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불평등을 해결하는 혁신적인 방안은 무엇일까. 고전적인 경제학의 프레임을 벗어난 접근은 없을까. 테크놀로지가 사회, 경제체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패러다임 전환기에, 이 질문은 답하기란 여전히 어렵다. 요하이 벤클러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는 커먼즈(Commons) 즉 '공유지'에 해답이 있다고 믿는 세계적인 법학자이다.

요하이 벤클러 교수가 10월15일 국내 강연 무대에 올랐다. 첫 번째 한국 방문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가 서울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개최한 CC 글로벌 서밋에서 ‘공유지라는 아이디어와 자본주의의 미래’를 주제로 발표를 했다.

▲  요하이 벤클러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 요하이 벤클러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그는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며 말문을 열었다. 1% 인구에 부가 집중되는 신자유주의 시장 경제의 한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현재의 경기침체를 해석할 수 없다는 말도 꺼내놨다. 부의 쏠림은 정치적 권력을 변형시키고 이는 다시 정치 시스템으로 이어져 우리의 삶에, 우리의 가족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부의 불평등은 비단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사실도 분명히 했다. 직접 준비한 발표 자료에 다양한 통계를 제시하며 “미국뿐 아니라 OECD 국가들을 보면 하층 인구는 임시직만 갖게 되고 소득은 점점더 불안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1960년대 미국 캘리 걸스의 임시직 이야기를 사례로 들며 그것의 역사적 흐름도 함께 설명했다.

[rel]벤클러 교수는 이러한 부의 불평등과 저소득층의 빈곤 심화는 기술 발전과 연결돼있다고 했다. 이 지점에서 그는 기술과 공유지의 개념을 연결시켰다. 오픈소스나 위키피디아와 같은 디지털 공유지를 거론하면서 이들 비시장적 영역의 공유지가 부의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는 공유지가 2개의 축으로 존재하고 있고 설명했다. 한 가지는 전통적인 관점에서 생태적 공유지고 다른 한 가지는 1990년대 이후 대두되고 있는 자유소프트웨어와 오픈소스다. 전자의 경우 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한 많은 논리들이 등장했지만 후자의 경우는 “그간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가 이 분야에 착근해 연구를 진행할 때도 동료 연구자들은 “불가능하다”고 평했을 정도로 실현되기 어려운 경제 구조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오픈소스라는 개념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고 불가능은 현실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80·90년대를 거치며 정립된 신자유주의 시장시스템에 공유지 기반의 사회적 생산 모델이 21세기 들어 본격적으로 진입하게 된 것이다. 사회적 생산은 그의 표현대로라면 비시장적 시스템이다. 위키피디아, 파이어폭스가 대표적이다.

"시장경제를 재창조하는데 창조적 공유지가 핵심적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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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CSummit15_IMG_4826_Yochai_Benkler_small

벤클러 교수는 공유지를 구축하는 사회적 생산의 결과물은 기존 시장의 상품과 달리 재화로 보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사회적 교환이라는 시장 시스템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첨언했다. 시장 밖에 있는 듯 보이지만 이미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시장 내부에 뿌리를 두고 움트고 있었다는 의미다. 현재 이 모델은 공공, 지식, 창작 영역에서 적용돼있다는 것이 벤클러 교수의 생각이다.

벤클러 교수는 이들 공유지에 기존 시장적 관점으로 “가격을 매기고 단순화한다면 실패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공유지는 공유지 나름의 재산 및 관리 체계가 존재한다는 이유에서다.

공유지는 벤클러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협력적 휴먼 시스템'이다. 합리적 인간의 본성에 잘 들어맞는 시스템이라는 얘기다. 벤클러 교수가 발표 내내 합리주의(Rationalism)를 강조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의 본성과 가장 잘 들어맞는 시스템이 시장에서 주도적 역할을 함으로써 자산 소유 중심의 기존 시장 체제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미래의 시장경제를 재창조하는데 창조적 공유지가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의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으로 공유지를 다시금 강조했다. 이 공유지는 함께 생산하면서 마음 껏 이용하고 나눌 수 있는 경제형태다.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해하지 않으면서도 자원을 재배분할 수 있는 비시장적 모델이다. 기존의 시장경제는 창조성의 ‘자유‘를 평가절하 하지만 “창조성의 자유는 우리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것”이라고 그는 반박했다.

"우버 같은 시스템은 노동자 지위 약화시킨다"

▲  CC 글로벌 서밋 2015에서 발표 중인 요하이 벤클러 교수.
▲ CC 글로벌 서밋 2015에서 발표 중인 요하이 벤클러 교수.

그는 최근 부상하고 있는 공유경제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공유지의 관점에서 접근했다. 특히 우버와 에어비앤비로 표상되는 온디맨드 경제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견지했다. 벤클러 교수는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대목은 공유의 사회적 관계 측면”이라며 “공유의 윤리적 핵심은 바로 사회적 관계”라고 말했다.

벤클러 교수는 우버나 에어비앤비를 ‘1세대 공유기업’이라고 칭한 뒤 거래 비용을 낮추고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했다는 장점이 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그는 “공유경제의 근본은 경제적 교환이 아니라 사회적 교환”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우버 같은 시스템은 소비자들이나 기업에겐 혜택이 되지만 노동자들의 지위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사회적 윤리, 공정한 참여, 사회적 원칙 등에 의해 소비자와 노동 여건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라며 “하지만 아직은 그런 모델을 보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우버와 에어비앤비를 비롯한 공유 모델이 그가 강조하는 협력적 사회적 생산 시스템에 아직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요컨대, 요하이 벤클러 교수는 오픈소스로 상징되는 비시장적 모델을 시장에 통합시킴으로써 기존의 시장 경제 시스템을 변혁해야 한다는 관점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동료간 협력주의’(Peer Cooperatism), ‘동료간 실용주의’(Peer Pragmatism)라는 개념을 동원했다. 창조적 공유지 기반의 경제모델이 기존 자산 소유 중심의 시장 모델보다 실질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공유는 공유일 뿐”이라는 발언도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그는 이러한 경제 모델이 안착하기 위해서는 “자기주도적인 철학을 갖고 실험을 하며 시장에 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협력적 동료생산 모델이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고 했다. 21세기 초반 자본주의는 “지적 모멘텀을 겪고 있다”라며 지금의 이러한 실험의 적기라는 말도 했다. 궁극적으로 이 같은 창조적 공유지를 중심으로 시장 질서가 재편될 때 부의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적인 시장 시스템을 갖출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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