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되지 않을 권리(right to disconnect)’란 업무시간 외에 업무와 관련된 연락을 받지 않을 권리를 말한다. 스마트기기의 발달로 이메일, 전화, 메시지 등을 통해 항시적 업무환경이 조성됨에 따라 논의되고 있는 권리 개념이다. 노동자의 여가시간 보장과 사생활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

▲  |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권리로 떠오르고 있다. <출처: 플리커, Bob B. Brown. CC BY-ND 2.0></div>
▲ |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권리로 떠오르고 있다. <출처: 플리커, Bob B. Brown. CC BY-ND 2.0>

자유, 평등, 박애 그리고 지금, “연결되지 않을 권리.” - <워싱턴포스트>

프랑스, ‘연결되지 않을 권리’ 법제화

TV, 냉장고, 자동차 등 모든것이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있는 시대다. 연결은 생활의 편리를 가져다주지만 또 다른 불편을 낳기도 한다. 바로 ‘항시적 업무 문화’다. 항시적 연결은 항시적 노동으로 이어진다. 스마트기기로 연결된 업무환경은 우리의 사생활을 파고든다. 퇴근 이후에도 상사의 업무 지시에 종속되기 십상이다. 이런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유럽을 중심으로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퍼지고 있다.

2013년 독일 노동부는 업무시간 이후 상사가 직원에게 전화나 이메일로 연락하지 못하게 하는 지침을 발표했고, 프랑스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노동개혁법안에 추가했다. 도이치텔레콤, 폭스바겐, 다임러 등 일부 기업들이 노사 간 협약을 통해 업무시간 외 연락을 금지해왔지만, 이제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법으로 명문화되는 절차를 밟고 있다.

▲  | 프랑스는 2017년부터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법제화해 시행하고 있다. <출처: 플리커, Fabrizio Sciami. CC BY-SA 2.0></div>
▲ | 프랑스는 2017년부터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법제화해 시행하고 있다. <출처: 플리커, Fabrizio Sciami. CC BY-SA 2.0>

프랑스는 2016년 2월부터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포함된 노동개혁법안을 입법 예고하며 논의를 진행했다. 애초 2018년부터 적용 예정이었던 법은 시기를 앞당겨 2017년 1월1일부로 발효됐다. 법 시행에 따라 50명 이상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는 프랑스 기업은 의무적으로 근무시간 외에 노동자에게 연락을 주는 문제와 관련해 직원들과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워싱턴포스트>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프랑스 혁명의 이념인 ‘자유, 평등, 박애’에 빗대기도 했다.

▲  | 항시적 연결은 항시적 노동을 낳고 있다. <출처: 픽사베이></div>
▲ | 항시적 연결은 항시적 노동을 낳고 있다. <출처: 픽사베이>

‘SNS 사무실’에 갇힌 한국

연결되지 않을 권리의 법제화는 한국에서도 시급해 보인다. 한국은 프랑스보다 노동환경이 열악하다. 프랑스는 주 35시간 노동제를 도입했지만 한국은 주 40시간으로 규정된 법정근로시간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한국의 평균 노동시간(2015년 기준 연간 2113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길다. 장시간 노동은 ‘카카오톡’ 등 SNS를 통해 극대화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6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노동자 10명 중 7명이 퇴근 후에도 스마트폰 등으로 업무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일에는 평균 86.24분 더 일했고, 휴일에는 95.96분 일했다. 업무시간 이외에도 스마트기기를 통한 노동시간이 주당 11시간(677분)이 넘는 셈이다.

▲  | 주 40시간으로 규정된 법정근로시간은 상시적 야근 앞에 속절없이 무너진다. <출처: 블로터></div>
▲ | 주 40시간으로 규정된 법정근로시간은 상시적 야근 앞에 속절없이 무너진다. <출처: 블로터>

한국의 노동환경은 카카오톡 등 SNS를 통해 시·공간을 넘어 확장된다. ‘단체카톡방(단톡방)’을 통한 상사의 지시는 노동자를 ‘SNS 사무실’에 가둔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도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지나친 업무 스트레스라는 입장과 사규 정도로 정하면 될 악습을 굳이 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입장으로 찬반이 갈리기도 하지만, 대체로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해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직장인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대다수인 86.6%가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인정하거나 존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제화·내규화로 명시해야 한다는 의견에 찬성한 비율도 85%나 된다. 이런 여론에 힘입어 연결되지 않을 권리 관련 법안과 정책도 논의되고 있다.

2016년 6월22일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 발의로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명시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근로시간 이외에 전화, 문자 메시지, SNS 등 각종 통신수단을 이용해 업무 지시를 못하게 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법안은 국회 환경노동위에 계류 중이다. 제19대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퇴근 후 SNS 업무지시 제한’을 주요 공약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  | 한국에서는 퇴근 후 ‘카톡’을 통한 업무지시가 문제가 되고 있다. (사진은 본문 내용과 관계없다.) <출처: 블로터></div>
▲ | 한국에서는 퇴근 후 ‘카톡’을 통한 업무지시가 문제가 되고 있다. (사진은 본문 내용과 관계없다.) <출처: 블로터>

연결에서 벗어나기 위한 ‘세컨드폰’

법과 제도가 바뀌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개인적 차원에서 연결에서 벗어나기 위한 움직임도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세컨드폰’이다. 퇴근 후 스마트폰을 통한 연결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근 젊은층 사이에서는 세컨드폰이 인기를 끌고 있다. 스마트기기를 통한 연결로부터 사생활을 간섭받지 않기 위한 목적으로 기존에 사용하는 스마트폰 이외에 다른 휴대폰을 사용하는 것이다.

세컨드폰을 사용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알뜰폰’ 등 중저가 휴대폰을 추가로 사는 방법과, 단말기 하나로 2개의 전화번호를 사용하는 방법이다. 즉, 세컨드폰은 공적인 용도의 휴대폰과 사적인 용도의 휴대폰을 구분해, 사생활을 침범하는 ‘연결’에서 벗어난 물리적 환경을 만드는 방식으로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실현한다.

▲  | 세컨드폰은 스마트폰을 통한 연결에서 벗어나기 위한 물리적 방법이다. <출처: 플리커, Wendelin Jacober. CC BY 2.0></div>
▲ | 세컨드폰은 스마트폰을 통한 연결에서 벗어나기 위한 물리적 방법이다. <출처: 플리커, Wendelin Jacober. CC BY 2.0>

의도적으로 기능을 최소화한 휴대폰도 출시되고 있다. ‘더라이트폰(The Light Phone)’은 통화 기능만 탑재한 휴대폰이다. 크라우드펀딩 서비스 ‘킥스타터’를 통해 2015년 처음 선보였다. 현재는 투자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도 더라이트폰을 구매할 수 있다. 더라이트폰 측은 “더 많은 ‘연결’이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라고 통화만 가능한 휴대폰을 만든 배경을 밝혔다.

신용카드 크기만한 더라이트폰의 기능은 단순하다. 전화를 받고 거는 것과 시간을 확인하는 기능만 들어 있다. 전화번호도 최대 9개까지만 저장할 수 있다. 문자나 이메일도 확인할 수 없다. 블루투스 기능 역시 빠졌으며, 스마트폰과 연동되지도 않는다. ‘세컨드폰’인 더라이트폰은 잠시나마 스마트폰으로부터 떨어진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기획됐다.

더라이트폰 측은 “기술은 우리를 노예화하지 않고 우리에게 봉사해야 한다”라며 “우리는 반기술을 지향하지 않는다. 우리는 인간을 지향하며 우리의 삶을 되찾고자 한다”라고 자신들의 홈페이지를 통해 전했다. 흰색과 검은색 두 색상으로 판매되는 더라이트폰은 현재 미국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  | 세컨드폰으로 기획된 ‘더라이트폰’ <출처: 더라이트폰 홈페이지></div>
▲ | 세컨드폰으로 기획된 ‘더라이트폰’ <출처: 더라이트폰 홈페이지>

※ 참고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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