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내려 헌법재판소를 왼쪽으로 두고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북촌이 나온다. 주소로는 서울시 종로구 가회동. 지리적으로는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한옥마을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북촌에서는 개발의 속도도 느리게 흐른다.

북촌은 아름다운 동네다. 옛 집과 현대의 상업시설이 조화롭게 들어앉았다. 최근 몇 년 사이 북촌이 서울의 새로운 관광지로 떠오른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시끄러운 동네이기도 하다. 한해 북촌을 찾는 관광객 수가 100만명에 이른다고 하니 주민들이 겪는 고충을 알 만하다. 해외 관광객을 실어나르는 45인승 관광버스가 매일 북촌의 도로변을 점렴한다. 그래서 북촌은 문제가 복합적인 공간이다. 자영업자는 더 많은 관광객이 오길 바라지만, 주민은 그렇지 않다.

그런 북촌에 기술이 비집고 들어갈 참이다. 오는 10월이면 북촌은 사물인터넷(IoT) 마을로 탈바꿈한다. 주거민과 관광객 사이에 얽힌 문제를 해결하고 주차와 상업시설, 쓰레기, 치안 등 각종 영역에서 기술이 제몫을 해주길 서울시청은 바라고 있다. 옛 마을과 첨단 기술의 융합이라는 점, 상업과 주거 사이에서 도시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힌 공간이라는 점. 서울시가 북촌을 첫 번째 IoT 시범특구로 선택한 까닭이다.

▲  최영훈 서울시청 정보기획과 국장
▲ 최영훈 서울시청 정보기획과 국장

민간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IoT 리빙랩'

이건 따지고 넘어가자. 지금까지 정부 사업은 발주와 수주로 이루어졌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책상에서 사업을 구상하면, 사업에 관심 있는 업체가 입찰 등 과정을 통해 사업을 받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이었다. 실용성이 담보되지 않은 탓에 실제 시민의 삶에 깊이 침투한 서비스를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관 주도 사업의 실패 사례는 일일이 말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많다. 예산만 낭비되고 잊혀지는 정부 사업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북촌 IoT 시범특구 조성계획의 핵심은 민간의 참여입니다.”

[rel]북촌 IoT 사업은 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최영훈 서울시청 정보기획과 국장은 3가지 관점에서 북촌 IoT 시범사업을 구상 중이다. 민간이 주도하도록 한다는 철학이 첫 번째고, 이를 통해 공간 기반형 IoT 서비스의 지속가능성을 실험한다는 게 두 번째다. 마지막으로 정부 사업이 떠안아야 하는 실패의 위험성 낮추겠다는 목표다.

북촌 IoT 시범사업의 민간주도 형태는 정부사업이 갖는 이른바 ‘눈 먼 돈’ 문제를 해결한다. 북촌 IoT 시범사업은 발주와 수주로 진행되지 않는다. 참여할 의사가 있고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은 누구나 북촌에 자신들의 기술을 펼쳐놓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서울시의 역할은 인프라 조성에만 머문다. 무선인터넷 연결을 위한 장거리 와이파이를 설치하고, 근거리 무선 통신을 위한 ‘비콘’을 마련하는 것에서 서울시의 역할은 끝난다. 북촌이라는 공간이 그 자체로 IoT 기술을 오픈 플랫폼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공간을 바탕으로 한 일종의 오픈 테스트 사업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기술 서비스 산업은 새로운 것이 나올 때 테스트가 반드시 필요한데, 북촌 시민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이를 실현하도록 하는 것이죠. 공익에 문제가 없는 한 누구에게나 개방해 민간 기업이 서비스를 마련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조성할 예정입니다.”

서비스의 지속가능성도 서울시가 기대하는 것 중 하나다. 북촌에 들어가고자 하는 IoT 스타트업은 나름의 수익모델을 스스로 발굴해야 한다. 북촌 주민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유료 앱을 만들어 보급해도 된다. 앱이나 서비스 안에 광고를 붙여도 좋다. 서울시는 서비스를 유지하고 보수하기 위해 추가 예산을 들일 필요가 없다. 스타트업은 공간을 기반으로 만든 서비스에 어떤 수익모델을 붙춰야 좋을지 고민하는 사이 자생력을 확보할 수 있다. 북촌에서 성공한 서비스가 그대로 스타트업의 경험 자산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최영훈 국장은 이를 ‘리빙랩’이라고 부른다. 살아 움직이는 실험실이라는 뜻이다.

“유럽에서는 민∙관이 협력하는 ‘리빙랩’이 많이 있어요. 북촌 IoT 사업이 정체된 연구실을 벗어나 공간을 통해 실제 살아 움직이는 서비스를 위한 실험실이 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업의 위험 부담도 적다. 서울시는 북촌 일대에 장거리 와이파이와 비콘, 스마트 CCTV 등 IoT 서비스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할 계획이다. 와이파이와 비콘은 기술 특성상 누구나 쓸 수 있다. 설령 사업이 실패로 돌아가 스타트업이 북촌을 모두 떠나도 큰 손해는 아니다. 북촌 주민과 관광객은 이후에도 계속 무료로 와이파이를 사용하고, 비콘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 CCTV는 그 자체로 지역의 보안을 담당하면 그만이다. 서울시가 구축하는 인프라가 꼭 이번 사업만을 위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술이 해결하는 도시 문제

북촌 IoT 사업을 통해 서울시가 얻고자 하는 경험은 기술을 통해 도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북촌은 그 첫 번째 실험의 장이다.

“북촌은 관광지로 인기가 많아요. 1년에 100만명 이상 방문하거든요. 그러다보니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상공인이 많죠. 하지만 주거민도 있어요. 서로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겁니다. 관광객이 안 오면 장사가 안 돼 상인이 울상이고, 관광객 많이 오면 거주민은 불편하고. 기술로 도시가 가진 문제를 푸는 실험을 하는 데 북촌이 제격이죠.”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서울시가 북촌의 주차구역에 근거리 통신 장비인 비콘을 설치하면, 위치기반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이 비콘과 연동하는 스마트폰 앱을 만들 수 있다. 비콘이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거주자와 관광객 사이에 오가는 주차다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말이다.

또, 북촌에 설치될 ‘스마트 CCTV’를 IoT 스타트업이 이용하면, 좁은 골목을 오가는 관광객 숫자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서비스를 만들 수도 있다. 이들이 수집한 정보는 또 다른 스타트업의 사업 모델이 될 수 있다.

SK플래닛은 북촌에 비콘 설치를 돕겠다며 서울시와 약속했다. 북촌의 주민과 관광객은 한옥마을 사이사이 들어찬 작은 가게에서 SK플래닛의 모바일 결제 서비스 ‘시럽’을 쓸 수 있게 될 전망이다. 현재 서울시에 참여 의사를 밝힌 업체는 16곳이다. 대부분 IoT 영역에서 이미 서비스를 개발 했거나 새로운 서비스를 구상 중인 스타트업이다. 물론, 오픈 플랫폼 형식으로 진행되는 사업인만큼 앞으로 북촌에 참여하게 될 스타트업 숫자는 늘어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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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생활을 바꾸는 게 문제 해결의 근본”

북촌 IoT 시범특구 사업의 겉모습은 공간을 바탕으로 한 기술 사업이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철학이 인상깊다. 기술은 도시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일 뿐, 문제 해결의 본질은 시민의 생활과 삶의 변화라는 철학 말이다. 최영훈 국장은 “한국인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이라며 짧게 운을 띄우고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한국인들은 눈에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아주 강해요. 즉각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만 집중하거든요. 하지만 생활과 삶을 바꿔 문제의 근본부터 살피는 것이 필요해요.”

지금 북촌에서는 불법주차 문제가 골칫거리다. 단체 관광객이 몰고 오는 버스 때문이다. 시청이 나설 수 있는 빠르고 효과적인 해법은 단순하다. 경찰이 수시로 불법주차 차량을 단속하거나, CCTV로 사진을 찍거나, 혹은 과태료 집행 건수를 늘리거나.

그렇다고 서울시가 당장 단속을 강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조용하고 안락한 삶을 원하는 주민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단체 관광객의 씀씀이로 가게를 운영하는 소상공인의 일상도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방관하는 것도, 단속을 강화하는 것도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대신 이렇게 하면 어떨까. 북촌을 단체 관광객이 아닌 다른 이들에게 더 매력적인 공간으로 바꾸는 것이다. 홀로 한국을 찾은 배낭여행족이나 주말 나들이를 나선 시민 커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가족이 더 많이 찾도록 말이다. 단체 관광객이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불법주차 문제도 해결된다. 단체 관광객이 빠진 자리를 뚜벅이 여행객이 채울 수만 있다면, 불법주차 문제와 상인의 매출감소 우려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

관광객이 버리고 가는 쓰레기 문제도 마찬가지다. 단속을 강화하는 대신 재활용 쓰레기를 넣으면, 북촌 지역 상점에서 활용할 수 있는 포인트로 바꿔주는 스마트 쓰레기통을 도입하는 것도 효과적일 해법이 될 수 있다. 기술은 문제의 해법을 제공하는 도구일 뿐이다.

“단속으로 관광객이 줄어들면 상인에게 피해가 가고, 그렇다고 그냥 놔둘수는 없고. 사람들이 사는 방식을 바꾸도록 유도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IoT 스타트업이 지속가능한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고요.”

서울시청 정보기획과는 오는 10월로 예정된 북촌 IoT 시범특구 시연을 앞두고, 기술 스타트업과 접점을 늘리는 중이다. 스타트업 대표가 모여 기술 데모데이를 열기도 하고, 김영훈 국장이 직접 업체 발굴에 나서기도 한다. 비콘과 와이파이 등 인프라 조성도 시작됐다. 사업이 완성될 즈음이면, 서울시청에서 북촌으로 가는 모든 길목에서 끊김 없는 무료 와이파이를 쓸 수 있을 것이고 최영훈 국장은 설명했다. 올해 북촌에서 성과를 얻으면, 2016년에는 또 다른 IoT 시범특구를 지정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북촌과는 또 다른 문제로 몸살인 공간이 서울시에는 부지기수다.

“요즘 스타트업과 간담회 자주 하면서 스타트업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더 구체적으로 알아가는 중입니다. 일단은 관광공사와 협업해 보행자 내비게이션을 시작하기로 했고요. 스타트업의 요청이 있으면, 다른 인프라가 추가될 수 있겠죠. 제가 바람하는 것은 올해 안에 유의미한 서비스가 나오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서비스는 계속 이어질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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