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갤럭시 언팩 행사를 열고 새 스마트폰들을 쏟아냈다. 특히 2월 행사는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기술을 이끄는 갤럭시 S 시리즈가 공개되기 때문에 가장 큰 관심을 받는 자리다. 삼성전자는 이번 행사에서 갤럭시 S의 10번째 제품인 갤럭시S10을 비롯해 여러가지 제품을 함께 발표했다. 여전히 주인공은 갤럭시S10다. 하지만 이번 행사에는 제품 그 자체보다 라인업에 흥미로운 볼거리가 숨어 있다.

세상의 관심은 ‘갤럭시 폴드’에 쏠렸다. 오랫동안 소문으로 돌았던 ‘접는’ 스마트폰이다. 접었을 때 화면 크기는 21:9 비율의 4.6인치인데 펼치면 4.2:3 비율의 7.3인치로 커진다. 삼성전자가 지난 2011년부터 전시회에서 시제품으로 선보였던 휘는 디스플레이가 상용화 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갤럭시 폴드, 큰 화면과 휴대성 딜레마를 풀다

삼성전자는 갤럭시 폴드의 화면이 ‘휘는’ 것이 아니라 ‘접히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종이를 접는 것처럼 정확히 설계된 면을 따라 접히는 것이다. 이는 기술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일단 반복적으로 접히는 면의 내구성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또한 화면이 직접 접히기 때문에 자칫 변형이 생길 수 있다. 또한 깨끗하게 접히려면 두께가 얇아야 한다. 종이 한 장을 접는 것과 공책 한 권을 통째로 접었을 때 접히는 면의 모양이 다른 것을 떠올리면 된다. 안쪽면은 흔히 ‘운다’고 하는 울퉁불퉁한 표면을 가질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소재로 내구성을 극복했고 특수 힌지를 통해 변형이 일어나지 않고 잘 접힐 수 있게 설계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폴리머 소재를 이용해 기존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보다 두께가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종이처럼 얇으면서도 튼튼한 디스플레이가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다. 상용화라는 것 자체가 가장 확실한 완성 메시지다.

시장이 갤럭시 폴드에 호기심을 갖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일단 그 동안 스마트폰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힌 큰 화면과 휴대성의 딜레마를 풀어낼 가장 현실적인 기술이다. 평소에는 작은 스마트폰으로 쓰다가 영화나 게임, 전자책 등 큰 화면이 필요할 때는 화면을 펼치면 된다. 화면 크기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화면 비율도 바뀐다. 7.3인치에 4.2:3 비율 화면이면 그 자체로 작은 태블릿으로 볼 만하다. 그 동안 패블릿으로 통하는 큰 화면의 스마트폰을 고민하지 않아도 충분히 큰 화면을 얻을 수 있고, 동시에 크기도 줄일 수 있다. 화면은 명확히 커지는 추세지면 여전히 아이폰SE를 원하는 수요가 있는 것처럼 가볍고 작은 기기에 대한 수요는 확실히 남아 있다.

스마트폰 혁신은 계속된다

또 한 가지는 새로움이다. 요즘 스마트폰 시장은 정체기에 접어 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장 성장이 주춤해졌을 뿐 아니라 기술 발전도 이전만큼 극적이지 않다. 느리고 안 좋은 스마트폰 찾는 것이 오히려 어려울 정도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경험을 주는 제품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스마트폰이 변화하면서 생활 습관과 모든 산업의 형태가 바뀌는 큰 경험을 한 터라 어지간한 자극에는 무뎌지게 마련이다. 살지 말지를 떠나 ‘놀랍다’고 느낄만한 무엇인가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

세 번째는 차별성이다. 두 번째 이유처럼 스마트폰이 서로 엇비슷하게 상향 평준화되면서 스마트폰으로 ‘다름’을 표현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사실 대부분의 기기는 성장, 대중화를 겪으며 가격이 내려가고 그 이후에는 많은 제조비용을 들여 차별화하기가 쉽지 않다. 사실상 차별점에 대한 수요도 사라진다. PC와 노트북 시장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묘하게도 다름의 수요가 줄어들지 않았고, 아이폰 X 이후 스마트폰 가격이 100만원 선의 장벽을 넘을 수 있게 됐다. 좋다면 충분히 살 수 있다는 시장의 메시지가 나온 셈이다.

삼성전자는 이 수요와 갤럭시S 10주년이라는 무게를 갤럭시 폴드로 풀어냈다. 10년에 대한 의미를 기술에서 찾았다는 이야기다. 삼성전자는 여전히 스마트폰을 가장 ‘잘’ 만드는 회사다. 설계 뿐 아니라 스스로 필요한 반도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 회사다. 그 기술력을 보여주어야 했다. 하지만 과감한 모험은 쉽지 않다. 시장 상황이 불투명한데 이전과 완전히 다른 무엇인가로 단숨에 넘어가는 것은 회사도, 소비자들도 바라지 않는다. 옳다고 생각하면 단칼에 리거시(legacy)를 잘라내는 애플도 아이폰X을 내놓으면서 기존 사용자경험(UX)를 그대로 가져가는 아이폰8을 함께 꺼내 놓은 바 있다.

갤럭시 폴드의 접는 화면은 충분히 파격적인 변화일 뿐 아니라 가격적인 부담이 남아 있는 기술이다. 현재 1980달러 선으로 가격이 정해질 계획이다. 세금과 환율을 따져보면 우리 돈으로 약 250만원 정도에 팔릴 것으로 보인다. 결코 당장 대중화될 수 있는 기기도 아니고 많이 팔리지도 않는다. 공급이 충분히 이뤄질지도 아직 모를 일이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제품이 몇 대 팔리느냐가 아니다. 시장이 이 형태를 스마트폰 진화의 한 방향으로 받아들여 줄 것이냐가 핵심이다. 삼성전자는 이례적으로 지난해 핵심 요소인 디스플레이와 화면 인터페이스를 먼저 공개한 바 있다. 이벤트에 대한 관심과 놀라움보다도 현실적인 고민이 더 컸다는 이야기다. 시장이 ‘옳다’고 판단하면 자연스럽게 가격이 내려가고 대중화되는 것이 기술의 흐름이다. 삼성전자가 앱 생태계에 공을 들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갤럭시S10e으로 가격 경쟁력 확보에 나서다

역설적이지만 지금 삼성전자에게 가장 중요한 제품은 갤럭시S10e다. 보급형 제품이다. 삼성전자는 이번 갤럭시 S10 발표를 두고 보도자료를 통해 ‘새로운 표준을 제시한다’는 메시지를 냈다. 갤럭시 S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업계의 실질적인 표준이자, 목표 역할을 맡아왔다. 갤럭시S10과 갤럭시S10+ 역시 진화의 역할에 집중했고, 지금 가장 최적의 기술을 꼽아 조립한 ‘스탠더드’다. 변화에 대한 기대는 갤럭시 폴드에게 넘겼다. 그리고 일반 스마트폰의 가장 끝은 ‘갤럭시S10 5G’에게 맡겼다. 어떻게 보면 갤럭시S10의 위치는 삼성전자 안에서도 기준점이 되고 있는 셈이다.

실제 시장을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가격이다. 갤럭시S10e가 갖는 의미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갤럭시S10의 스펙은 모든 이용자들에게 필요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 브랜드와 기본기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강력하다. 갤럭시S10e는 딱 그 부분을 자극한다. 시장에 따라 다르겠지만 실질적으로 가장 좋은 성적을 내야 하는 기기다. 이는 애플의 정책과도 비슷하다. 애플은 아이폰XS를 중심에 두었지만 실제 판매는 아이폰XR이 이끌어 간다. 기본 요소들을 모두 갖고 있으면서도 같은 시리즈라는 이미지를 준다. 그리고 중요도가 낮은 일부 요소를 떼어내고 가격을 낮게 잡는다.

이를 통해 삼성전자는 중저가 제품으로 내려가려는 이용자를 갤럭시S에 묶어놓을 수 있고 주춤한 판매량을 다시 끌어올리면서도 플래그십의 자존심은 지킬 수 있다. 애플의 지난 가을 발표에서 아이폰XR이 그랬듯 갤럭시S10e는 조용하면서도 가장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셈이다. 갤럭시S10e를 비롯한 제품들이 충분히 판매를 뒷받침해주어야 갤럭시 폴드같은 제품들이 과감한 발을 떼어놓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1년에 한 개로 줄어들었던 시리즈 신제품 수가 다시 늘어나는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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