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스 멀티유즈라는 말이 식상해진 시대다. 만화가 영화나 드라마, 게임이 되는 모습은 흔해졌고 기획 단계에서부터 다양한 포맷을 고려하고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이 많아졌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마블이다.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미국 코믹스를 넘어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하며 가장 성공적인 트랜스 미디어 사례로 꼽힌다. 한국 웹툰 역시 지속적인 영역 확장을 꾀하고 있다. 최근 주호민 작가의 '신과 함께'는 2편의 영화로 제작돼 2천만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모았다. 양대 포털을 주축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콘텐츠로 자리매김한 웹툰의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지난 8월2일 '코믹콘 서울'에서 한국 웹툰 IP의 가능성을 주제로 한 대담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이희윤 네이버웹툰 사업팀장, 이샛별 다음웹툰 차장, 유상원 스튜디오드래곤 CP, 오세정 와이랩 웹툰사업부 프로젝트 매니저가 참여하고, 위근우 지금 만화 편집장이 진행을 맡았다.
다양한 장르의 웹툰 영상화 길 열렸다
만화적 상상력을 영상으로 구현하는 일은 쉽지 않다. 웹툰과 영상의 문법도 다르다. 또 웹툰 장르에 따라 영상화 가능성이 갈리기도 한다. 이에 대해 다음웹툰 이샛별 차장은 “영상화 관점에서 다양한 장르를 검토 중이지만, 기승전결이 없는 일상툰이 영상화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라면서도 “최근 OTT, 웹드라마 등 짧은 영상 포맷이 생기면서 일상툰 작품 영상화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라고 말했다.
네이버웹툰 이희윤 사업팀장은 ‘신의 탑’, ‘갓 오브 하이스쿨’, ‘노블레스’ 등 판타지 장르가 일반적으로 영상화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신과 함께’를 비롯해 판타지, SF 장르도 영상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또 현재 ‘신의 탑’과 ‘노블레스’를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개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희윤 팀장은 “기술력보다 시장과 비용의 문제로 국내 시장을 대상으로 하면 비용 대비 투입 효과가 작을 수밖에 없고, 글로벌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데 현재 가진 리소스가 글로벌 성공을 할 수 있을지, 얼마만큼의 나라에 접근할 수 있을지 고려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현재 영상화 추세는 웹툰의 인기도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고 얼마나 영상화에 적합한 스토리인지, 얼마나 매력적인 이야기 구조와 캐릭터를 갖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며 인지도가 없더라도 각 나라별로 타깃팅 될 수 있는 이야기를 갖고 있다면 영상화 등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국내 최대 드라마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의 유상원 CP는 웹툰은 드라마의 다양한 소스 중 하나로, 현재 특별하게 안 된다는 장르는 없어졌고 기술력의 발달로 장르에 연연하지 않고 영상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웹툰 제작사 와이랩 오세정 웹툰사업부 프로젝트 매니저는 “인풋 대비 아웃풋이 얼마나 기대되느냐가 고민스러운 부분이며 기술력이 발달해 이능력 배틀물, 판타지물도 영상화 실현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라며 “기획력과 어떤 좋은 파트너와 꾸준히 이어갈지가 관건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와이랩은 마블처럼 프로듀싱 시스템을 도입한 웹툰 제작사다. ‘패션왕’, ‘찌질의 역사’, ‘신암행어사’ 등 다양한 장르의 유명 IP(지식재산권)를 보유하고 있으며, 영화, 드라마, 게임 등 웹툰 원작 기반의 2차 창작 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또 ‘부활남’, ‘테러맨’, ‘신석기녀’ 등 다양한 웹툰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엮는 ‘슈퍼스트링’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영상화 성공 여부는 원작 싱크로율? 제작 자유도?
웹툰은 소재가 고갈된 영화, 드라마계에 단비가 돼 주고 있다. 하지만 인기 웹툰의 영상화가 성공을 보장하진 않는다. 웹툰 원작 영화나 드라마의 성공에 중요한 요소는 뭘까. 이샛별 차장은 각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웹툰과 영상이 서로 이야기나 표현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웹툰을 어떻게 영상에 적합하게 각색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다음웹툰 이샛별 차장은 “내년 초 방영 예정인 ‘이태원 클라쓰’의 경우 드라마 극본을 원작 웹툰 작가가 집필하는 형태로 제작이 진행되는데 원작과 어떤 차이가 있을지, 내년에 영상이 나왔을 때 어떤 느낌을 전달받을 수 있을지 보려 한다”라고 말했다.
네이버웹툰 이희윤 팀장은 웹툰은 영상이 성공하기 위한 트리거 역할일 뿐 제작사의 몫이 가장 크다고 주장했다. 또 제작자의 자유도가 얼마나 보장되느냐가 영상화 성공의 관건이라고 짚었다. 원작 팬들이 원작과의 유사도나 배우 싱크로율 등을 따지는데 이 부분을 너무 의식할 경우 영상으로 표현하고 싶은 부분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원작자와의 협업에 대해 유상원 CP는 플랫폼 특성에 따라 다르다고 밝혔다. 유상원 CP가 제작총괄을 맡았던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의 경우 원작자가 드라마 제작에 관여하지 않았지만, 최근 타사에서 드라마 제작이 진행되고 있는 ‘이태원 클라쓰’의 경우 원작에 맞춰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후문을 전했다. 유상원 CP는 웹툰과 영상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원작에서 중요한 부분이 영상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독자들의 원작 싱크로율 요구에 대해선 “드라마 평이 좋게 나오면 (싱크로율 요구가) 사그라들고 시청률이 안 좋으면 시달린다”라며, “원작을 신경 쓰지만 드라마 작가나 감독이 원하고, 가고자 했던 방식을 고수해야 한다고 권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와이랩의 경우 투트랙으로 접근하고 있다. 다양한 작품이 엮인 슈퍼스트링 IP의 경우 원작에 대한 이해도가 강조되고, 로맨스나 학원물의 경우 기획 단계에서부터 내부 영상사업팀과의 협업을 통해 웹툰과 영상이 따로 제작된다.
원작에 대한 애정도도 영상화 성공의 중요한 요소로 꼽혔다. 유상원 CP는 “기획하는 원작에 갖는 애정의 정도가 작품 성공 가능성의 70%를 차지한다”라며 “창작자들이 작품에 미쳐야 제작에 더 힘쓰기 때문에 원작에 꽂히냐 안 꽂히냐가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또 영상화할 작품을 선정할 때 객관적 기준을 바탕으로 리스트업하거나 비정규직 문제나 헬조선 논란 등 특정 기획 포인트에 맞는 웹툰을 발굴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웹툰의 경쟁력은 다양성
웹툰이 갖는 경쟁력은 뭘까. 이들은 공통으로 소재나 형식의 다양성을 꼽았다. 표현의 한계가 없기 때문에 자유롭고 다양한 콘텐츠가 나온다는 얘기다.
유상원 CP는 “제작 프로듀서 입장에서 웹툰은 무궁무진한 소재의 바다이자 다양한 소재, 형식, 그림을 볼 수 있는 소스의 원천이다”라고 말했다. 또 80-100억원 이상의 대규모 자본이 들어가는 드라마 제작에 있어서 웹툰을 활용해 시장 반응을 테스트해볼 수 있다는 점도 웹툰의 장점이라고 짚었다.
이희윤 팀장은 “영상에서 표현되지 못하는 것도 웹툰에서는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또 “시장이 커지다 보니 그 어떤 콘텐츠 시장보다 작가풀도 커지고 있고, 2차 저작권 시장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산업이 됐다고 본다”라고 웹툰 산업의 성장에 대해 말했다.
오세정 매니저는 “웹툰 원작은 폭넓게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며 “판타지, 배틀물 같은 장르는 영상화가 어려울 수도 있지만 점차 개선될 거라고 긍정적으로 전망한다”라고 밝혔다.
이샛별 차장은 독자들과 상호작용이 활발히 일어나는 포맷이라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또 모바일과 인터넷에 최적화된 콘텐츠이기 때문에 피로도가 높은 다른 콘텐츠에 비해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도 웹툰의 매력이라고 짚었다.
웹툰이 학원물 등 특정 인기 장르에 편중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 네이버웹툰 이희윤 팀장과 다음웹툰 이샛별 차장은 웹툰의 소재, 장르적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 다양한 장르의 작품과 작가에게 기회가 부여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