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니지'가 정액제를 폐지했다. 월 2만9700원을 내야 게임에 접속할 수 있었던 방식에서 무료로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바뀌었다. 21년 만에 리니지 정액제가 폐지된다는 소식에 업계는 온라인 게임 비즈니스 모델의 변화 추세에 주목했고, 언론은 주로 리니지 정액제 폐지가 갖는 상징성에 주목했다.

하지만 일부 이용자들은 이런 변화에 비판을 쏟아냈다. 월정액 폐지가 아닌 실질적 가격 인상이라는 게 비판의 요지였다. '아인하사드의 축복' 시스템과 '아인하사드의 가호' 아이템이 문제였다. 30일간 경험치 보너스와 아이템 획득률을 높여주는 유료 아이템 아인하사드의 가호를 구매하지 않을 경우 정상적인 게임이 힘들다는 비판이다. 아인하사드의 가호 30일 아이템은 정액제 폐지 직후 5만원에 출시됐다.

▲  | 논란의 중심이 된 월 5만원 '아인하사드의 가호' 아이템(사진=리니지 홈페이지)
▲ | 논란의 중심이 된 월 5만원 '아인하사드의 가호' 아이템(사진=리니지 홈페이지)

무과금 게임 플레이 힘들까


아인하사드의 가호 없이 리니지를 할 경우 얼마나 게임을 즐길 수 있을까. 제약되는 부분은 무엇일까. 경험치와 아이템을 얻을 수 없다는 게 사실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험치와 아이템 획득 확률을 조정하는 아인하사드의 축복 시스템을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마치 통신요금처럼 복잡한 이 시스템을 업데이트 공지사항만으로 제대로 알기는 어려웠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격언에 따랐다. 취재용 노트북에 리니지를 깔았다.

▲  | 게임 화면 왼쪽 상단에 '아인하사드의 축복' 수치가 표시된다.
▲ | 게임 화면 왼쪽 상단에 '아인하사드의 축복' 수치가 표시된다.

아인하사드의 축복은 경험치 보너스와 아이템 획득 확률을 높여주는 버프 효과다. 경험치 획득량에 비례해 소모된다. 0-4단계로 구성돼 있으며 단계별로 버프 효과가 다르다. 최대 수치는 5800%다. 기본적으로는 1단계 구간에 해당하는 1000%가 주어지며, 경험치 보너스 100%와 아이템 획득 확률 100%가 버프 효과로 제공된다. 문제는 아인하사드의 축복 수치가 0이 될 경우다.

▲  | 단계별 '아인하사드의 축복' 버프 효과 (사진=리니지 홈페이지)
▲ | 단계별 '아인하사드의 축복' 버프 효과 (사진=리니지 홈페이지)

리니지를 깔고, 캐릭터를 생성하고 아인하사드의 축복 수치가 0이 될 때까지 게임을 했다. 아인하사드의 축복은 화면 상단 왼쪽 구석에 초록색 이파리 모양으로 표시됐다. 리니지 리마스터 업데이트 이후 자동사냥을 지원해 불행인지 다행인지 손발 하나 까딱하지 않고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게임을 시작한 지 4시간 만에 아인하사드의 축복 수치는 0이 됐다. 약 2400마리의 몬스터를 잡은 뒤였다. 레벨 45 요정은 아무리 활을 쏘고 몬스터를 사냥해도 아이템 하나 먹지 못했다. 대신 경험치는 계속 올라갔다.

즉, 아인하사드의 축복 수치가 0이 될 경우 경험치는 기본 제공량으로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사냥을 해도 몬스터가 아이템을 떨어트리지 않는다. 이벤트나 퀘스트 아이템이 아닌 이상 말이다. 게임 속 가상화폐인 '아데나'도 얻을 수 없다. 1000% 기본 제공량은 하루에 한 번 무료로 충전할 수 있다. 매일 새벽 6시 무료 충전이 배급된다. 아인하사드의 가호는 이 아인하사드의 축복 1단계 버프 효과를 30일 동안 유지해주는 5만원짜리 아이템이다.

아인하사드의 축복은 경험치 획득량에 비례해 소모되기 때문에 강한 몬스터를 잡아 높은 경험치를 얻는 고레벨일 수록 유지 시간이 짧다. 일반적으로 50~60레벨은 3~4시간, 80레벨 이상은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버프 효과가 지속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기 때문에 이른바 '하드코어' 이용자들은 아인하사드의 가호가 필수다. 실질적 가격 인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린저씨' 정말 돌아올까


이러한 비판에 대해 엔씨소프트 측은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기존에도 아인하사드의 축복 시스템이 있었고, 버프 효과를 유지하기 위해 월정액 요금과 함께 더 많은 추가 과금이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아인하사드의 가호 30일 아이템을 스마트폰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에 비유했다.
"유저분들이 게임할 수 있는 선택지, 과금 요소를 다양하게 만들어 준 측면이 강하고 돈을 더 지불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무제한 요금제가 없으면 불편하듯이 기존에 큰 비용이 들었는데 5만원에서 멈출 수 있게 해드린 것이지요."

▲  | '아인하사드의 축복'을 다 사용한 모습
▲ | '아인하사드의 축복'을 다 사용한 모습

기존에도 아인하사드의 축복은 있었다. 경험치 추가 버프 효과, 더 빠른 레벨업에 초점이 맞춰진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지난 3월 리마스터 업데이트 이후 아인하사드의 축복은 아이템 및 아데나 획득 확률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전과 달리 과금을 하지 않으면 아이템과 아데나를 얻기 힘들어졌다는 얘기다. 아이템을 맞추는 게 중요한 리니지 특성상 게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조치다.

이에 대해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게임 속 경제 유지 차원이라고 해명했다. 리니지는 이른바 '작업장'이라 불리는 자동 매크로에 대응하고 공정성을 위해 리마스터 개편에 맞춰 자동사냥 시스템을 공식적으로 도입했다. 자동사냥을 통해 이용자들은 누구나 24시간 동안 게임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에 인플레이션 현상을 막고 게임 속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아이템 획득 확률에 손을 볼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이용자 반발은 거세다. 그동안 엔씨소프트의 과금 체계에 대한 불신이 누적된 결과다. 2000년대 초반 5년간 PC 리니지를 즐기고, 모바일 게임 '리니지M'을 1년 반 동안 했다는 신윤섭 씨(33세)는 "정액제를 없애도 리니지M처럼 다른 현질 유도가 심해질 것이 뻔하기 때문에 복귀할 생각이 안 든다"라며 "옛날과 달리 현질을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게임이 되어버렸고 그 금액 또한 엄청 크며, 현질 한 유저와 안 한 유저의 갭이 너무 크다"라고 말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리니지를 즐겼다는 심현섭 씨(가명·33세)는 "아이템 획득 확률, 경험치 보너스를 높여주는 게 아니라, 그걸 안 쓰면 게임을 할 수 없도록 안 쓰는 유저의 획득 확률, 경험치를 극악으로 낮춰놓는 것"이라며 "리니지는 레벨이 깡패라 아인하사드의 가호가 없으면 시간 낭비하는 거고, 그냥 5만원 내고 게임을 하라는 얘기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리니지를 한 김대영 씨(32세)는 "무료화를 한다고 해 관심이 생겼지만, 리니지라는 게임이 과금이 많은 게임이라는 인식이 박혀있어 과연 얼마를 투자해야 다른 유저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 감이 안 와서 생각을 다시 하게 한다"라고 말했다.

게임 결제한도 폐지 유보 주장까지


정액제를 폐지했지만, 리니지 매출에 타격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엔씨소프트는 "리니지 리마스터 업데이트 이후 동시접속자와 월간 활성 이용자(MAU)가 이전보다 2배 이상 증가했으며, 많은 휴면 고객이 복귀했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엔씨소프트 측은 이번 리니지 과금 체계 개편이 리니지의 실적 반등을 이끌 거라는 예상을 내놨다. 그동안 리니지 매출은 지속해서 감소했다. 2016년 약 3740억원에서 2017년 1540억원으로 매출이 급감했으며, 지난해 매출은 1497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 매출 역시 207억1900만원을 기록하며 전분기 대비 47% 감소했다. 특히 모바일로 리니지를 즐길 수 있는 ‘리니지M’이 출시되면서 제 살 깎아 먹기 현상 ‘카니발리제이션’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윤재수 엔씨소프트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 10일 1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을 통해 "리니지 2분기 실적은 리니지M 출시 이후 가장 높은 분기 매출 기록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한다"라며 "1분기 매출이 감소했음에도, 2019년 연간으로는 작년 대비 성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리니지 과금 논란은 게임 결제한도 규제 완화에도 불똥을 튀겼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장관은 지난 9일 엔씨소프트 등 게임 업계와의 간담회를 통해 월 50만원으로 제한된 온라인 게임 결제한도 폐지 추진을 시사했다. 하지만 리니지 과금 논란과 맞물려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에 게임 결제한도 폐지를 유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 회장은 "문체부에서 게임 결제한도를 풀려고 하는 타이밍에 최대 매출 운운하는 것은 맞지 않으며, 게임 질병 코드 등재 이슈가 있는 상황에서 리니지 과금제 논란이 이를 추진하는 진영에 빌미를 줘 게임 산업 전체에 타격을 줄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과금 정책 변화는 사업적인 측면에서 기업의 자유지만 게임 산업에 대한 대내외적인 규제 압력이 있는 상황에서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는 얘기다.

위정현 학회장은 학회 차원에서 문체부에 온라인게임 결제한도 폐지 유보를 요청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한 게임 업계 관계자는 "리니지 과금 논란이 게임 규제 압력을 넣는 진영에 빌미를 줄 여지는 있다"라면서도 "시장에서 과도한 과금 유도에 대한 자정 작용이 이뤄지고 있고 특정 게임 하나만 가지고 얘기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라고 말했다.

게임물관리위원회 관계자는 "현재 실무팀에서 게임 결제한도 규제 완화 여부에 대해 검토 중이며, 결제한도 폐지 유보 주장을 비롯해 여러 의견을 참고해서 진행 중인 상황"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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