이 받아주지 않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나 신용불량자도 인터넷만 쓸 수 있다면, 때로는 휴대폰만 있어도 블록체인을 통해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사용자가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면서도 익명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개인정보를 수집하지 않으니 고객 개인정보를 보관하고 관리하는 데 자원을 쓰지 않아도 된다. 해킹당해도 개인정보 유출로 비난받을 일도 없어진다.

익명성을 이용해 불법거래에 악용될 수 있지 않냐고 지적할 지도 모르겠다. 세 번째 특성을 돌이켜보자. 블록체인은 모든 거래내역을 공개한다. 누가 발행하고, 누가 누구한테 전달했는지 모두 기록되는 장부를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면 ‘나 잡아가쇼’하고 자수하는 셈이다.

실제로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온라인 암거래상 ‘실크로드’에서 마약을 사고판 사람을 죄다 잡아들였다. 비트코인 블록체인을 들여다보고 실크로드에서 일어난 거래 내역을 고스란히 추적한 덕이다. 비트코인 거래장부에 기록된 게 익명이라고 해서 모든 과정이 보호되는 건 아니다. 처음 현금을 주고 비트코인을 사거나, 비트코인을 현금화할 때는 결국 실명이 밝혀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비트코인의 익명성을 ‘유사 익명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마약 운반 등 혐의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은 온라인 암거래 사이트 '실크로드' 운영자 로스 윌리엄 울브리히트 (가운데, 출처 : 프리로스닷오아르지)
▲ 마약 운반 등 혐의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은 온라인 암거래 사이트 '실크로드' 운영자 로스 윌리엄 울브리히트 (가운데, 출처 : 프리로스닷오아르지)

크게 4가지로 블록체인의 특징을 살펴봤다. 이제 이런 특성을 활용하거나 활용하려고 준비 중인 사례를 살펴보자. 각 사례는 4가지 특성을 제각각 버무려 활용한다. 큰 조직이 블록체인을 채택한 사례는 해외뿐이다. 국내에서는 스타트업 몇 곳이 고군분투 중이다.

나스닥, 장외 거래에 블록체인 기술 도입

미국 장외 주식거래소인 나스닥을 운영하는 나스닥OMX그룹은 2015년 5월 나스닥 프라이빗 마켓에 블록체인 기술을 시범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나스닥 프라이빗 마켓은 2014년 1월 문 연 장외시장이다. 이곳에서는 비상장 회사가 투자받거나 주식을 거래할 수 있다. 나스닥OMX그룹은 비교적 작은 곳에 먼저 블록체인 기술을 채택해보기로 결정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나스닥OMX그룹은 지금껏 변호사가 직접 처리하던 거래승인 절차를 자동화하는 데 블록체인을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블록체인 시범 도입을 “산업 규모 기획”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건대, 블록체인을 본격적으로 채택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짐작된다. 로버트 그레이필드 나스닥 최고경영자(CEO)는 “실물 증권을 관리하는데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는 일은 디지털로 진화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말했다.


▲  뉴욕 타임스퀘어에 있는 나스닥 증권시장 현황판 (출처 : 플리커 CC BY bfishadow)
▲ 뉴욕 타임스퀘어에 있는 나스닥 증권시장 현황판 (출처 : 플리커 CC BY bfishadow)

오버스톡, 회사채 블록체인에 발행

대형 e쇼핑몰 오버스톡은 6월5일 회사채를 블록체인 위에 발행했다. 패트릭 바이른 오버스톡 CEO는 모두 2500만달러어치 회사채를 발행할 것이라고 <와이어드>에 밝혔다.

오버스톡은 공개 거래장부인 블록체인을 이용해 증권거래소 같은 자산관리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공언해 왔다. 자사 회사채 발행은 이 계획의 출발점이다. 오버스톡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만든 공개 자산 거래 프로토콜을 ‘티제로닷컴(TØ.com)’이라고 부른다. 블록체인의 비가역성과 안정성, 신뢰성을 활용해 증권거래소 등 기존 자산시장에 진입하기 힘든 스타트업도 자금을 끌어모일 수 있도록 하는 게 궁극적인 목적이다.


OVERSTOCK.COM LOGO
▲ OVERSTOCK.COM LOGO

온두라스, 국가 토지대장 블록체인에 기록

중앙아메리카 최빈국 중 한 곳인 온두라스는 국가 토지대장을 블록체인에 기록하려 한다.

800만명이 사는 작은 섬나라 온두라스는 부패와 빈곤으로 악명 높다. 2013년 GDP는 1577달러였다. 세계투명성지수 부패 부문에서 온두라스는 104등을 기록했다. 웬만한 아프리카 국가보다 낮은 수치다. 토지대장도 허술하게 관리됐다. 피터 커비 팩텀 CEO는 “그동안 온두라스는 토지 명의 사기에 시달려왔다”라고 말했다. “온두라스 (토지대장) 데이터베이스는 근본적으로 해킹당한 터였습니다. 그래서 공무원들이 토지대장을 조작해 해변가에 부동산을 자기 명의로 돌릴 수 있었죠.” 60%에 가까운 땅은 공식적으로 기록되지도 않았다.

온두라스는 블록체인에 토지대장과 등본을 영구적이고 안전하게 기록해두려고 한다. 시스템 개발은 미국 블록체인 개발사인 팩텀이 맡는다. 피터 커비 CEO는 지난 1월부터 온두라스 정부와 협상을 벌여왔다며 시범 사업이 올해 말께 완료될 것이라고 <로이터>에 밝혔다.


니코시아대, 수업 수료증 블록체인에 발행

키프로스 최대 사립대인 니코시아대학교는 강좌를 끝까지 들었다는 증명서인 수료증을 블록체인 위에 발급했다.

2013년 말부터 수업료로 가상화폐 비트코인을 받기 시작한 니코시아대는 2014년 ‘가상화폐의 이해’라는 온라인 강좌(MOOC)를 개설해 9월 첫 수료생을 배출했다. 가상화폐에 관심이 높은 만큼 블록체인을 적극 활용했다. 비트코인 블록체인 위에 수료증을 데이터로 심어 넣고, 이것을 찾을 수 있는 해시코드를 수료생에게 나눠줬다. 덕분에 대학 본부 등 제3자의 개입 없이도 학생들은 강좌를 이수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게 됐다. 니코시아대는 다음처럼 블록체인 수료증의 이점을 설명했다.

“설령 니코시아대나 이 웹사이트가 사라지더라도, 인증된 해시코드가 공적기록으로 존재하는 한 사람들은 어떤 증명서든 진위를 확인할 수 있다."

수료증 같이 위변조를 막으면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 문서를 블록체인에 올림으로써 니코시아대는 유지관리 비용을 아끼면서도 위변조에서 안전한 인증 시스템을 확보한 셈이다.


키프로스 니코시아대 가상화폐 강좌
▲ 키프로스 니코시아대 가상화폐 강좌

코인플러그, 공인인증서 대체 인증수단 개발

국내에 대표적인 가상화폐 업체 코인플러그는 블록체인을 이용해 공인인증서를 대체하는 본인인증 기술을 개발했다. 금융거래 등에 필수적으로 쓰이는 본인인증 기술을 더 간편하면서 안전하게 만드는 방안으로 블록체인을 활용했다.

사용자가 은행 웹사이트에 접속해 인증서를 발급해달라고 요청하면 은행이 그 사용자에 해당하는 키값을 코인플러그에 전달한다. 개인정보는 주지 않는다. 코인플러그는 은행이 사용자를 특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만 갖고 그 사용자가 쓸 인증서를 만들어 암호화해 블록체인에 올린다. 은행과 사용자에게는 암호화한 인증서를 확인할 키를 돌려준다.

사용자는 개인정보가 고스란히 들어간 공인인증서보다 안전한 인증수단을 쓸 수 있고, 은행은 매번 인증기관에 수수료를 물지 않고도 안전하게 사용자가 본인임을 확인할 수 있다. 블록체인에 인증서를 등록하는데 드는 비용은 수십원 정도다. 블록체인을 활용한 ‘새로운 공인인증서' 기술은 JB금융그룹이 개최한 핀테크 경진대회에서 기술사업화 부문 최우수작으로 선정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  코인플러그가 국내에서 최초로 자체 개발해 상용화한 양방향 비트코인 ATM
▲ 코인플러그가 국내에서 최초로 자체 개발해 상용화한 양방향 비트코인 ATM

페이게이트, 블록체인 정산소로 활용하는 핀테크 플랫폼 발표

지급결제 대행회사(PG) 페이게이트는 14년 동안 쓰던 자사 뒷단 결제∙정산 시스템을 플랫폼으로 바꿔 핀테크 업체에 오픈 플랫폼으로 공개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세이퍼트 뱅킹 플랫폼(세이퍼트)’이라고 부르는 이 시스템은 집급∙정산∙에스크로 등 전자결제에 필요한 기능을 자동으로 처리한다. 세이퍼트 첫 번째 사용자는 페이게이트 자신이다. 박소영 페이게이트 대표는 지난 2014년 페이게이트가 세이퍼트로 처리한 대금이 1조2천억원 정도라고 밝혔다.

세이퍼트 플랫폼의 특징은 중앙 관리 주체가 없다는 점이다. 각 결제회사가 P2P 방식으로 연결돼 결제 플랫폼을 작동시킨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블록체인 기술이다. 세이퍼트 플랫폼에 연결된 결제회사가 다른 결제회사와 거래한 내역은 모두 블록체인에 암호화해 기록하고 결산일이 되면 기록을 불러들여 한꺼번에 정산한다. 블록체인을 데이터베이스이자 어음교환소(clearing house)로 활용하는 셈이다. 덕분에 외부 공인기관 없이도 거래 내역을 공증하고 신뢰할 수 있다.


▲  세이퍼트 뱅킹 플랫폼은 비트코인블록체인을 클리어링하우스로 사용한다 (페이게이트 제공)
▲ 세이퍼트 뱅킹 플랫폼은 비트코인블록체인을 클리어링하우스로 사용한다 (페이게이트 제공)

핀테크2.0, 블록체인이 주도한다

이 밖에도 아직 성과가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은 연구도 많다. 뉴욕증권거래소골드만삭스는 각각 가상화폐 관련 기업에 투자했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는 지난 4월 런던에 연구실을 꾸리고 금융산업에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하는 방안을 연구하겠다고 발표했다. 3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거대 금융그룹 바클레이도 자체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안에서 가상화폐 관련 기업을 키우고 있다. 삼성과 IBM도 손잡고 사물인터넷(IoT) 시대에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유럽은행감독청(EBA)은 5월 블록체인 기술이 금융 서비스의 비용을 낮추고 속도와 상품의 질은 향상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산탄데은행 소속 연구기관인 이노벤처스는 ‘핀테크2.0’이라는 보고서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은행이 절약할 수 있는 인프라 비용이 2022년까지 150~200억달러에 달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금융시장에 IT를 접목해 혁신을 일으킨 게 '핀테크1.0'이라면 '핀테크2.0'은 블록체인이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중앙 관리주체 없이 저비용으로 안전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는 전에 없던 가능성이다. 많은 해외 금융회사가 앞다퉈 블록체인 연구에 뛰어드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반면 국내에는 이처럼 적극적인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블록체인은커녕 가상화폐도 이해하지 못하는 핀테크 담당자가 부지기수다. 이건 그들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가상화폐와 그 뒷단 기술을 활용하려는 조직 차원의 의지가 부족한 탓이다. 금융회사만의 문제라고 보기도 어렵다. 제도가 옭아맨 탓에 한국 금융회사가 혁신적인 기술을 받아들이기 힘든 면도 있다. 다음에는 해외 정부가 블록체인 기술에 뿌리 둔 핀테크2.0기업을 키우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살펴보려 한다. 이를 통해 국내 핀테크 논의에도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이 들어가길 바란다.


블록체인 속 핀테크를 보다


  1. 블록체인이란?

  2. P2P 금융 혁신

  3. 블록체인 품는 정부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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