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11' 발표는 온통 카메라에 집중됐다. 사람들의 시선도 네모난 카메라 모듈에 쏠렸다. "혁신은 없었다"라는 평가가 어김없이 쏟아졌고, 낯선 카메라 디자인은 '인터넷 밈'으로 소비됐다. 하지만 애플은 조용히 다음 스텝을 밟고 있다. 아이폰11에 새롭게 탑재된 'U1 칩'은 그중 하나다. 이번 발표에서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애플은 주변을 인식하는 초광대역 기술 기반의 U1 칩을 바탕으로 새로운 애플 생태계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아이폰11에 탑재된 주변 인식 기술


애플은 지난 9월10일(현지시간) 아이폰11 시리즈 발표에서 U1 칩의 세부 내용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U1 칩을 "스마트폰 최초로 초광대역 기술을 사용해 주변을 인식"하는 기술로 소개했다. U1을 탑재한 애플 기기는 서로의 위치를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 애플이 소개한 기능은 개선된 '에어드롭'이다. 에어드롭은 애플 기기 간 파일을 쉽게 공유할 수 있는 기능이다. 하지만 에어드롭이 가능한 여러 기기 중 공유할 대상을 찾아 일일이 선택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U1 칩은 아이폰을 상대 기기 방향으로 내밀면 공유 목록에 해당 기기 사용자가 먼저 뜨게 해 불편을 줄였다.

▲  | 애플이 제품 페이지를 통해 소개한 U1 칩 (사진=애플코리아 홈페이지 갈무리)
▲ | 애플이 제품 페이지를 통해 소개한 U1 칩 (사진=애플코리아 홈페이지 갈무리)

이렇게 봤을 때 U1 칩은 약간의 편리를 제공할 뿐인 기술로 보인다. 하지만 애플은 "향후 이를 활용하여 상상하지도 못한 다양한 신기능이 구현될 예정"이라며, "이 기능은 주변 인식 기능의 시작에 불과하고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라고 U1 칩을 활용한 또 다른 기능을 암시했다. 애플이 U1 칩을 통해 그리는 가능성을 짚기 위해서는 먼저 초광대역(UWB, ultra-wideband) 기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애플 생태계를 더 공고히


애플이 새롭게 설계한 U1 칩은 초광대역 기술에 기반한다. UWB는 단거리, 500MHz 이상 고대역폭의 저전력 무선 기술로 저전력 블루투스(BLE)와 비슷해 보이지만, 초단파 펄스가 기기를 오가는 비행시간을 측정해 정확한 위치를 계산할 수 있도록 한다. 쉽게 말해 '거실 안에서 작동하는 GPS'다. GPS는 실내 환경에서 무력하다. 현재 블루투스 기기가 약 1m의 위치 정확도를 제공하는 반면, UWB는 최대 30cm의 오차 범위 안에서 물체를 정확하게 찾아낼 수 있다. 데이터 전송 속도는 최대 8Mpbs로 현재 블루투스 기술보다 약 4배 더 빠르다. 또 와이파이 등 다른 무선 통신 신호로 인한 간섭을 거의 받지 않으며 벽을 쉽게 통과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애플은 애플 기기 간 연결성을 높여 더 확고한 제품 생태계를 구축할 것으로 보인다. <더버지>는 "애플의 목표는 모든 애플 기기가 다른 애플 기기와 함께 더 빠르고 잘 작동하도록 칩 성능을 높이고 엄격한 생태계 제어를 하는 것"이라며 U1 칩의 의미를 짚었다. 애플은 여기서 더 나아가 더 긴밀한 사물인터넷(IoT) 환경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애플 제품과 애플 제품이 아닌 것 모두와의 연결성을 높이는 일이다.

▲  | '아이폰11' 발표에서 'U1 칩'은 숨은 그림 찾기처럼 지나갔다.
▲ | '아이폰11' 발표에서 'U1 칩'은 숨은 그림 찾기처럼 지나갔다.

애플의 새 모바일 운영체제 'iOS 13' 베타 버전 코드에서 발견된 '애플 태그'는 이를 뒷받침한다. <맥루머스>는 8월30일(현지시간) iOS 13의 내부 빌드 분석을 통해 애플이 열쇠나 지갑, 배낭 등 개인 소지품에 붙여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액세서리를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애플 태그라고 불리는 흰색의 작은 원 모양 액세서리는 '타일' 같은 블루투스 기반 위치 추적 장치와 비슷하지만, UWB에 기반하는 만큼 정확도는 더 뛰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애플 태그를 통해 개인 소지품을 추적할 수 있는 새 기능은 기존 '나의 아이폰 찾기'와 '나의 친구 찾기'를 통합한 '나의 찾기(Find My)' 앱에서 활용 가능할 전망이다.

애플의 스마트홈 플랫폼 '홈킷'을 활용한 스마트홈 생태계 확장도 기대할 수 있다. 홈킷에 U1이 적용될 경우 더 정확한 가정용 IoT 기기 제어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U1 칩과 증강현실(AR) 기술과의 결합도 기대된다. UWB 기술을 사물의 공간적 관계를 추적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애플 태그에 AR 기술을 적용해 사물을 더 쉽게 찾을 수도 있다. <맥루머스>는 iOS13에서 방 안에서 잃어버린 물건을 표시해주는 빨간색 3D 풍선 애셋이 발견됐다며 이 같은 가능성을 짚었다. 화면에 풍선이 보일 때까지 아이폰을 휘저어 물건을 찾는 식이다. 이를 통해 가방이나 서랍에 있는 물건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애플이 꿈꾸던 오래된 미래


U1 칩은 애플이 꿈꾸던 오래된 미래를 실현시켜줄 장치다. 애플은 지난 2013년 'iOS 7'을 발표하며 저전력 블루투스 기반의 실내 측위 시스템 '아이비콘'을 소개했다. 아이폰을 이용해 거리를 측정하고, 근거리에서 알림을 주거나, 특정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아이비콘 장치를 공공장소나 매장에 설치할 경우 신호를 보내 아이폰과의 거리를 파악하고 앱과 연동해 판매 중인 상품에 대한 알림 메시지나 할인 쿠폰을 보내는 식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 모바일 거래도 가능하다. 하지만 블루투스 기반의 기술은 정확도가 높지 않았고 아이비콘은 기대만큼 활성화되지 않았다.

UWB는 더 높은 정확성을 바탕으로 블루투스를 대신해 아이비콘 개념을 실현시킬 수 있는 기술적 가능성을 지녔다. 실제로 애플은 유럽에 UWB 버전 아이비콘 특허를 출원했다. 아이비콘은 실내 지도를 만드는 데도 활용된다는 점에 비춰봤을 때 UWB 기술은 실내 내비게이션 서비스에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애플 제품 예상으로 유명한 궈밍치 TF 인터내셔널 증권 애널리스트 9월6일(현지시간) 애플이 UWB를 활용해 더 정확한 실내 내비게이션 서비스를 제공할 가능성을 짚었다. 애플은 10월 행사에서 애플 태그 등 U1 칩과 관련된 추가 발표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  | '아이폰11' 이슈의 블랙홀 '인덕션 카메라'
▲ | '아이폰11' 이슈의 블랙홀 '인덕션 카메라'

애플이 U1 칩의 활용 예로 밝힌 건 개선된 '에어드롭' 기능이 전부다. 다양한 시나리오가 점쳐지지만, 아직은 일반 사용자에게 카메라만큼 크게 와닿지 않는다. UWB 기술 역시 비콘처럼 장밋빛 미래만 그리다 그칠 수 있다. 하지만 애플은 조용히 오래된 미래를 다시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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