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의 묘(妙)는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블록체인은 사람들의 참여를 엔진 삼아 작동합니다. 인간 개입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기술 발달사에서 튀는 녀석이죠. 자동화 기술이 인간을 생산 프로세스 밖으로 밀어내고 인공지능(AI)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블랙박스 영역을 넓혀갈 때, 블록체인은 사람을 끌어안습니다. [한수연의 블록체인, 이 사람] 시리즈는 블록체인을 특별하게 만드는 바로 그 요소, ‘사람’에 집중합니다. 블록체인 씬(scene)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기록하겠습니다.

2018년 ‘토큰경제 [bref desc="리부트(reboot)는 원래 컴퓨터 전원을 껐다 다시 켜게 하는 프로그램 명령어를 뜻한다. 영화계에서는 시리즈의 연속성을 버리고 기본 설정을 유지한 채 작품 세계를 새롭게 구성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기사에서는 영화에서 쓰이는 리부트의 의미를 차용했다. 즉 침체됐던 토큰경제 연구가 최근 암호화폐에 특화된 방식으로 새롭게 시작됐다는 의미이다."]리부트[/bref]’가 시작됐다. 발화 지점은 블록체인. 토큰경제의 뿌리를 떠올리면 다소 이질적인 영역에서 다시 불이 붙은 것이다. 토큰경제는 19세기 행동심리학에서 시작돼 주로 정신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치료법 혹은 학생 교육의 한 방법론으로 연구됐다. 연구 성과는 1970년대에 정점에 이르러 널리 보급됐다. 하지만 이내 다양한 문제와 비판에 부딪혔고 1980년대부터 하락했다. 이랬던 토큰경제가 ‘암호화폐’라는 디지털 토큰을 마중물 삼아 21세기에 다시 등장한 것이다.

김문수 aSSIST(서울과학종합대학원) 디지털전략기획MBA 주임교수 겸 암호경제연구소장은 그 이유에 대해 “블록체인 기술이 (과거) 토큰경제학에서 개념적으로 상상만 했던 것들을 현실에서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암호화폐발행(ICO) 주관사인 비크립토 대표로도 활동하며 토큰경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과거 이투스와 스마투스를 창업해 성공 스토리를 쓴 바 있는 김문수 교수, 그는 어떤 계기로 토큰경제 연구를 시작하게 됐을까. 또 그가 성공적인 토큰경제 모델 설계 전략으로 제시하는 포인트는 무엇일까. 김문수 교수의 토큰경제 이야기를 띄운다.

▲  김문수 aSSIST 디지털전략기획MBA 주임교수/aSSIST 암호경제연구소장 겸 비크립토 대표. (사진=김문수 교수 제공)
▲ 김문수 aSSIST 디지털전략기획MBA 주임교수/aSSIST 암호경제연구소장 겸 비크립토 대표. (사진=김문수 교수 제공)

'부끄러워' 뛰어든 토큰 경제…“한국이 토큰 경제학 헤게모니 쥐게 하고파”


"너무 부끄러워서…."

김문수 교수에게 토큰경제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묻자 돌아온 답변은 의외였다. 이 답변의 맥락은 이렇다. 김 교수는 많은 기업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 회사가 토큰을 발행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느냐’라는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고 한다. 기술적인 방법을 묻는 것이 아닌 토큰경제를 어떻게 설계해야 하느냐는 물음이었다. 반복되는 질문에 김 교수는 토큰경제학 논문을 찾아봤다. 하지만 암호화폐에 특화된 토큰경제 연구는 없었다.

"너무 부끄러웠다. 나도 교수가 됐으니 이건 비판할 일이 아닌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었다. 부랴부랴 자료를 모으고 토큰경제학을 (암호화폐에 특화해) 재해석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블록체인 자체는 기술의 영역이다. 하지만 이 기술을 바탕으로 한 암호경제학, 그리고 비즈니스 영역에서 토큰경제 모델을 설계하는 것은 사회과학적 지식을 요한다. 김 교수는 토큰경제학에서 등장하는 사회과학 메커니즘에 대해 "단순히 알면 좋은 정도가 아니다. 입증된 사례를 통해 공부를 서둘러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토큰경제학에 있어 한국이 헤게모니를 쥐고 논쟁을 이어나가게 하고 싶다"는 희망을 내비쳤다.

"준비된 ICO 팀이라면 토큰경제 페이퍼 따로 내야"


이 '알면 좋은 정도가 아니라, 알아야 할' 토큰경제 모델 공부를 서둘러야 할 주체는 단연 토큰 발행자인 ICO 팀이다. 김문수 교수는 "ICO의 핵심은 토큰경제 모델 설계"라고 강조하며 "(토큰) 발행자들은 참여자가 토큰경제 모델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한 백서를 쓸 의무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나온 백서들은 얼마나 친절했을까. 김 교수는 "그나마 모범 사례는 스팀 백서”라며 "대부분 백서에는 토큰을 몇 개 발행해 얼마만큼 분배하겠다는 내용이 한 페이지 분량 서술된 정도"라고 말했다. 본격적인 '토큰경제 모델'이 아닌 '토큰 분배’(token allocation)만 설명해놓은 백서가 넘쳐난다는 지적이다.

"역량이 없어서 못 하는 게 아니다. 이 정도만 설명해도 ICO로 자금을 모을 수 있게 시장 표준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관행을 벗어야 한다. 백서에서 토큰경제 모델에 대해 설명한 비율이 30%는 돼야 한다. 좀 더 정성을 들이자면 따로 백서를 써야 한다. 요즘 준비된 ICO 팀들은 일반 백서와 기술 백서를 따로 낸다. 나는 여기에 토큰 경제 백서를 따로 내야 한다고 본다."

토큰경제 모델 설계를 위한 전략적 포인트들


토큰경제 모델이 ICO의 알파요 오메가라는 것에 공감했다면 그다음 궁금증은 자연스레 '어떻게'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토큰경제 모델 설계를 달리 말하자면, 발행된 토큰이 잘 유통되고 그 가치가 인위적인 조작 없이 상승 곡선을 그리도록 우연성을 관리하는 것이다. 김문수 교수는 이를 위해 “네트워크 과학을 이해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 네트워크 과학과 전략적 허브

네트워크 과학은 세상에 존재하는 네트워크들이 지닌 ‘법칙’을 찾는 학문이다. 토큰경제학에서는 네트워크의 허브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김문수 교수는 “어떻게 전략적 허브를 찾아내 육성할 것인가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스팀잇을 예로 들자면 스팀파워를 많이 보유한 소위 ‘고래’가 스팀잇 네트워크의 허브다. 스팀잇은 네트워크 과학의 ‘지프(Zipf)의 법칙’을 참고해 사용자 보상 분배 비율을 정했다.

▲  스팀 백서에는 네트워크 과학에서 적립된 '지프의 법칙'이 등장한다. (출처=스팀 백서)
▲ 스팀 백서에는 네트워크 과학에서 적립된 '지프의 법칙'이 등장한다. (출처=스팀 백서)

이렇게 만들어진 스팀잇의 보상 시스템은 사용자들이 고래가 되고 싶게끔 유도하는 동시에 글을 적게 쓰는 사람들에게도 소액의 보상이 돌아가도록 한다. 김 교수는 “이같이 기존 사회과학 이론을 활용하면 토큰경제 모델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 또 디자인된 토큰 에어드롭도 고민해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 토큰의 유통 속도(V)

토큰의 유통 속도(Velocity of Token·이하 ‘V’) 역시 중요하다. 김문수 교수는 “토큰의 가격 설정에 있어 V가 절대적인 변수는 아니지만 중요한 요소”라며 “V가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게 적절하게 유지하면서, 궁극적인 방향성은 토큰 장기 보유를 유도할 수 있게 디자인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V가 너무 높다는 것은 곧 사람들이 해당 토큰을 보유하고 있는 기간이 짧다는 것인데, 김 교수는 "토큰 보유 기간이 너무 짧으면 상대적으로 (토큰) 가격이 오르는데 불리하다는 것은 여러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토큰 보유 기간이 무제한 늘어나면 거래량이 0이 되므로 이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결국 토큰 보유 기간이 ‘적절히’ 늘어나게 하는 세밀한 설계가 필요하다. 김 교수는 ▲이익 공유 메커니즘 ▲프로토콜에 돈을 거는(staking) 기능 ▲네트워크 효용 확대 메커니즘 등 V를 적절하게 조절하기 위해 고안된 메커니즘을 소개했다.

# 시스템 다이나믹스

좀 더 세심하게 토큰경제 모델을 설계하려면 배경지식의 확장이 필요하다. 김문수 교수는 그 예로 ‘시스템 다이내믹스’를 소개했다.

시스템 다이내믹스는 기존 통계학과 달리 유동적인 인과 관계를 분석하는 연구 방법론이다. 동태적인 시스템 전개 과정과 변화 유형을 발견하는 것에 주목한다.

실제로 시스템 다이내믹스를 적용해 토큰 경제 모델을 설계한 사례가 있다. 조나파이드 코인이 취한 모델이다. 폴 워랄 조나파이드 설립자는 미디엄 블로그에 조나파이드 생태계를 시스템 다이내믹스로 분석해 제시했다.

시스템 다이내믹스를 적용해 제시한 조나파이드 코인의 사례 (출처=폴 워랄 조나파이드 설립자의 미디엄 블로그)
시스템 다이내믹스를 적용해 제시한 조나파이드 코인의 사례 (출처=폴 워랄 조나파이드 설립자의 미디엄 블로그)

김문수 교수는 "이처럼 토큰경제 모델을 세워 미래에 대한 예측치를 논리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라며 "물론 이렇게 제시된 내용이 '확정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추상적인 말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고민해서 (토큰경제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리버스 ICO 한다면 더 신중하라"


김문수 교수는 "리버스 ICO의 경우 토큰경제 모델 설계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리버스 ICO는 신규 사업자가 아닌 이미 사업을 하고 있는 기업이 기존 사업에 토큰경제를 도입하는 것을 뜻한다.

기업이 리버스 ICO에 나설 때 브랜드, 주주 가치 등 고려하고 지켜야 할 내용이 많다. 또 기존 비즈니스 모델의 성격에 맞게 토큰경제 모델을 설계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김 교수는 "토큰경제 모델에 있어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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