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들이 한국사람을 비하하는 데 자주 사용되는 수사로 ‘냄비’가 있다. 쉽게 끓었다가 쉽게 가라앉는다는 뜻이다. 하나의 문제가 벌어지면 처음엔 비난을 퍼붓고 목소리를 높이다가도, 나중에는 금세 사그라든다. 잘못을 저지른 주체는 눈치만 잠깐 보면 된다. 가끔 눈치도 안 본다. 중요한 사회 문제는 그렇게 잊히고, 문제는 덮어진다. 으레 덮어진 문제들이 그렇듯 결국 문제는 언젠가 다시 존재감을 드러낸다.

“다들 잊지 않겠다고 다짐한 이슈가 있잖아요. 그런 이슈를 나누고 싶은데,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는 한순간에 함께 기뻐하고 공분할 수는 있지만, 그다음부터 같이 해볼 수 있는 게 없잖아요. 빠띠는 잊고 싶지 않은 이슈를 작은 노력만으로 잊지 않을 수 있는 플랫폼입니다.(빠띠 개발자 박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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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커뮤니티+시민단체=빠띠?

빠띠는 민주주의 플랫폼을 지향한다. 목적은 ‘정치’다. ‘수다로 정치하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그 정치라는 게 TV에나 나오는 양복 입은 자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모두가 이야기하고, 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모여 현실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목소리가 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빠띠는 미디어와 커뮤니티, 그리고 시민단체를 결합한 듯한 모델을 구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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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ti (6)

빠띠는 기본적으로 소셜미디어의 타임라인과 유사한 외형을 갖추고 있다. 다만 이슈 중심으로 묶여 있고, 이슈별로 구독할 수 있다는 점이 차이다. 빠띠에선 관심 있는 이슈를 팔로우하면서 토론할 수 있다. 자신의 이야기가 어느 맥락에서 발화되는지 그 지점을 파악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빠띠 메이커’는 하나의 주제를 끌고 가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해당 이슈로 글을 쓰고, 자료를 모으는 역할을 한다. 기자와 비슷하다. 실제로 빠띠에서 빠띠 메이커 역할을 할 사람을 모으기 위해 만나는 사람 중 상당수가 기자다. 빠띠 개발팀은 사람들이 뉴스 링크를 가져와 댓글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사실에 착안해 이런 모델을 구상했다. 지금은 뉴스 링크를 외부에서 가져오지만, 나중에는 빠띠 메이커가 직접 기사를 쓰는 형식도 고려하고 있다. 이렇게 생성된 링크와 사용자끼리 이야기를 나눈 모든 글은 해당 이슈를 설명하는 자료가 된다. 빠띠 개발진은 빠띠의 콘텐츠를 위키 형태로 정리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plus]빠띠 메이커가 이슈를 끌고가면, 다른 빠띠 사용자들은 해당 주제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두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단위가 커지면 현실적인 청원운동 등으로 바꿀 수 있는 물리적인 힘이 된다. 빠띠 플랫폼의 구조는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힘의 기본적인 뼈대를 생성할 수 있는 방향을 향한다. 빠띠 메이커들이 수익을 확보할 방안을 모색하는 이유기도 하다. 이슈를 계속 끌고 갈 수 있는 물적 토대를 마련해주기 위함이다.

빠띠의 구조는 개발 배경과도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빠띠의 주요 개발자는 과거 다음 아고라의 서비스를 맡은 경험이 있다. 과거의 아고라는 온라인을 축으로 참여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나름의 의미가 있었지만, 지금은 신뢰가 불분명한 링크와 편향된 정치성향으로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됐다. 빠띠는 이런 아고라의 부정적 기능을 최소화하고 긍정적인 기능을 높일 수 있는 방향에 대한 고민을 담아 설계됐다.

▲  빠띠 개편 시안(4월 말 적용 예정). 사진 = 빠띠
▲ 빠띠 개편 시안(4월 말 적용 예정). 사진 = 빠띠

하물며 치킨집도 온라인을 활용하는데…

온라인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회의적인 말이 넘쳐난다. ‘SNS는 한 줌이다’, ‘인터넷 공론장의 가능성은 없다’는 말들이 대표적이다. 아무리 떠들어봐야 현실정치와 무관하다는 냉소다. 빠띠 개발진의 의견은 다르다. 그나마 시민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은 온라인뿐이라고 본다. 현실적인 사례도 있다. 최근 소라넷 폐지가 대표적이다. 온라인에서의 발화는 커뮤니티를 거쳐 현실적인 영향력이 돼 국회의원에게 닿았다. 하물며 치킨집도 온라인을 활용하는 마당에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오히려 시민단체에는 온라인이 거의 유일한 발화수단이다. 박은지 개발자는 “미디어도 권력이 잡고 있는 마당에 시민단체 활동가의 유일한 도구는 온라인 뿐”이라며 “온라인에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모아 작은 성공의 경험을 만들고 싶다”라고 말했다.

온라인 토론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제도도 고민하고 있다. ‘대댓글 불가'같은 기능이다. 대댓글은 댓글 아래 새로운 댓글을 만드는 기능이다.  대댓글은 해당 댓글에 대한 말싸움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잦다. 긍정적인 토론이 이어지면 좋겠지만, 이런 경우 대부분은 말꼬리 잡기로 흐른다. 빠띠에서는 의제와 관계없이 물고 늘어져 토론을 방해하는 것을 막고자 대댓글을 막았다.

▲  토론 예시. 사진 = 빠띠
▲ 토론 예시. 사진 = 빠띠

전자민주주의 이상 실현하기 위해서

빠띠는 현재 베타버전이 공개돼 있고, 첫 번째 개편을 앞두고 있다. 이제 막 시작하는 플랫폼이기 때문에 작은 목표부터 달성해나갈 계획이다. 민주주의 플랫폼인 만큼 제안하고, 제안에 대해 투표하고, 토론을 거쳐 입장을 철회하는 등의 경험을 대안학교 등 작은 단위로 실험해볼 생각도 있다. 빠띠 메이커와 함께 풀어가고 싶은 주제도 '기본소득', '아동학대', '세월호', '선거법 개정' 등 몇 가지만 선정해 집중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우선 빠띠 1단계에서는 빠띠 플랫폼에서 정치·사회적인 문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단계까지가 목표다. 이후에 토론 플랫폼, 청원 플랫폼으로의 진화를 꿈꾼다.

“(전자민주주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전자적인 시스템으로 사람들이 의견을 내고 투표를 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이죠. 제가 서울에 사는데 가스를 쓰면 한 달에 얼마나 쓰는지 트래킹을 하잖아요. 가스 소비량은 매달 측정하면서 왜 사회적 이슈에 대한 사람들 의견은 정부가 트래킹하지 않을까요? 세월호 문제만 하더라도, 내 지역구 의원이 저 법안에 찬성했으면 좋겠다, 반대했으면 좋겠다, 주민들이 답변하도록 할 수 있잖아요. 이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요? 가스비는 그렇게 잘 체크하면서 왜 이런 건 안 할까요? 기술적으론 이보다 훨씬 복잡한 트래킹 시스템이 이미 사회에 다 깔려 있어요. 이건 의지의 문제예요.” – 권오현 빠띠 대표 “2008년 광우병 사태 때 다음 아고라 서버 터져 정신없었죠” , <한겨레>, 2015년 9월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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