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겨울 발생한 비극 하나

한 학생이 자살했다. 저작권법 위반 협의로 고소를 당한 이후 심적인 부담감에 택한 극단적 선택이었다. 저작권 위반으로 이미 한차례 고소를 당한 이후 합의금을 지불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도 이 학생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가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당한 까닭은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소설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세상을 등진 그는 겨우 고등학교 1학년이었을 뿐이다.

사건이 일어난 당시 이른바 ‘저작권 자살’로 알려진 비극이다. 국내에서는 저작권 침해가 발견되면, 법무법인을 통해 저작권법을 위반한 사실이 무차별적으로 통보되는 일이 잦다. 법무법인의 ‘저작권 장사’다. 고소 대상인 이들 대부분은 관련 법에 지식을 채 갖추지 못한 청소년이다. 2007년의 비극적인 결말도 저작권법 위반 고소 남발이 부른 안타까운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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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저작물을 함부로 이용하는 등 저작권법을 위반하는 행위는 옳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경중은 따져 물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단법인 오픈넷이 저작권법 개정안 통과에 두 팔을 걷어붙인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저작권법 위반 고소 남발의 뒤에는 국내 저작권법의 구조적인 모순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의 견해다.

“예를 들어 소설을 블로그에 공유하거나 블로그에 남이 찍은 사진을 사용했다거나 하는 식으로 경미한 저작권 침해 사례가 많아요. 하지만 현재 저작권법에서는 사안의 경중과 관계없이 저작권 침해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 수 있도록 하고 있거든요. 물론, 영리의 목적으로 남의 저작물을 불법적으로 활용하는 이들은 범죄로 다루는 것이 마땅하지만, 경미한 저작권 침해로 고소를 당하는 이들은 보통 학생이나 일반 사용자들이 많은 상황입니다.”

김가연 변호사는 “지금처럼 합의금 장사가 끊이지 않는 것은 저작권 침해자가 악의적으로 이득을 취했는지를 판단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공문을 보내기 때문”이라며 “합의금을 요구하거나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협박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설명했다.

합의금 장사가 성립되기 위한 핵심은 바로 공포다. 어느 날 갑자기 법무법인이나 저작권자로부터 저작권법 위반에 관한 내용증명을 받아들었다면, 다음 단계는 합의 요구를 듣게 된다. “돈으로 합의해주지 않으면, 수사기관에 고발할 것”이라는 협박이 이어지는 것은 형사처벌을 통해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심을 이용하기 때문에 작동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현실을 바꾸기 위해 오픈넷이 주장하는 저작권법 개정안, 이른바 ‘합의금 장사 방지법’의 핵심은 다음 두 가지다.



  1. 저작권 침해에 따른 저작권자의 재산 피해가 100만원 이상인 경우에만 형사처벌 대상으로 한다.

  2. 영리 목적으로 저작물을 불법적으로 활용했을 경우에만 형사처벌 대상으로 한다.



[rel]저작권 침해와 이에 따른 형사처벌 대상에 법적인 하한선을 마련하자는 취지다. 이 두 가지 내용이 포함된 저작권법 개정안은 국회에 제출돼 지금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계류 중이다. 형사처벌은 경찰이나 검찰 등 수사기관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형사처벌에 하한선을 두는 것은 수사기관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의견이 법안 통과를 막아서고 있다. 하지만 오는 2016년 4월 총선 이전, 즉 19대 국회가 끝나 계류 법안이 폐기되기 전에 통과시켜야 한다는 게 오픈넷의 주장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지금과 같은 합의금 장사가 대폭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경미한 저작권 침해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을 할 수 없으니 합의금 장사에 핵심 역할을 하던 형사처벌에 관한 공포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또, 합의금 장사에 이용되는 이들 대부분이 학생이라는 점에서도 범죄자 양산에 기여한 지금의 저작권법을 좀 더 합리적으로 바꿀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안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모두 범죄자 취급을 하기 때문에 그 공포를 활용한 합의금 장사가 일어나고 있어요. 고소를 당하면, 누구나 겁을 먹고 합의를 해줄 수밖에 없고요. 저작권법이 합의금 장사에 악용되고 있는 거죠.”

오픈넷에서는 개정안 통과를 위해 2014년부터 서명운동을 진행한 바 있다. 잠시 중단됐던 서명운동은 지난 8월부터 다시 시작됐다. 9월까지 누리꾼 600여명이 오픈넷 홈페이지에서 서명운동에 참여해 개정안 통과를 촉구했다. 오픈넷에서는 1천여명이 넘는 서명을 받아 국회에 전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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