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즈피드>가 2016년 11월 17일에 낸 분석 기사에 따르면 미국 대선 전 3개월간 가장 인기 있었던 가짜 뉴스 20개의 페이스북 내 공유, 반응, 댓글 수는 871만 1천건으로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매체의 기사보다 더 많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특히 ‘프란체스코 교황이 트럼프 지지를 발표했다’거나 ‘클린턴 후보가 ISIS에 무기를 판매했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내용도 특정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좋은 소식이기 때문에 비슷한 성향의 그룹에서 빠르게 공유되고 확산력을 가진다. 이 확산력이 실제 투표에 영향을 미치는지 아닌지는 불명확하다. 하지만 그 가능성만으로도 가짜 뉴스 문제는 심각하게 다뤄지고 있다. 게다가 한국은 조기 대선의 가능성이 매우 높게 점쳐지고 있다.

▲  사진=한국언론진흥재단
▲ 사진=한국언론진흥재단

2월14일 한국프레스센터 18층 외신기자클럽에서는 ‘Fake News(가짜 뉴스)개념과 대응방안’ 세미나가 열렸다. 한국언론학회와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로 열린 이 행사에서는 가짜 뉴스의 개념을 면밀하게 짚고, 그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이하 용어 정립에 대한 발제자 및 토론자의 의견이 달라 Fake News(가짜 뉴스)의 표기는 가급적 발제자의 의견을 따랐다)

▲  황용석 교수 발제 자료 갈무리
▲ 황용석 교수 발제 자료 갈무리

오보부터 허위정보까지, 포괄적으로 사용되는 ‘가짜 뉴스’

발제자들은 ‘가짜 뉴스’라는 용어가 지나치게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음을 우선 지적했다. ‘페이크 뉴스 풍자인가, 기만인가?’로 첫 번째 주제발표에 나선 황용석 건국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가짜 뉴스’라는 용어 안에 다양한 범주의 의미가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실제로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통을 자랑하는 <CNN>더러 “너희들은 가짜 뉴스야!”라고 일갈한 바 있고, 국내에서도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전직 유엔사무총장은 가짜 뉴스에 상처받았다며 기성 언론에 대한 서운함을 공개적으로 표출하기도 했다.

▲  CNN 유튜브 'Watch the entire Donald Trump news conference' 갈무리
▲ CNN 유튜브 'Watch the entire Donald Trump news conference' 갈무리

https://www.youtube.com/watch?v=tjjkVlpxp8M

단순 사실 전달에서의 착오, 과장보도, 해석상 오류, 제작과정에서의 실수, 루머, 유언비어, 패러디, 비판적 저널리즘의 한 장르로써 사용되는 ‘풍자적 페이크 뉴스’ 등도 매체가 전달하는 ‘잘못된 정보’에 포괄된다. 문제는 현재 ‘가짜 뉴스’라는 용어가 ‘잘못된 정보’와 거의 같은 개념으로 사용된다는 데 있다. 황용석 교수는 “실제로 이 개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사회적인 논의 없이 페이크뉴스라는 용어가 광범위하게 적용되다 보니까 불명확한 부분도 있고, 문제해결방식도 없다”라고 용어 정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아란 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도 “최근 논의되는 가짜 뉴스의 범위를 제한적으로 해석해야만 그에 따른 대응책도 더욱 명확해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발제자들은 형식, 목적 등을 바탕으로 ‘좁은 의미에서의 가짜 뉴스(페이크뉴스)를 규정했다. 황용석 교수는 다음과 같이 좁은 의미의 페이크뉴스를 “풍자적 페이크뉴스와 다르게 오락적 기능보다는 허위정보를 전달해 수용자가 현실을 오인함으로써 경제적으로 정치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전략적이고 기만적 커뮤니케이션 행위”라고 정의했다.

▲  박아란 선임연구위원 발제 자료 갈무리
▲ 박아란 선임연구위원 발제 자료 갈무리

박아란 선임연구위원은 “가짜 뉴스는 작성 주체에 상관없이 1. 허위의 사실관계를 2. 허위 사실을 고의적 의도적으로 유포하기 위한 목적으로 3. 기사 형식을 차용하여 작성한 것으로 정의했다. ‘작성 주체에 상관없이’를 명시한 이유는 뉴스콘텐츠의 생산주체가 다양해진 현실을 반영하기 위함이다.

“주류면 진짜 뉴스고 비주류면 가짜 뉴스가 아닙니다. 1인 미디어도 퀄리티 있고, 탐사보도도 합니다.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주류 언론은 가짜 뉴스 생산 가능성이 작긴 하지만, 만에 하나 나쁜 마음을 먹고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가짜 뉴스는 왜 퍼질까

황용석 교수는 사람들이 가짜 뉴스를 클릭하는 이유를 몇 가지로 나눠 설명했다. 첫번째는 뉴스 소비 자체의 특징이다. “뉴스 소비는 ‘주목’행위다”라며 “수많은 선택지 가운데서 ‘현저성’과 ‘특이성’이 충족되면 선택유인이 쉽게 이뤄진다”라고 말했다. 눈에 띄면 클릭한다는 의미다. 가짜 뉴스는 이 두가지 요건을 모두 갖춘 경우가 많아 쉽게 퍼진다.

또한 뉴스 소비는 여론 공간에서 자신의 의견 위치를 확인하고, 유사한 의견을 수용해 자신의 태도를 강화하는 성격이 크다. 황용석 교수는 “자신의 정치성향과 유사한 매체를 이용하는 것 역시 다른 의견을 수용하는 것보다, 동질적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이 인지 부조화를 제거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가짜 뉴스는 소위 ‘입맛에 맞는’ 정보의 형태를 띤다는 의미다.

▲  황용석 교수 발제 자료 갈무리
▲ 황용석 교수 발제 자료 갈무리

황용석 교수는 그 외에 주류 언론에 대한 낮은 신뢰도, 다수 의견에 동조하고자 하는 ‘폭포효과’, 언론을 소비하는 시민의 ‘낮은 디지털 리터러시(읽기 능력)’를 들었다.

가짜 뉴스는 여러 악영향을 끼친다. 가장 큰 것으로 정치적 집단극화와 극단주의를 들 수 있다. 자신의 의견에 맞는 뉴스 소비를 급격한 방식으로 가속할 수 있으므로 사회의 갈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 요컨대 지난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이 피자집에서 아동성매매를 일삼았다는 소위 ‘피자게이트’ 에 대한 가짜 뉴스를 읽은 공화당 지지성향 유권자는 민주당에 대한 혐오와 불신을 대폭 높일 수 있다.

▲  사진=언론진흥재단
▲ 사진=언론진흥재단

법적 해결보다는 사회적 논의가 우선

박아란 선임연구위원은 두번째 주제발표인 ‘가짜 뉴스에 대한 법률적 쟁점과 대책’에서 어떻게 가짜 뉴스와 관련해 현행법상 법률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를 살폈다. 다만, 이런 접근에 대해서는 “무엇이 진실이고 가짜인지를 판단하는 것부터가 어려운 일이다”라며 “이러한 측면에서 가짜 뉴스를 규제하는 것은 자칫 표현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를 해하는 검열로서 작동할 위험성도 있다”라고 말했다.


  • 인격권 침해의 경우 : 명예훼손(형법 제307조, 제309조, 정보통신망법 제70조)

  • 공익을 해하는 경우 : 선거 관련 경우 공직선거법 제250조로 규율 가능. 경제적 이익이나 손해가 수반되는 경우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2항 적용

  • 인터넷서비스사업자 : 각국의 실정법이 달라 해외 사업자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 한국의 경우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는 사생활침해-명예훼손 게시물 삭제의무가 있음. 삭제-차단요구에 상당 기간 응하지 않을 경우 손해배상책임 부담할 수 있음.


포괄적 정의 필요 vs 문제점 구체화 중요

이어지는 토론의 첫 발제자로 나선 안명규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 심의팀장은 “전통적인 언론사의 오보, 허위보도, 왜곡보도, 과장보도, 축소보도까지 페이크뉴스라고 통상적으로 이름표가 붙여져 사용되고 있다”라며 “개념적 정의를 명확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잡을 경우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가짜 뉴스가 논란이 되면서 선거관리위원회, 경찰청, 방송통신위원회가 ‘가짜 뉴스를 규제하겠다’라며 칼을 뽑는 움직임을 보인다.

김익현 <지디넷> 미디어연구소장은 가짜 뉴스의 문제점에는 동의하면서도 구체적인 정의에서는 다른 견해를 나타냈다. 김익현 소장은 “삼국지의 적벽대전도 제갈공명이 페이크뉴스로 유인한 케이스다”라며 “가짜 뉴스 자체가 그다지 최근에 등장한 사례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가짜 뉴스’라고 이야기하는 순간 ‘진짜 뉴스’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수 있다”라며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라고 말했다.

민영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교수는 “언론 불신 시대에 언론의 팩트체킹이 실효가 있나?”라는 의문을 던지면서 언론이 충분히 질 높은 정보를 제공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신문이나 방송이라고 모두 '진짜 뉴스'는 아니다
▲ 신문이나 방송이라고 모두 '진짜 뉴스'는 아니다

이봉현 한겨레 편집국 부국장은 “이번 대선은 언론사들이 팩트체킹에 관심을 두고 내부 조직을 꾸리는 첫번째 대선이 될 것이다”라고 전망하면서 “팩트체크의 대상에 굳이 가짜 뉴스만 있는 건 아니다. 잘못된 주장도 광범위하게 취재하고 반박해 독자에게 알려주는 게 뉴스 유통의 책임이다”라고 말했다. 단순히 허위정보를 기사 형태로 유통시킨 것 외에 과장이나 왜곡된 보도도 팩트체크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의미다.

이승선 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도 가짜 뉴스를 좁은 의미로 정의하는 것에 우려를 나타냈다. 이승선 교수는 “가짜 뉴스의 가장 큰 해악은 주류 언론의 왜곡된 정보들이 ‘진짜 뉴스’로 왜곡돼서 수용되는 것이다”라며 “언론사 바이라인을 달고 정부기관의 일방적인 홍보기사, 광고주의 상업적 정보로 가득한 것도 진짜 뉴스로 둔갑해 시민들의 인식을 해칠 가능성이 농후하다”라고 말했다. 당장 가짜 뉴스를 좁게 정의하기보다는 개념을 넓게 잡고 신중하게 접근하자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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