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세 끼 식사를 하는 것처럼 AR 경험은 일상의 일부분이 될 것”

팀 쿡 애플 CEO은 지속해서 증강현실(AR)의 잠재적 가능성에 대해 언급해왔다. AR 기술은 현실과 단절되는 가상현실(VR)과 달리 현실 세계 위에 가상 정보를 입혀준다는 점에서 유망한 기술로 꼽힌다. 애플은 2017년 아이폰에 AR 기능을 집어넣었다. 스마트폰의 다음 단계는 AR 글래스로 점쳐진다. 애플은 2020년 AR 글래스를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조사기관 IDC는 2023년 기준으로 AR 헤드셋 출하량이 3190만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

▲  | 레티널 AR 스마트글래스
▲ | 레티널 AR 스마트글래스

레티널은 AR 글래스에 들어가는 렌즈의 광학계 솔루션을 개발하는 국내 스타트업이다. 바늘구멍 원리(핀홀)를 응용해 개인의 시력 차이나 초점거리와 무관하게 뚜렷한 상을 보여주는 AR 렌즈를 자체 기술로 개발했다. 지난 2월 'MWC 19 바르셀로나'에서는 안경처럼 쓸 수 있는 AR 글래스 시제품을 공개했다. <블로터>는 최근 레티널 사무실에서 AR 글래스를 경험해볼 기회가 생겼다.

먼저 짚고 넘어갈 부분은 레티널이 AR 글래스 완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레티널은 AR 글래스에 들어가는 렌즈 광학계 솔루션만을 전문적으로 만든다. 이 때문에 레티널 AR 글래스로 완성된 AR 콘텐츠를 경험해볼 수는 없었다. 대신 주목할 부분은 광학계 솔루션의 단순화와 이로 인한 폼팩터 크기의 소형화다.

AR 글래스는 하드웨어적인 제약 때문에 대중화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복잡한 광학계다. 기존 AR 기기는 복잡한 광학계 구조 문제로 안경 형태로 폼팩터를 작게 만드는 데 한계가 있었다. 또 좁은 시야각, 실제 사물과 가상 사물의 초점이 맞지 않는 문제, 색 번짐 현상, 복잡한 제품 구조, 발열 등이 주요 문제점으로 꼽힌다.

▲  | 레티널 AR 렌즈는 초점 거리와 상관 없이 선명한 상을 보여준다. (사진=레티널 유튜브)
▲ | 레티널 AR 렌즈는 초점 거리와 상관 없이 선명한 상을 보여준다. (사진=레티널 유튜브)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가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는 좁은 시야각이 문제시돼 왔다. 기존 홀로렌즈에는 속이 빈 도관을 이용해 사용자의 눈에 빛을 투사해 영상을 보여주는 도파관(waveguide) 기술이 활용됐다. 도파관은 눈앞의 유리판 가장자리에 빛을 쏘고 반사해 사용자에게 홀로그램을 전달해준다. '홀로렌즈2'는 도파관 기술과 더불어 레이저와 거울을 활용한 ‘미세전자기계시스템(MEMS) 레이저 스캐닝’ 기술을 활용해 시야각을 넓혔다.

▲  | '홀로렌즈2' 구조
▲ | '홀로렌즈2' 구조

하지만 여전히 '글래스' 형태와는 거리가 멀다. 이는 매직리프의 '매직리프 원'도 마찬가지다. HMD(Head Mounted Display) 크기를 홀로렌즈보다는 줄였지만, 배터리를 따로 착용하는 방식으로 꼼수를 부렸다.

레티널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늘구멍 원리를 활용했다. 레티널이 개발한 AR 글래스 시제품에는 7개의 바늘구멍이 뚫려 있다. 작은 구멍을 통해 사물을 보면 개인의 시력 차이와 무관하게 선명한 상을 볼 수 있는 원리다. 렌즈 윗부분에 달린 마이크로 OLED 디스플레이를 통해 빛이 렌즈로 전달되면 바늘구멍을 통해 비친 상을 눈으로 보는 구조다.

▲  | 레티널 AR 스마트글래스 착용 모습
▲ | 레티널 AR 스마트글래스 착용 모습

레티널 AR 글래스의 외관은 바늘구멍을 제외하고는 일반 안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때 유행했던 반무테 디자인을 갖췄다. OLED 디스플레이 모듈이 들어가는 안경테 부분이 조금 두껍다는 점을 빼면 튀지 않는 무난한 디자인이다. 무게도 일반 안경과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 시제품에는 오른쪽에만 AR 렌즈가 적용돼 있다.

AR 글래스를 통해서는 내비게이션, 레시피, 인공지능 통번역 솔루션 활용 사례 데모가 시연됐다. 마치 만화 '드래곤볼'에 등장하는 '스카우터'처럼 현실에 필요한 정보를 겹쳐서 보여줬다. 이 부분이 정교화되면 현실에서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보인다. 다른 AR 헤드셋처럼 빛이 외부로 새는 현상은 없었으며, AR 그래픽은 사용자에게만 비쳤다.

https://youtu.be/C-BzduB6Iwo

※레티널 AR 글래스 시연 영상(https://youtu.be/C-BzduB6Iwo). 포털사이트에 따라 영상이 지원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레티널은 바늘구멍 원리를 활용한 '핀미러' 기술을 통해 근거리부터 원거리까지 상을 선명하게 표현하고 색상 표현이 정확하며, 멀미 현상을 해소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레티널 AR 글래스는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가상 정보를 현실에 그럴싸하게 입혀준다. 레티널 측의 설명대로 멀미 현상은 느껴지지 않았다.

레티널 AR 글래스는 시력과 관계없이 AR 정보를 비춰주지만, 현실의 물체도 또렷이 볼 수 있도록 개인 시력에 맞는 렌즈 교체를 제공한다. AR 글래스에 사용된 렌즈의 시야각은 43도 수준이다. 바늘구멍이 늘어날수록 시야각은 넓어진다. 레티널은 양안 최대 120도 시야각을 표시할 수 있는 AR 렌즈도 따로 선보였다.

https://youtu.be/tLadH1Wnaqw

※레티널 멀티 핀미러 시연 영상(https://youtu.be/tLadH1Wnaqw). 포털사이트에 따라 영상이 지원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바늘구멍 때문에 발생하는 불편은 없을까. 레티널 측의 설명에 따르면 일부 사용자는 바늘구멍이 보이는 것처럼 느낀다고 한다. 바늘구멍의 잔상이 시야를 가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현상이다. 레티널은 이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바늘구멍 노출돼 거슬린다는 일부 사용자 피드백을 받아들여 외부에서 바늘구멍을 안 보이도록 핀미러 렌즈를 개선하는 부분도 연구 중이다.

▲  | 바늘구멍이 늘어날수록 시야각도 넓어진다.
▲ | 바늘구멍이 늘어날수록 시야각도 넓어진다.

레티널 AR 글래스는 렌즈 기술 시연을 위한 시제품이어서 현실과 상호작용하는 모션 기능은 갖춰지지 않았다. 또 데모 내용도 미리 정해진 영상을 틀어주는 수준이어서 정교한 AR 경험을 제공하진 않는다. 하지만 AR 글래스의 가능성을 미리 경험해볼 수 있었다. 특히 폼팩터 크기를 안경 수준으로 소형화했다는 점이 AR 글래스에 대한 기대를 하게 한다.

레티널은 지난해부터 CES와 MWC에 참여해 시제품을 선보여 글로벌 기업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지난해 8월 카카오와 네이버 등으로부터 40억원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한 데 이어, 12월에는 KB인베스트먼트로부터 20억원의 추가 투자도 유치했다. 레티널은 글로벌 기업들과의 협력을 통해 AR 글래스 상용화를 앞당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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