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3일 곤지암리조트에서 ‘사이버 공론장에서의 혐오와 모욕표현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주제로 언론중재위원회의 정기세미나가 열렸다. 첫 세션에서는 사이버 공론장에서의 혐오표현에 대한 논의를 나눴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가 첫 발제자로 나서 ‘사이버상 혐오표현의 법적 쟁점과 규제방안’에 대해 논점들을 설명했다.

▲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사진=언론중재위원회)
▲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사진=언론중재위원회)

혐오표현이란?

홍성수 교수는 국제사회의 논의와 시민사회 및 학계의 논의를 종합해 ‘혐오표현(Hate speech)’의 개념을 정의했다. 혐오표현은 ‘일시적으로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소수자집단에 대한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관념이나 감정’을 뜻한다. 단순히 ‘싫다’는 감정이 아니다. 사회의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구조적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혐오감정’과 구별된다. 혐오표현은 일종의 ‘선동’의 의미를 내포하며, 일반청중을 향해 ‘소수자를 차별하라’는 메시지를 담는다. 실제로도 그런 결과를 일으킨다.

혐오표현을 규제해야 한다?

혐오표현을 둘러싸고는 규제 옹호론과 반대론이 대립한다. 규제 옹호론 측의 근거 다음과 같다. 혐오표현의 해악을 방지하기 위해 선제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1. 한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의 존엄한 삶을 파괴한다

  2. 소수자들이 편견, 공포, 모욕감 등으로 고통받는다는 사회심리학적-의학적 근거

  3. 편견과 혐오는 전염성이 강해 후대에 전승되며, 조직적 차원으로 확산된다.


규제 반대론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을 우려한다.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소수자 집단이 해악을 입는다는 것은 막연하다

  2. 특정인에게 해악을 끼쳤다면 사후적인 조처를 하면 된다

  3. 사회적 해악이 있다고 해도 ‘사상의 자유시장’을 통해 해악을 치유하는 것이 타당하다

  4. 법 규제의 목적달성이 의문스러우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법적 처벌에만 집중될 수 있다.

  5. 사회의 담론을 합법/불법으로 이분화시켜 다원적 해석을 막을 수 있다.

  6. 혐오표현의 원인이 되는 정치/사회/경제적 배경을 도외시할 수 있다.


홍성수 교수는 이상을 정리하며 혐오표현을 규제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법적 규제보다는 좀 더 유연하고 다차원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flickr, Sebastien Wiertz, CC BY
▲ flickr, Sebastien Wiertz, CC BY

사이버 혐오표현의 사례와 증오선동

“외노 다문화 불법짱깨들 다 쫓아내라”(네이버 댓글) : 외국인/인종/종교적 혐오표현

“힘냅시다 파이팅! 동성애 성문화축제(퀴어문화축제) 물러가라! 호모좀비들과 항문폭도들에 맞서 진리를 위해 싸웁시다!”(네이버 블로그, 성다수자 인권위원회) : 성소수자 혐오표현

“(5.18 희생자 유족 사진을 게시하며) 아이고, 우리 아들 택배왔다…착불이요”(일베) : 5.18 광주민주화운동 왜곡/부정(호남혐오)

“요즘 김치년들은 취집가면 직장 그만두고 오전에 스타벅스 가서 시댁욕하거나 남편자랑 하거나 오후엔 요가 쳐가고 저녁엔 남편와도 밥할 줄 몰라서 라면 준다면서요?..그러니 하는 일이 맨날 설거지랑 홀서빙, 청소 이런거 하는거죠. ㅋㅋ”(네이버 댓글)

- 2016 언론중재위원회 정기세미나 자료집, pp 8-9, 발제문에 담을 수 있는 수준으로 걸러서 담았다고 한다.


사이버상의 혐오표현문제는 일반적인 혐오표현과는 별도로 다뤄져 왔다. 유럽연합 등 국제사회에서도 사이버 혐오표현을 별도로 의제화하여 여러 대책을 내놨다. 유럽연합에서는 지난 2016년 6월에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유럽에서 혐오표현 확산 금지를 위한 행동 강령을 제정한 바 있다.

사이버 혐오표현이 별도로 다뤄지는 이유는 사이버 혐오표현의 특수성 때문이다. 사이버 혐오표현은 1. 불특정 다수에게 빠른 속도로 광범위하게 전파되며, 2. 출판물처럼 영구히 남게 될 가능성이 있다. 커뮤니티를 매개하면서 혐오의 감정이 더욱 강화되고 확산될 수도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이처럼 사이버 혐오표현은 일상에서의 혐오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지만, 사이버 공간의 개방적 특성상 현실적으로 혐오에 대한 완전한 규제는 어렵다. 그래서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들의 자율규제와 정부의 간접통제 방식이 대표적인 규제로 자리 잡고 있다.

홍성수 교수는 혐오표현의 현실적인 해악이 심각한 상황에서 혐오표현에 대해 개입하지 않는 것은 어렵다고 주장했다. 홍성수 교수는 혐오표현에 대한 개입 방법으로 형사 범죄화, 민사구제, 차별시정, 교육·정책적 조치 등 다양한 조치를 단계별·층위별·분야별로 배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법적 규제 차원에서 ‘혐오표현’을 지나치게 추상적으로 상정하고 모든 혐오표현을 관할하려 들 경우 실질적인 어려움을 낳을 수 있다. 홍성수 교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혐오표현을 ‘혐오공표’와 ‘증오선동’으로 구분한다. 전자는 혐오의 감정이나 차별의 의견을 드러내는 것이고, 후자는 타인에게 차별과 폭력을 함께하자고 선동하는 것이다. 이 구분은 ‘혐오표현’의 개념을 사회적인 차원과 법적인 차원에서 구별함으로써 논의는 풍성하게 유지하고 혐오표현에 대한 실효적인 규제를 구성하기 위함이다.

“사회적 용어로서의 혐오표현은 문제를 넓게 포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장애인들은 사회에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말이 나오는데요. 비장애인 입장에서는 ‘바람직하진 않지만 이게 왜 혐오냐’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장애 단체에서는 해당 표현을 혐오표현이라고 합니다. 다수자가 혐오표현이 아니라고 말한다고 그게 혐오표현이 아닌 건 아닙니다. 혐오표현의 양태는 은밀한 양태부터 강도가 높은 것까지 다양합니다. 다만 법적으로는 이 모든 언어를 다 규제할 수 없으므로 ‘증오선동’을 통해 혐오표현의 개념을 사회적인 측면과 법적 측면으로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김민정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사진=언론중재위원회)
▲ 김민정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사진=언론중재위원회)

남성에 대한 혐오는 불가능하다

이어 토론자로 나선 김민정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발제자가 제시한 혐오표현에 대한 정의를 바탕으로 현재 한국사회에서 나타나는 사이버 혐오표현 양상의 특수성을 짚었다. 김민정 교수는 “혐오표현에 대한 논란을 주도한 인터넷 커뮤니티가 2013년에는 일베였지만, 2015~2016년에는 메갈리아다”라고 말하며 최근 넥슨 성우 교체 논란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갔다.

김민정 교수는 혐오표현의 개념을 구성하는 핵심인 ‘소수자 집단에 대한 공격과 차별’을 언급하며 메갈리아와 일베의 혐오 발언은 결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김민정 교수는 “혐오표현의 개념에서는, 주류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백인에 대한 혐오표현’이 불가능한 것처럼, ‘남성에 대한 혐오표현’은 불가능하다”라며 “메갈리아로 대변되는 남성혐오의 표현들은 일베가 대변하는 혐오표현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다만, 소수자 집단에 대한 모든 공격적인 발언을 혐오표현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례로 성차별적인 모든 발언을 여성에 대한 혐오표현으로 규정하고 규제를 시작한다면, 너무나도 넓은 범위의 표현들을 금지하게 되어 오히려 실제로 금지될 필요가 있는 표현들을 적절히 규제하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2016 언론중재위원회 정기세미나 자료집 p.27

마지막으로 김민정 교수는 “현재의 미디어 시장은 혐오표현과 같은 자극적으로 극단적인 표현들이 만연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라고 미디어 환경의 문제를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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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민영 <경향신문> 미래기획부 차장(사진=언론중재위원회)

혐오를 증식하는 언론

첫 번째 세션의 마지막 토론자로 나선 최민영 <경향신문> 미래기획팀 차장은 사이버 공간에서 혐오표현을 증식하는 언론계의 현실을 지적했다. 특히 여성혐오에 대한 언론계의 실태를 짚었다. ‘김여사’같은 오래된 혐오표현은 물론, 제목을 뽑기 편리하다는 이유로 ‘OO녀’같은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최민영 차장은 “정규방송과 종이를 통해 유통되는 기사는 비교적 여러 단계의 데스킹을 거치는 반면, 온라인은 무법지대와 비슷하다”라고 온라인 언론계 현실을 지적했다. 그저 디지털에서의 성과를 측정하는 잣대로 트래픽만을 생각하다보니 이런 현상이 생긴다는 주장이다. 최민영 차장은 “결과적으로 더 선정적으로 말초적인 제목과 기사가 양산된다”라고 덧붙이면서 “사이버 공간상 혐오표현에 대해 언론인이 사회의 다양한 약자들이 현재 처한 ‘혐오’라는 위험에 대한 감수성과 공감 능력을 요구받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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