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블릿이나 펜을 쓰는 컴퓨터가 필요하다면 가장 좋은 선택지는 애플의 아이패드 프로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서피스 프로다. 목적이 명확하다면 주저할 필요가 없다. 결정을 꺼리게 만드는 건 단 하나, 값이다. 100만원을 훌쩍 넘기는 태블릿은 용도가 어찌됐든 선뜻 손을 내밀 수 있는 물건은 아니다. 이 기기들에 ‘프로’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특히 태블릿의 용도가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동영상이나 게임, 웹 서핑 등 콘텐츠 소비를 큰 화면에서 하는 것이라면 ‘태블릿’이라는 분류 안에서도 완전히 다른 기준으로 제품을 골라내야 한다. 작은 컴퓨터로서의 태블릿과 큰 스마트폰으로서의 태블릿이 구분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  | 화웨이 미디어패드 T5
▲ | 화웨이 미디어패드 T5

스마트폰으로 보던 것들을 조금 더 큰 화면에서 보는 용도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보급형 안드로이드 태블릿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때 막 쓰고 망가져도 부담이 없을 만큼 저가의 태블릿을 찾다 보니 10만원도 채 나가지 않는 중국산 제품들이 이렇게 많았다는 점에 놀랐던 적이 있다. 하지만 마냥 싼 제품만 찾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사실 안드로이드 기기를 고르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화웨이 미디어패드는 그 고민에 꽤 잘 맞는 브랜드다. 화웨이는 프로세서를 직접 개발하는 안드로이드 기기 제조사다. 그래서 필요에 따라 인공지능 관련 기술을 처리하는 고성능 제품부터 샤오미와 맞붙을 만큼 저렴한 제품을 동시에 내놓는다. 미디어패드 T5는 가격이 중심이 되는 기기다.

미디어패드 T5는 10.1인치에 1920×1200픽셀 해상도를 내는 디스플레이가 중심이다. 16:9가 아니라 16:10 비율이다. 16:9 비율의 동영상을 볼 때 위 아래 검은 띠가 지나가긴 하지만 세로로 세웠을 때 너무 길쭉해보이지 않고 가로 화면에서도 안정감이 있다. 화면 비율은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 사용 용도를 따져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여러가지 앱을 쓰는 ‘범용성’이라는 측면에서는 16:10이 더 맞을 수도 있다.

▲  | 화면은 16:10 비율이다. 세로 화면을 볼 때는 16:9보다 더 낫다.
▲ | 화면은 16:10 비율이다. 세로 화면을 볼 때는 16:9보다 더 낫다.

버튼위치는 조금 어색하다. 가로 방향으로 두었을 때 오른쪽 위에 전원과 음량 조절 버튼이 있다. 스마트폰을 기준으로 배치한 것 같다. 적응하면 될 문제이긴 한데 세로 방향으로 쓰면 전원을 켤 때마다 자연스럽게 다른 곳에 먼저 손이 간다. 작은 부분이지만 제품에 들어 있는 모터의 진동이 부드러워서 키보드를 칠 때마다 톡톡 두드려주는 느낌이 좋다.

프로세서는 화웨이가 직접 개발한 ‘기린(Kirin)659’ 칩을 쓴다. 8개 코어가 고성능과 저전력을 나누어서 처리한다. 고성능 코어는 2.36GHz, 저전력 코어는 1.7GHz로 작동한다. 그래픽 코어는 ARM의 ‘말리 T830 MP2’를 쓰고 시스템 메모리는 3GB다.

소프트웨어는 안드로이드 8.0 기반의 EMUI 8.0이 깔려 있다. 화웨이가 직접 만든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다. 최적화 같은 이야기를 꺼낼 것도 없다. 값이 싸다고 해서 못 쓸 정도로 느린 기기를 찾는 게 더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화웨이가 직접 만드는 프로세서라 익숙하진 않다. 긱벤치(GeekBench) 테스트로 싱글코어. 성능은 920점 대, 멀티코어 성능은 3400점 대를 기록한다. 싱글코어 성능은 스냅드래곤 800 정도, 멀티코어 성능은 스냅드래곤 820 정도 된다고 보면 된다. 샤오미 제품을 써 본 경험이 있다면 샤오미가 즐겨 쓰는 퀄컴의 스냅드래곤 625 칩과 견줄 만 한 성능이라고 보면 된다.

▲  | 소재나 마감도 좋다. 가격에 대한 편견을 가질 이유가 별로 없는 제품이다.
▲ | 소재나 마감도 좋다. 가격에 대한 편견을 가질 이유가 별로 없는 제품이다.

화웨이 역시 프로세서와 운영체제를 직접 다루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최적화가 잘 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빠릿하고 매끄럽게 작동한다. 하지만 애초 EMUI가 태블릿을 기준으로 맞춰 만든 운영체제로 출발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간혹 화면의 구성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크게 만들어 놓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디스플레이 설정에서 텍스트 크기를 ‘작게’로 바꾸고, 크롬 웹 브라우저의 설정을 ‘데스크톱’으로 두면 대체로 스마트폰 같은 느낌은 사라진다.

미디어패드 T5를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불만 없는 기기’라고 할 수 있다. 아주 강력한 기기는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기기에 기대하는 부분들은 충분히 채우고 있다. 더구나 이 태블릿은 30만원 이하 가격에 살 수 있는 기기다. ‘저렴한데 쓰기에 괜찮을까?’라는 반응이 먼저 나올지 모르겠지만 미디어패드 T5는 크게 흠을 잡을 부분이 없다. 가장 먼저 기기의 인상을 결정하게 되는 것은 역시 화면이다. 디스플레이는 풀HD 해상도를 내고, IPS 방식으로 시야각이나 색 표현이 괜찮다. 아, 물론 DCI-P3나 HDR10 같은 고화질 요소가 들어가는 것은 아니고 색 튜닝도 ‘정확하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거슬리는 부분은 없다. 중국 안드로이드 기기들이 보통 기기 설정에서 화면 색을 손볼 수 있도록 하는데 이 제품도 색온도를 비롯해 조금 색을 바꿀 수 있다.

▲  | 10.1인치는 너무 작지도, 크지도 않다. 들고 다니면서 쓰기에도 큰 부담이 없고 배터리도 오래 간다.
▲ | 10.1인치는 너무 작지도, 크지도 않다. 들고 다니면서 쓰기에도 큰 부담이 없고 배터리도 오래 간다.

미디어를 소비하는 입장에서 보면 스테레오 스피커의 차이는 꽤 크다.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이용한다고 해도 집에서 혼자 침대에 누워 TV 대신 태블릿 들여다보는 재미에 스피커는 매우 중요하다. 미디어패드 T5에는 다행스럽게도 스테레오 스피커가 두 개 달려 있다. 소리도 괜찮은 편이다.

이 기기를 써보면서 가장 많이 떠오른 단어는 ‘괜찮다’였다. 아주 애매한 말이지만 이 기기를 설명하기에 이만한 단어도 없다. 모난 데가 없다. 그만큼 제품들이 상향 평준화되어 있다는 말로도 연결할 수 있다. 비싸지 않은 제품이지만 금속 재질의 케이스로 마감했다. 요즘 기기에 알루미늄이나 마그네슘을 썼다고 해서 고급스럽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장점인 건 맞다. 단단하고 묵직한 느낌이 있다. 무게는 460g인데 배터리 용량을 따지면 가벼운 편이다. 배터리 용량은 5100mAh다. 한번 충전하면 걱정 없이 꽤 오래 쓸 수 있다.

▲  | 성능이나 디자인, 배터리 등 전체적으로 무난하게 쓰기 좋은 태블릿이다. LTE가 되는 건 가장 좋은 점이다.
▲ | 성능이나 디자인, 배터리 등 전체적으로 무난하게 쓰기 좋은 태블릿이다. LTE가 되는 건 가장 좋은 점이다.

미디어패드 T5는 새로움을 이야기하진 않는다. 대표적인 것이 USB 단자다. USB-C는 기능적으로 훌륭한 단자지만 이 제품의 소비자는 마이크로 USB 단자의 범용성과 저렴함을 더 낫다고 여길 수 있다. 미디어패드 T5는 정확히 ‘평범함’이라는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30만원 이하로 살 수 있는 LTE 태블릿이라는 강점이 잘 드러나 있다. 굳이 용도를 설명하고 제한할 필요가 없다. 작은 스마트폰 대신 큰 화면으로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 된다. 블루투스 키보드 하나 연결하면 기본으로 설치된 오피스365 같은 업무용 앱도 돌아가고, 교육용 미디어 태블릿으로 쓰기에도 부담이 없다. 더 좋은 제품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빠듯한 가격대에 두루두루 만족할만한 ‘괜찮은’ 제품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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