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새해 새벽,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 기기 전문 업체 오큘러스VR가 첫 번째 소비자용 '오큘러스 리프트'의 예약 판매를 시작했다. 오큘러스 리프트는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형 기기로 가상현실을 3D로 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다. 지난 2013년 처음으로 개발자를 위한 초기 버전 ‘오큘러스 리프트 DK1’이 등장했으니 이번 정식 버전 출시는 그로부터 3년여 만이다. 비록 한국 시장은 오큘러스 리프트의 첫 번째 출시 지역에서 제외됐지만, 게임 업계는 물론 차세대 영상 기술 업계의 관심이 오큘러스 리프트에 쏠리고 있다. 공상과학(SF) 영화가 꿈꾸던 가상현실 세계는 오큘러스 리프트의 등장으로 마침내 현실이 됐다.

▲  오큘러스 리프트
▲ 오큘러스 리프트

VR, 대중 속으로

오큘러스VR는 그동안 갖가지 시험용 VR 기기를 내놓은 바 있다. 개발자와 일부 사용자에게 미리 써보도록 하고, 콘텐츠를 어떻게 개발하면 좋을지, 어떤 부분은 보강하면 나아질지 연구하기 위해서다. DK1 이후에도 ‘DK2’와 ‘크레센트 베이’가 출시된 바 있다. 오큘러스 리프트의 핵심은 기존 HMD형 기기보다 싼 값에 가상현실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오큘러스 리프트는 매우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사용자의 눈앞에 디스플레이를 배치하고, 디스플레이가 영상을 좌우 2개로 나눠 보여주는 구조다. 사람이 사물을 인식할 때 양쪽 눈을 활용해야 입체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오큘러스 리프트 속에는 OLED 디스플레이가 탑재돼 있으며, 해상도는 가로·세로 2160×1200이다. 이를 절반으로 나눠 두 눈에 따로 보여주는 방식이므로, 실제 사용자가 느끼는 해상도는 1080×1200이다.

화면을 절반으로 나눠 보여주는 특징이 3D 효과를 위한 것이라면, 오큘러스 리프트에 내장된 가속도센서와 자이로센서는 자유로운 시야를 위한 장치다. 오큘러스 리프트를 쓰고 고개를 돌리면, 콘텐츠 속에서도 머리가 향하는 방향으로 시점이 움직인다. 게임이나 영화를 보다가 하늘이나 땅, 양옆을 둘러볼 수 있다는 뜻이다. 3D 효과와 더불어 실감 나는 가상현실을 체험하도록 돕는 오큘러스 리프트의 핵심 기능이기도 하다.

▲  2개의 렌즈가 각각 다른 영상을 볼 수 있도록 해 3D 효과를 구현하는 방식이다.
▲ 2개의 렌즈가 각각 다른 영상을 볼 수 있도록 해 3D 효과를 구현하는 방식이다.

오큘러스 리프트 정식 버전은 여기에 위치 추적을 위한 외부 센서 장치가 세트로 구성돼 있다. 오큘러스 리프트 기기에 내장된 센서를 외부 스탠드형 적외선 LED 장치를 통해 추적하는 기능이다. 사용자가 앉거나 일어서는 행동을 하거나 고개를 기울기는 행동을 영상 속에 반영할 수 있다. 화면을 둘로 나눠 3D 효과를 내고, 기기 자체에 센서를 달아 영상 속을 사용자 마음대로 둘러볼 수 있도록 한다는 초기 아이디어가 이후 다양한 센서 기술과 만나 더욱 실감 나는 가상현실 기술로 탄생한 셈이다.

▲  오큘러스 리프트의 위치 추적 적외선 센서 장치
▲ 오큘러스 리프트의 위치 추적 적외선 센서 장치

당신의 PC, 준비됐나

오큘러스 리프트는 PC와 함께 이용하는 기기다. USB 포트를 이용해 PC와 연결되며, 퍽 높은 성능의 PC를 갖고 있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오큘러스VR가 공식적으로 밝힌 최소 요구 사양은 2.4GHz로 동작하는 쿼드코어 중앙처리장치(CPU)에 ‘엔비디아 지포스 9800’ 혹은 ‘AMD 라데온 HD 4870’급 그래픽카드다. 64GB 이상의 하드디스크와 1GB 이상의 메모리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최소 요구사양일 뿐, 3D 게임을 만족스럽게 즐기려면 더 높은 하드웨어가 필요하다.

오큘러스VR는 오큘러스 리프트를 이용하기 위한 권장 사양으로 4세대 인텔 코어 i5 프로세서 이상의 성능을 내는 CPU와 엔비디아의 ‘엔비디아 지포스 GTX970’, AMD의 ‘AMD 라데온 R9 290’ 혹은 그 이상의 성능을 내는 그래픽카드를 추천한다. 오큘러스 리프트를 접한 이들이 가상현실 콘텐츠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수십만 원을 PC 업그레이드에 투자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엔비디아와 AMD는 저마다 가상현실 환경을 지원하기 위한 기능을 속속 추가하는 중이다.

▲  오큘러스 리프트 리모콘, 위치추적 센서, 오큘러스 리프트, X박스 원 컨트롤러(왼쪽부터)
▲ 오큘러스 리프트 리모콘, 위치추적 센서, 오큘러스 리프트, X박스 원 컨트롤러(왼쪽부터)

콘텐츠 생태계도 VR로 확장

오큘러스 리프트 정식 버전에는 2가지 가상현실 전용 게임이 준비돼 있다.‘이브: 발키리’와 ‘럭키스 테일’이다. ‘이브: 발키리’는 사전 예약구매자에게만 무료로 제공된다. ‘럭키스테일’은 오큘러스 리프트를 구입한 이들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일종의 번들 게임이다.

‘이브: 발키리’에서 사용자는 우주 공간을 여행하게 된다. SF 장르의 슈팅 게임으로 우주선 조종간에 앉아 적들을 물리치는 경험을 가상현실로 즐길 수 있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소행성과 우주선의 파편 사이를 빛의 속도로 유영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럭키스 테일’은 동화풍 그래픽으로 디자인된 플랫포머 어드벤처 게임이다. 옛 ‘슈퍼마리오’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단순한 형태의 플랫포머 게임이었다면, ‘럭키스 테일’은 3D 공간을 이동하며 퍼즐을 푸는 게임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주인공이 여행하는 세계를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은 가상현실 게임 다운 면모다. 이밖에 ‘엣지오브노웨어’, ‘크로노스’, ‘데미지코어’, ‘VR 스포츠 챌린지’ 등 가상현실 전용 게임이 준비돼 있다.

▲  ‘이브: 발키리’
▲ ‘이브: 발키리’

▲  ‘럭키스 테일’
▲ ‘럭키스 테일’

기존 게임 개발업체도 가상현실 시장 확대를 주시하는 중이다. ‘마인크래프트’는 시험용 시절부터 가상현실 지원을 시작했고, 트럭 시뮬레이션 게임 ‘유로트럭 시뮬레이터2’와 레이싱 게임 ‘더티랠리’, ‘프로젝트 카스’가 오큘러스 리프트를 지원한다. 대형 게임 개발업체 외에도 전세계 소규모 게임 개발업체나 독립 게임 개발자가 가상현실을 이용한 다양하고 기발한 형식의 게임을 준비 중이다.

게임용으로 주목받았지만, 오큘러스 리프트는 미디어 경험을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어줄 만한 기기다. 영화감상이 대표적이다. ‘VR 시네마’를 이용하면, 마치 사용자가 홀로 극장에 앉아 대형 극장용 스크린으로 영화를 감상하는 것과 같은 착각을 경험할 수 있다. 또, 오큘러스 리프트에 내장된 일종의 콘텐츠 허브인 ‘오큘러스 홈’은 기존 웹브라우저나 운영체제(OS)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커뮤니티를 즐기고 가상현실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돕는다.

▲  오큘러스 홈
▲ 오큘러스 홈

오큘러스 리프트가 뿌린 VR 씨앗

오큘러스VR가 처음으로 시험용 기기를 내놓은 이후 지금까지는 가상현실 기술에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가 추가되는 시기였다. 오큘러스 리프트 정식 버전이 배송되는 2016년 3월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가상현실 시장이 외형을 확대하는 시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오큘러스VR가 처음으로 시작한 가상현실 혁신에 많은 업체가 응답한 덕분이다.

[rel]우선 삼성전자의 ‘기어VR’와 구글 ‘카드보드’가 대표적인 제품이다. 기어VR와 카드보드는 디스플레이 일체형이 아닌 스마트폰 전용 가상현실 기기다. 오큘러스 리프트 속에 있는 디스플레이 역할을 스마트폰 화면에 맡기는 식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5년 기어VR 정식 버전을 출시했고, 구글은 누구나 저렴한 값에 가상현실 기기를 만들 수 있도록 개방형 가상현실 플랫폼 ‘워크 위드 카드보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오큘러스 리프트와 같은 가상현실 전용기기는 대만 HTC와 미국 게임 개발업체 밸브, 소니 등이 만들고 있다. HTC와 밸브는 ‘바이브’를,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 VR’를 개발 중이다. 바이브는 밸브의 온라인 게임 유통 플랫폼 스팀과 유기적으로 연동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플레이스테이션 VR는 소니의 게임 콘솔 ‘플레이스테이션4’와 연동돼 소니가 갖고 있는 풍부한 게임 생태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기대보다 높게 책정된 가격… 건강도 걱정이네

오큘러스 리프트 출시로 전체 가상현실 시장이 확장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평면에 불과했던 영상 콘텐츠에 현실감을 부여하고, 3D와 4D 이후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를 찾는 이들에게는 미래와도 같은 기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큘러스 리프트 정식 버전의 높은 가격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가상현실이 과연 인체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도 아직 미지수다.

오큘러스 리프트가 예상보다 높은 가격에 출시됐다는 점은 정식 버전 출시를 손꼽아 기다린 이들에게 좋지 않은 소식이다. 오큘러스 VR이 내놓은 초기 개발자 전용 모델의 가격은 우리돈으로 30만원 안팎이었다. 오큘러스 VR 등장 이전 머리에 쓰는 형태의 가상현실 기기의 가격은 보통 100만원 이상이었다. 오큘러스 VR의 등장은 싼 값에 VR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도록 했다. 하지만 뚜껑을 연 오큘러스 리프트 정식 버전의 가격은 599달러로 책정됐다. 우리돈으로 70만원이 넘는다. 누구나 저렴하게 가상현실 콘텐츠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은 높은 가격 앞에 주춤거리는 모양새다.

가상현실이 신체 움직임이 없는 상황에서 경험하는 극도로 사실적인 콘텐츠라는 점에서 어지러움증 등을 호소하는 사례도 많다. 이를 ‘사이버멀미(Cybersickness)’라고 부른다. 자동차나 놀이기구 등을 이용할 때 경험하는 멀미 현상과 비슷하다. 이는 몸은 고정돼 있는데 시각적으로 받아들이는 정보는 격렬하게 움직이는 탓에 발생한다. 의학계는 적게는 50%에서 많게는 80%의 사용자가 이 같은 사이버멀미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며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  플레이스테이션 VR
▲ 플레이스테이션 VR

▲  바이브
▲ 바이브

이 글은 ‘네이버캐스트→테크놀로지월드→용어로 보는 IT’에도 게재됐습니다. ☞‘네이버캐스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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