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새로 발표한 아이패드 프로를 살펴본 소감을 최호섭 자유기고가가 기고했습니다._편집자

애플이 아이패드 프로를 발표했다. 이전 아이패드 프로가 아이패드 에어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번의 변화폭은 상당히 크다. 무엇보다 홈 버튼과 터치 ID를 떼어내고, 아이폰 X처럼 재스처와 페이스 ID가 대신하게 되면서 테두리를 거의 없앤 모습이 시선을 끈다. 아이폰 X이 앞으로의 10년을 언급했던 것처럼 아이패드도 그 변화의 흐름을 따른다.

테두리는 아이패드의 특성과 관련이 있는 디자인 요소다. 단순히 기술적인, 미적인 부분이 나이라 양손으로 쥐고 써야 하는 기기이기 때문에 잡을 부분이 필요하다. 이 테두리를 줄일 수 있는 이유는 원하지 않는 손가락, 혹은 손바닥의 터치를 알아채고 이를 신호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했기 때문이다. 애플은 이 ‘팜 리젝션(Palm rejection)’을 더 잘 할 수 있게 될 때마다 아이패드의 테두리를 줄였고, 새 아이패드 프로는 홈 버튼이 빠지면서 극단적인 형태를 띄게 됐다.

홈 버튼이 빠진 것은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애플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아이패드에서 홈 버튼을 떼어내려는 시도를 해 왔다. 아이패드의 iOS는 홈 버튼이 없어도 손가락을 오무려서 앱을 빠져나가고, 네 손가락으로 쓸어넘겨 앱 전환을 할 수 있게 하면서 홈 버튼의 역할을 줄이는 실험을 해 왔다. 그리고 지난해 iOS11을 내놓으면서 아래에서 쓸어 올리는 입력 방식으로 홈 버튼을 대체했다. 홈 버튼이 사라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결국 홈 버튼의 마지막 역할이었던 지문인식 기술 터치 ID를 페이스 ID로 대신하면서 새 아이패드 프로는 아이폰처럼 디스플레이를 갖게 됐다.

그런데 새 아이패드 프로는 이 디자인적인 부분 외에 기능적인 면에서 큼직한 변화가 있다. iOS 기기의 입출력 단자인 ‘라이트닝’을 걷어내고 USB-C 포트를 달았다는 점이다. 그 동안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USB-C를 달아 달라는 수요는 많이 있었다. 앞 뒤 구분 없이 연결할 수 있고 전력 공급이나 데이터 전송 속도 등 모든 면에서 USB-C는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플은 이를 쉽게 바꿀 수 없었다. 다만 라이트닝 단자를 이용한 스피커나 독, 헤드폰 등 기존 액세서리 생태계가 잡혀 있었고 액세서리 인증인 MFi(Made for iPhone, iPad, iPod)는 단순히 라이트닝 단자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기기의 역할과 기능을 제어할 수 있는 애플의 안전장치이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패드 프로에 USB-C가 덥석 들어갔다. 왜일까? 이는 단순히 보면 충전 단자 규격을 바꾼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사실 그 안에는 애플이 바라보는 아이패드 프로의 역할이 녹아 있다. 목적이 있는 단자 변경이라는 이야기다. 아이패드 프로 외에 다른 기기가 단숨에 USB-C로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애플이 보도자료를 통해 설명한 USB-C의 역할을 먼저 살펴보자.

새로운 USB-C 포트는 기존의 라이트닝 포트를 대체하며 아이패드 프로를 더 강력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 놀랍도록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USB-C는 충전을 위한 전원 공급은 물론 USB 3.1 Gen 2를 통한 고대역폭 전송을 지원하여 카메라나 악기와 최대 두 배 속도로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으며,최대 5k까지의 외부 디스플레이를 연결할 수 있다. USB-C를 활용하면 아이패드 프로로 아이폰을 충전하는 것도 가능하다.

애플은 새 아이패드 프로를 전문가용 기기로 보고 있다. 이는 이전 아이패드 프로도 마찬가지였다. 초기에는 키보드와 애플 펜슬에 무게를 두었다. 그림, 그리고 글이 중심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이패드는 생각보다 더 많은 곳에 쓰였다. 대표적인 것이 음악이다. 애플은 이미 가라지 밴드를 업데이트하면서 외부 악기를 연결해 그 자체로 하나의 완전한 음악을 만들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아이패드는 거의 모든 미디 악기를 연결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기기를 연결하려면 라이트닝 단자를 USB로 바꾸는 젠더가 필요했다. 일부 악기들은 아예 라이트닝 단자에 연결할 수 있는 케이블을 준비하기도 했다.

사진 편집도 애플이 주목하는 분야다. 그런데 대용량 사진을 아이패드로 보내는 것은 꽤 인내가 필요했다. 라이트닝 단자가 USB 2.0 기반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2.9인치 아이패드 프로에는 USB 3.0 기반의 라이트닝 단자를 넣었다. RAW 파일로 찍은 사진도 빠르게 옮길 수 있었다.

이처럼 애플이 생각하는 아이패드의 ‘창작 활동’에는 주변기기가 필요하다. 아이패드 프로는 아마추어의 취미활동 뿐 아니라 전문가의 작품까지 아이디어를 결과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기기로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려면 적어도 입출력 단자가 장애가 되면 안 된다. 여러 기기를 연결하면서도 편리함과 고속 충전 수요 등 모든 부분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USB-C인 셈이다.

물론 아이폰이나 일반 아이패드 등 다른 iOS 기기에도 라이트닝 단자가 USB-C로 대체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출발은 아이패드 프로였고, 새 아이폰이 발표될 내년 이맘 때까지는 모든 기기가 라이트닝 단자로 통신하게 될 것이다. 대대적인 입출력 단자의 변화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이야기다. 그보다는 아이패드 프로가 단자보다 창작자 생태계를 선택했다는 쪽에 가깝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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