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시내를 달리는 8천대의 빨간 버스는 2018년 한해 4억5천만 킬로미터를 주행하며 21억2천만명을 실어 날랐다. 영국을 여행하는 사람 절반의 발이 되어줬다. 문제는 이 버스가 친환경과 거리가 멀다는 거다. 런던은 공기 질 개선을 위해 강력한 정책을 쓰고 있다.

2003년 도심 혼잡통행료를 도입해, 도심 진입 차량에 하루 11.5파운드(1만7천원)를 받는다. 2017년 10월부터는 2006년 이전 등록한 노후 차량이 혼잡통행구역에 들어오면 10파운드(1만5천원)를 더 받는다. 런던 교통당국은 석유를 태워 움직이는 런던 버스의 친환경 전기차 전환 작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런던에는 유럽 최초로 전기로 달리는 버스 노선이 있다. 런던 북부 머스웰 힐에서 런던 브리지를 연결하는 43번과 노스 핀칠리에서 워런 스트리트까지 운행되는 134번 두 개의 노선은 200대의 전기 버스로만 운행된다. 도심과 공기 오염 정도가 높은 지역을 ‘저공해자동차 구역'으로 지정해 전기 버스만 다니도록 했다. 런던 교통당국은 이와 함께 전기 버스 전용 사운드를 제작했다.

유럽연합(EU)이 올해 7월부터 모든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차량에 '어쿠스틱 차량 경보 시스템(Acoustic Vehicle Alerting System, AVAS)' 탑재를 의무화해서다. 보행자, 자전거 탑승자, 교통 약자가 차량의 접근 소리를 좀 더 쉽게 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닛산이 진행한 도심 소음 측정 자료를 보면 평균 도심 소음은 90데시벨 이상이며, 내연 차량의 평균 소음은 76데시벨이다. 반면 전기차는 21데시벨로 측정돼 도서관(30데시벨) 보다 소음 정도가 낮다.

전기차 작동음, 도서관보다 조용해…EU 'AVAS' 의무화


미국 교통부 자료를 보면 전기차, 하이브리드 차량은 엔진 소리가 시끄러운 내연 차량보다 40% 이상 보행자와 접촉 사고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차의 접근을 보행자가 인지하는 거리가 내연 차량에 비해 80% 가깝기 때문이다. 즉, 내연 차량은 10미터 거리에서 인지할 수 있었다면, 전기차는 2미터 정도로 가까워야 인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유럽연합이 정한 규칙에는 시속 20킬로미터 이하로 주행하는 차량은 최소 56데시벨의 소리를 내야하고 기존 전기차는 2021년까지 AVAS를 설치해야 한다. 이 규칙은 런던 버스에도 적용된다. 런던 전기 버스에 적용되는 사운드는 버스 운행 중 반복되는 짧은 문구다. 젤러그사운드의 매트윌콕이 제작한 이 사운드는 버스가 정차했을 때 부드러운 코드(F# maj7)를 2비트로 반복 재생하고,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하거나 주행 중일 때는 C# 단음이 3비트로 재생된다.

2020년 1월부터 6개월간 세인트 폴 대성당과 쉐드웰을 연결하는 100번 노선에서 우선 시범 적용된다. 3월 캐나다워터와 빅토리아를 연결하는 C10 노선, 5월 런던 남서부 엘리펀트&캐슬과 배터시를 연결하는 P5 노선에 각각 확대 적용된다.

한편 보행자와 운전자 모두가 듣기 좋은 소리를 만들기 위해 전기차 제조사들의 다양한 연구가 시도되고 있다. 랜드로버 전기차 재규어 I-페이스는 시속 20킬로미터 이하로 주행할 때 경고음을 낸다. 보행자가 차량을 인지할 수 있도록 소음을 전 방향으로 내며, 후진 또는 운전 방향을 변경할 경우 다른 사운드를 내는 음향 시스템을 개발했다.

포르쉐는 엔진 소리를 증폭하는 방식을 택했다. 보행자를 위한 안전 사운드, 차량 내부에서만 울리는 스포츠 모드 같은 옵션을 제공한다. 2009년부터 꾸준히 가상 엔진 소리를 연구한 BMW는 지난 6월 다크나이트, 인셉션, 인터스텔라 등 영화 OST를 제작한 한스 짐머와 렌조 비탈레 BMW 음향 엔지니어 겸 사운드 디자이너가 공동 작곡한 가상 엔진 소리를 공개한 바 있다. BMW 비전 M넥스트에 적용될 예정이다. 시트로엥은 남성과 여성 목소리를 채용하는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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