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세계적인 집단소송에 휘말리고 있습니다. 애플이 iOS를 새로 판올림하면서, 노후화된 배터리가 탑재된 기기는 의도적으로 기기 성능을 저하시켰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애플은 이에 대해 ‘소비자를 위한 조치’였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미국, 이스라엘 등의 소비자들은 집단소송을 제기하기 시작했고 소송은 유럽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국내 소비자들도 애플을 상대로 한 소송에 의지를 보이고 있고요. 아이폰 성능 저하 관련 소송 참여자를 공개모집한 법무법인 한누리에 따르면, 12월28일 오후 1시30분까지 2789명이 온라인을 통해 한누리에 집단소송 참여 의사를 밝혔다고 합니다. 꽤 많은 숫자입니다.

법무법인 한누리의 구효진 변호사는 “숫자를 집계한 것이 1시간 전이기 때문에 최소 수천명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쟁점은 ‘소비자 기만 행위’ 입증


아이폰 성능 저하 논란에 대해 애플은 “리튬이온 배터리는 날씨가 춥거나 배터리 충전량이 적을 때, 배터리가 노후화됐을 때 최대 전력 요구량을 덜 충족시키게 된다”라며 “이는 기기가 전자 부품을 보호하기 위해 의도치 않게 꺼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예상치 못한 전원 꺼짐 현상을 막기 위해 기기의 성능에 제한을 뒀다는 얘기입니다.

새로운 기기를 구매하도록 유도한 것이 아니라, 기기의 배터리 수명에 맞춰 전체 성능을 관리하고자 한 거라는 주장입니다. 해당 기능이 적용된 것은 iOS10.2.1가 처음이라고 하는데요, 지난해 갑작스러운 전원 꺼짐 현상에 대해 소비자들이 불만을 제기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업데이트입니다. 배터리 수명이 낮아지면 전력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도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이러한 조치가 과학적으로 옳고 그르냐 문제가 아닙니다. 핵심은 소비자의 ‘선택권’이죠.

기기를 보호하려고 했다는 얘기, 다 좋은데 왜 소비자에게 미리 알려주지 않았냐는 겁니다. 만약 소비자에게 먼저 배터리 수명에 맞춰 성능을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지했다면 소비자는 배터리만 신형으로 교체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이번 사안의 쟁점은 애플이 배터리 노후 정도에 따라 기기의 성능을 낮춘 조치가 정말 소비자를 위한 조치였는지, 아니면 신형 아이폰의 구매를 유도하기 위한 행위였는지 가리는 데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소비자를 ‘기만’한 행위인지를 가려야 하는 거죠. 만약 애플이 소비자의 불만을 받아들이고 배터리 관련 후속 조치를 취한다면 집단소송은 받아 들여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전에도 애플에 대해 비슷한 문제가 제기된 적이 있었습니다. 2011년에는 아이폰 3G 사용자가 iOS4 업데이트 때문에 스마트폰이 ‘먹통’이 됐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2015년에는 미국 아이폰4s 일부 사용자들이 iOS9 업데이트 후 성능이 현저히 저하됐다며 애플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걸었죠. 2011년 소송 건은 iOS 업데이트가 무료라는 이유로 기각됐고, 2015년 소송 건은 2017년 11월 받아 들여졌습니다.

당시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집단소송에 참여한 이들은 애플이 iOS9 업데이트에 따른 구형 아이폰의 성능 저하를 사용자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iOS9이 구형 아이폰의 성능을 크게 떨어뜨리리라는 것을 애플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게 집단 소송에 참여한 이들의 생각이다.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설치해 구형 아이폰의 성능이 떨어지면, 사용자들이 새 아이폰을 구입하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사실상 애플이 불필요한 지출을 강요하고 있다는 뜻이다.” - “iOS9가 구형폰 성능 떨어뜨려”…애플에 집단소송, <블로터>

국내 소송은 어떻게 진행되나


법무법인 한누리에 따르면 이번 ‘아이폰 성능 저하’ 문제의 경우 법적 대응을 원하는 국내 아이폰 구매자들은 ① 일반 민사소송방식으로 공동소송 제기 ② 미국 법정에서 애플을 상대로 미국식 집단소송을 제기하거나 이미 제기된 집단소송에 참여 ③ 소비자단체를 통해 집단분쟁조정을 신청 ④ 소비자단체를 통하여 단체소송 제기 등의 방식을 강구할 수 있다고 합니다.

①의 예로는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7 배터리 폭발 사고를 들 수 있겠습니다. 국내에서 원고만 1871명이 참여한 대규모 손해배상 소송이었죠. 애플을 상대로 한 이번 소송 역시 일반 민사소송방식의 공동소송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②는 유용하지만 미국 법원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 만큼 어려운 부분이 있죠. ③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강제력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④는 ‘소비자단체소송’이라 부르는데요. 2008년부터 소비자기본법에 의해 가능해졌습니다. 소비자의 피해를 입증하더라도 금전적 손해배상을 받을 수는 없다고 하네요.

구효진 변호사는 “사실 관계를 입증하기 위해선 미국 소송 정보를 얻는 방법을 택할 수 있다”면서 “공동소송을 진행하면서 미국식 집단소송을 제기하거나 미국에서 제기된 집단소송에 참여할 생각도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소송에 필요한 금액은 참여인원과 여러 사정을 고려해 조정된다고 합니다.

미국과 한국, ‘집단소송’과 '집단(당사자)소송'의 차이


조금 다른 얘기입니다만 위의 설명에서도 드러나는 것처럼 미국의 ‘집단소송’과 우리나라의 ‘집단소송’은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집단(‘당사자’)소송이라고 보면 됩니다. 미국은 피해자 한 명이 승소하면 피해자 모두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고, 한국은 승소하면 소송을 한 당사자들만 구제받을 수 있는 거죠.

미국식 집단소송은 규모부터 어마어마합니다. 피해자 1명이 피해를 인정받으면 별도로 ‘제외 신고’를 하지 않는 한 청원으로 확정되고 피해자 전체가 피해를 보상받게 되기 때문이죠. 기업이 지불해야 하는 금액이 상당하겠죠.

현재 미국 연방법원에는 애플 성능 저하 관련 9건의 소장이 제출된 상태입니다. 그중 한 건은 우리돈으로 1072조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반면 국내는 집단소송제도가 없었는데요. 2005년에 증권분야에만 집단소송이 도입됐습니다. 그마저도 집단소송을 하기 위해 ‘허가’를 받는 과정이 요구되기 때문에 증권집단소송이 도입된 지 11년 만에야 첫 재판이 열렸었죠. 그중 소송 허가에만 6년이 소요됐답니다.

집단소송제도는 기업이 지게 되는 부담감이 과중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집단소송을 남발하게 되면 웬만한 기업은 다 망하게 된다고도 말하고요. 피해자가 집단소송을 택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집단소송은 소비자, 환경 분야에서 입법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이 입법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과 함께 ‘집단소송제’ 영역 확대를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그리고 올해 6월29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소액·다수의 소비자 피해를 보다 효율적으로 구제할 수 있는 집단소송제 도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죠. <한국경제>가 12월28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 상반기 중 소비재 전 분야를 아우르는 집단소송제 관련 법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 법안이 통과되기까지는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편 애플은 12월28일 자사 사이트에 사과문을 게재하고, 내년 초까지 배터리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iOS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발표할 예정이며 배터리 교체 가격을 임시적으로 인하한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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