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시메모리 가격은 점점 저렴해지고 있지요. 제가 처음 플래시메모리를 저장장치로 접한 것은 8MB를 담을 수 있는 USB 저장장치였는데, 당시에 10만원 정도 주고 구입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도 디스켓 몇 장을 쉽게 가지고 다닐 수 있고, 데이터도 훨씬 안전했지요. USB 1.1로 1초에 1~2MB씩 읽어내는 속도는 디스켓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신세계가 열리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작은 용량과 그에 비해 엄청나게 비싼 값으로 하드디스크를 대체하는 것은 꿈만 같은 일이었지요. 하지만 이제는 PC에 하드디스크 대신 SSD를 쓰는 게 전혀 새롭거나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플래시메모리를 선택할 때 중요하게 따져야 하는 부분이 바로 메모리의 방식입니다. 요즘은 주로 MLC와 TLC 방식의 플래시 메모리가 쓰입니다. 흔히 MLC는 ‘좋은 것’, TLC는 ‘안 좋은 것’으로 꼽히곤 하는데 마냥 좋다 안 좋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 용량과 속도에 따라 각각의 특성에 맞는 기기를 맞춰 쓰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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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D_3

기록 셀 하나에 얼마나 담을까

꼭 맞는 메모리를 골라 쓰려면 MLC와 TLC가 뜻하는 게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할 겁니다. 이 표기법은 낸드 기반의 플래시메모리 설계 방식을 말합니다. 차이는 데이터를 저장하는 단위인 ‘셀(Cell)’ 하나에 데이터를 얼마나 많이 넣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초기 플래시메모리를 쓴 저장장치들은 대부분 SLC 방식의 메모리를 썼습니다. SLC는 '싱글레벨셀'(Single Level Cell)의 약자입니다. 반도체 한 블럭에 비트 정보를 한 개씩 저장하는 방식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기대하는 것처럼 입출력 속도가 빠르고 반응도 빠릅니다. 셀당 쓰고 읽는 데이터의 양도 줄어들기 때문에 수명도 깁니다. 하지만 값이 비쌉니다. 용량도 그만큼 작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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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martphone_memory

그래서 이를 개선해보고자 한 것이 바로 MLC입니다. '멀티레벨셀'(Multi Level Cell)를 줄인 말입니다. 셀 하나에 여러개의 비트를 넣을 수 있습니다. 그만큼 용량이 늘어나는 것이지요. 셀당 2개의 비트를 넣으면 용량이 2배, 3개의 비트를 넣으면 용량이 3배로 늘어납니다. 같은 크기의 방을 혼자 쓸지, 둘이 쓸지를 정하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애초에는 여러 개의 비트를 넣는 것을 MLC라고 불렀는데 제조사들이 기술적으로 한동안 2개의 비트밖에 넣지 못해서 자연스럽게 한 셀에 2비트를 저장하는 것을 MLC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시장에서 MLC라고 사면 셀당 2비트를 쓰는 플래시메모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 MLC는 당연히 SLC에 비해 저장 용량이 큽니다. 똑같은 240GB SSD라고 해도 훨씬 저렴합니다. 이 셀을 SLC로 쓰면 120GB밖에 못 쓰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콘트롤러는 2비트를 모아서 기록해야 하기 때문에 SLC에 비해 속도가 느립니다. 셀 안에 있는 2비트 데이터 중에서 1비트를 수정하려고 해도 나머지 1비트까지 묶어서 다시 2비트로 만들어서 저장하기 때문입니다. 예전 SSD를 쓴 PC가 멈칫멈칫하는 ‘프리징’ 현상이 일어난 이유도 이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MLC의 기록 방식은 수명에도 영향이 있습니다. 보통 플래시 메모리는 한번에 한 셀씩 딱 잘라서 기록하지 못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주변에 함께 있는 블록 단위의 셀이 함께 기록됩니다. 예를 들어 셀 100개가 한 블록으로 묶인다고 하면 MLC는 200개의 정보가 담기게 됩니다. 셀의 정보가 새로 기록될 가능성이 확률적으로도 2배 이상 높아집니다. 실제로는 훨씬 높아지고요. 이 때문에 MLC 방식의 플래시메모리는 SLC에 비해 수명이 10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속도·용량·수명의 3박자

‘MLC 플래시메모리는 좋은 것 아니었나?’라고 하실 수 있겠네요. 위에 이야기한 것은 사실 초기에 지적되었던 부분이고 최근에는 콘트롤러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상당부분이 개선됐습니다. 머뭇거림도 없고, 기록 속도도 빨라졌습니다. 내구성도 기존 SLC 못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MLC는 자연스럽게 대세로 자리잡게 됐습니다.

그러자 업계는 다시 한 단계 더 깊이 파고 들어갑니다. TLC입니다. 이는 '트리플레벨셀'의 약자입니다. 이름 그대로 셀 하나에 3비트씩 기록하는 물건입니다. 용량은 SLC에 비해 3배나 늘어납니다. 값이 훨씬 내려가지요. 플래시메모리의 가격 전쟁이 심화되면서 이제는 더 많은 저장공간을 싸게 만들어야 이윤을 남길 수 있게 됩니다. 업계는 TLC 역시 콘트롤러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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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D_2

하지만 아직까지 시장은 TLC 메모리에 대해 반신반의하고 있습니다. SLC에서 MLC로 넘어가는 것만큼 특성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셀당 기록 속도는 더 느리고, 수명은 더 짧습니다. 대신 용량이 늘어나니 값은 싸지요. 업계는 한 셀에 4비트를 쓰는 QLC(Quad Level Cell)까지 내놓고 있습니다.

TLC는 기록이 그렇게 잦지 않은 디지털카메라나 스마트폰의 저장장치로 쓰는 편이 좋습니다. PC의 SSD로도 조금씩 쓰이고 있지만 아직은 초기 MLC 방식 플래시메모리만큼이나 인식이 썩 좋지는 않습니다. 돈을 더 주고라도 MLC를 쓰겠다는 수요도 많습니다.

가장 많이 탈이 나는 것이 바로 차량용 블랙박스입니다. 차량용 블랙박스는 자동차가 운행하는 동안 영상을 플래시메모리에 쉬지 않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기록공간이 가득 채워지면 과거 영상부터 지웁니다. 풀HD 등 영상 화질이 좋아지면서 영상의 용량도 늘어납니다. 그렇게 자주 반복해서 기록하다보면 결국 플래시메모리가 고장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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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2

'블랙박스에는 MLC, 디카에는 TLC' 용도 따라 달라

SLC는 아직도 값이 비쌉니다. 완전한 안전성이 필요한 작업에는 여전히 SLC 기반의 플래시메모리가 쓰입니다. 기업용 스토리지가 주 대상이겠네요. MLC는 가장 범용적으로 쓰이는 플래시메모리입니다. 일반 PC용 저장장치로 주로 쓰이고, 요즘은 ‘채널’ 개념을 도입해서 처리 속도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보통 플래시메모리를 구입한다고 하면 가장 무난한 게 바로 이 MLC입니다. TLC는 가격이 매우 쌉니다. 주로 마이크로SD카드 같은 소형 기기용 장치에 쓰입니다. 셀 자체의 수명이 짧기 때문에 아직은 하드디스크를 대체하는 시스템 드라이브에 마음놓고 쓸 정도는 아니지만 TLC플래시를 쓴 SSD도 출시될 정도로 발전하고 있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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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lash_storage

일반적인 용도로는 SLC를 구입하는 건 과할 뿐더러, 요즘은 제품도 흔치 않습니다. 하드디스크를 대체하는 용도와 자동차용 블랙박스처럼 반복해서 쓰기 작업이 많은 기기에는 MLC를 쓰는 게 좋습니다. 반면 데이터 휴대용이나 디지털카메라, 스마트폰의 보조 메모리 등에는 값이 싸고 용량이 많은 TLC 메모리가 효과적입니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32GB 마이크로SD카드가 1만원 남짓할 정도니 마음 편하게 쓰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중요한 데이터를 담아야 한다면 MLC를 쓰는 게 맞습니다. 대부분의 플래시메모리는 꽤 오랫동안 품질 보증을 해주니 TLC라고 마냥 제쳐둘 게 아니라 용도에 맞는 곳에 잘 쓰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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