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 인공지능(AI) 시대가 열리면서 더 많은 데이터를 더 빨리 처리해야할 필요가 급증했다. 이에 따라 현재 컴퓨팅 기술보다 획기적으로 빨리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양자 컴퓨팅을 향한 거대 IT기업들의 행보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기존의 디지털 컴퓨터는 정보를 스위치처럼 0 아니면 1로 처리한다. 양자 컴퓨터는 1과 0 외에도 중첩과 얽힘 상태의 양자역학 원리를 이용해 정보를 기록하고 처리한다. 기존 컴퓨터가 0과 1이라는 두 가지 신호만을 이용해 연산한다면, 양자 컴퓨터는 0이면서 동시에 1인 중첩된 정보도 처리한다. 단 한 번에 모든 숫자의 연산을 수행한다. 그 덕에 기존 컴퓨팅으로는 1백만년이 걸릴 300자리 정수(1천비트 숫자) 소인수분해가 양자 컴퓨터에서는 하루 안에 끝난다.

▲  | 출처=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 '양자컴퓨터 개발 동향과 시사점(조성선 수석)'
▲ | 출처=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 '양자컴퓨터 개발 동향과 시사점(조성선 수석)'

IBM,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인텔, 아마존웹서비스(AWS) 등 글로벌 IT 기업이 양자 컴퓨팅 개발 레이스에 뛰어든 배경이다. 이들 기업은 금융, 화학, 의료, 물류, 제약, 자동차, 항공 우주 분야 등 데이터를 활용하는 영역에서 양자 컴퓨팅이 확산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암 치료용 약물을 발견하고, 머신러닝 학습을 개선하며, 물류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비행 제어 시스템 버그를 잡을 때 양자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기존 슈퍼 컴퓨터로 해결하지 못했던 각종 디지털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로도 양자 컴퓨팅을 주목하고 있다.

양자 컴퓨팅 기술 연구는 시작 단계다. 대중화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거대 IT기업들이 양자컴퓨팅에 쏟아붓는 실탄을 늘리면서 나름 의미 있는 결과물도 나오기 시작했다. 초전도를 이용한 작은 규모의 양자 컴퓨터가 나왔고, 클라우드 서비스에서 양자 컴퓨팅을 경험할 수 있는 환경도 공개됐다.

주요 IT 기업들이 양자 컴퓨팅에 어떻게 접근하고 있고, 어떤 성과를 거뒀는지 살펴봤다.

IBM, 양자 컴퓨팅 가능성을 열다


IBM은 1985년부터 내부적으로 양자 컴퓨팅 가능성을 주목했다. 2012년께부터는 상용화도 가능하다 보고 연구개발 투자를 크게 늘렸다. 이를 기반으로 2016년  범용형 근사 초전도 양자 컴퓨터 ‘IBM Q 익스피리언스’를 클라우드로 구현했다.

IBM Q 익스피리언스는 양자 프로세서에 접속, 프로그램과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별도의 클라우드 서비스다. IBM 양자 프로세서를 활용해 알고리즘과 실험을 수행하고, 양자 컴퓨팅 작업을 시험하거나 시뮬레이션 할 수 있다. 한국은 물론 전세계 어디에서나 해당 시스템에 접근해 무료로 양자 컴퓨팅을 경험할 수 있다. 약 18만명 이상이 IBM Q 익스피리언스를 경험한 것으로 알려졌다.

▲  | IBM Q 익스피리언스
▲ | IBM Q 익스피리언스

IBM은 2017년 12월 삼성전자, JP모건 체이스, 영국의 옥스퍼드대학 등과 함께 양자컴퓨터 개발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겠다고 밝히며, IBM Q 네트워크를 출범시켰다. 전세계 약 80개 포춘 500대 기업, 교육기관, 연구소, 스타트업과 공동으로 양자 컴퓨팅 기술을 상용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9월에는 세계 최대 퀀텀 컴퓨터 시스템 마련을 위해 뉴욕 주에 IBM 퀀텀 컴퓨테이션 센터도 열었다. IBM 퀀텀 컴퓨테이션 센터는 2019년 10월 기준 14개의 클라우드 기반의 퀀텀 컴퓨터 시스템을 제공한다.

IBM은 “퀀텀 컴퓨터 시스템은 20큐비트 시스템 5개, 14큐비트 시스템 1개, 5큐비트 시스템 7개로 이뤄져 있으며, IBM 퀀텀 컴퓨테이션 센터는 IBM Q 네트워크 고객 및 연구원만이 방문해 작업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구글, ‘양자 우위’로 양자컴퓨터 성능 입증


구글은 IBM보다는 뒤늦게 양자 컴퓨팅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빠른 속도로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특히 2014년 양자역학 분야 전문가인 존 마티니즈 물리학 박사를 AI퀀텀팀으로 영입한 이후 구글의 양자 컴퓨터 개발에는 가속도가 붙었다.

이후 구글은 2018년 3월 72큐비트 양자 프로세서 ‘브리슬콘’을 공개하며 양자 컴퓨팅 분야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2019년에는 고성능 양자 논리 게이트로 구성된 새로운 53큐비트 프로세서 ‘시카모어’를 통해 양자 컴퓨터가 가장 강력한 기존 슈퍼컴퓨터를 능가하는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는 ‘양자 우위’도 처음으로 입증했다.

▲  | 구글 시카모어 프로세서(The Sycamore processor)
▲ | 구글 시카모어 프로세서(The Sycamore processor)

구글팀은 53큐비트 초전도체 테스트 칩으로 만든 단일 양자 프로세서로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성능의 슈퍼컴퓨터로는 약 1만년이 소요되는 내용을 200초 만에 분석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설계했다고 밝혔다.

구글의 성과는 양자 컴퓨팅과 디지털 컴퓨팅 간 차이를 증명했다는 점에도 주목을 받았다.

확장된 처치-튜링 논제는 기존의 디지털 컴퓨터가 모든 합리적인 연산 모델을 효과적으로 이행할 수 있다고 본다. 양자 컴퓨팅 기술의 가능성은 이론적으로는 높이 평가되지만, 실제 디지털 컴퓨팅과 비교해 성능 차이가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그런데, 구글이 이론으로만 존재했던 양자 우위 기술이 실제 구현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제이미 야오 구글 AI퀀텀팀 하드웨어 부문 엔지니어는 “양자 컴퓨터를 컴퓨터라고 부르지만, 기존에 알고 있는 컴퓨터 기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라며 “고도의 양자 알고리즘으로 분자 시뮬레이션, 머신러닝 최적화, 고효율의 태양전지 개발 등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분야에서 양자 컴퓨팅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구글은 앞으로 큐비트 개수를 늘리고 운영 방식 질도 높이면서 훨씬 고도화된 알고리즘을 처리하는 식으로 양자 컴퓨팅 기술을 발전 시켜 나갈 계획이다.  누구나 양자 컴퓨팅 알고리즘을 개발할 수 있게 관련 논문 및 자료도 최대한 개방한다는 입장이다. 구글은 이미 양자 컴퓨팅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서크’ 공개를 통해 다양한 연구기관의 참여도 끌어내고 있다.

MS, 양자 컴퓨터 ‘소프트웨어’ 주목


사티아 나델라 MS CEO는 양자 컴퓨팅을 컴퓨팅의 미래라고 언급하며 관련 분야 개발에 공을 들였다. 특히 소프트웨어를 좀 더 주목했다.

MS는 2011년 양자 컴퓨터 하드웨어 등장에 앞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양자 응용 프로그램을 개발하겠다며 ‘QuArc(Quantum Architectures and Computation Group)’를 개설했다. 이를 시작으로 2017년 개발자 전용 위상 큐비트와 운영 시스템을 공개했다. 이후 양자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지원하는  ‘마이크로소프트 퀀텀 개발 키트(QDK)’를 선보였다.

마이크로소프트 퀀텀 개발 키트는 양자 컴퓨팅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이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 키트다. 비주얼 스튜디오와 비주얼 스튜디오 코드를 통합하는 양자 컴퓨터 전용 프로그래밍 언어인 Q#(큐샵)을 포함한다.

큐샵은 양자컴퓨팅 특화 언어로 양자 알고리즘을 표현하는 데 사용된다. 전통적인 프로그래밍 개념을 양자 컴퓨팅 도입하는 게 목적이다.

지난 2019년 MS는 퀀텀 개발 키트 오픈소스화를 통해 양자 컴퓨팅 알고리즘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해 ‘애저 퀀텀’을 발표하며, 양자 컴퓨팅을 위한 하드웨어 솔루션도 공개했다.

▲  | MS 애저 퀀텀 스택
▲ | MS 애저 퀀텀 스택

‘애저 퀀텀 오픈 하드웨어’는 아이온큐와 허니웰, QCI 등 파트너와 함께 이온트랩과 초전도체 등 퀀텀 하드웨어 솔루션을 애저에 공개한다. 기존 컴퓨팅 환경에서도 애저 퀀텀에 구축된 시뮬레이션을 통해 양자 알고리즘을 개발할 수 있다.

MS 측은 “애저 퀀텀을 활용해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교는 MS와 함께 기존 MRI보다 3배 이상 빨라진 MRI 스캔을 개발했으며, OLED 디스플레이용 고급소재를 개발하는 ‘OTI 루미오닉스’는 디스플레이 아래 카메라를 설치할 수 있는 완전 투명 디스플레이 개발에 애저 퀀텀을 사용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인텔, 큐비트 ‘제어’에 관심 높아


인텔은 산업에서 활용할 수 있는 수준의 양자 컴퓨팅 프로세서를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인텔은 2017년 10월 17큐비트의 양자 프로세서를 공개한데 이어 2018년 1월에는 49큐비트의 양자 프로세서도 내놨다. 5~7년 이내 1천큐비트 시스템을 확보하겠다는 로드맵도 제시했다.

지난해 12월 인텔은 큐텍(QuTech) 연구원들과 협업해 코드명 ‘호스 리지’ 칩 프로젝트도 공개했다.

호스 리지는 확장 가능한 극저온 제어 칩이다. 인텔의 22나노 공정의 핀펫 기술을 활용해 제작됐으며, 다수의 큐비트를 상호 연결하는 과정을 간소화해 양자 컴퓨팅 시스템을 대규모로 확장할 수 있게 도와준다. 무수한 수의 큐비트를 손쉽게 제어할 수 있는 칩인 셈이다.

▲  | 인텔 호스리지 프로세서
▲ | 인텔 호스리지 프로세서

인텔은 호스 리지를 이용하면 양자 컴퓨팅 시스템 작동에 필요한 전자 제어 장치를 단순화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정교한 신호 처리 기법을 통해 향상된 큐비트 성능이 컴퓨팅 성능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짐 클라크 인텔 양자 하드웨어 총괄은 “큐비트가 제대로 동작하기 위해서는 양자 컴퓨팅이 작동하는(우주 심연보다 낮은 온도의) 극저온 냉장고 안팎에 큐비트를 엮는 선들이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하나의 큐비트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수의 선이 필요한 만큼, 연구실에서 양자 실용성을 입증하기 위해 필요한 수백 혹은 수천개의 큐비트를 제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다”라며 “제어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 큐비트 숫자의 증가만큼 호들갑 떨 일은 아니지만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호스 리지를 통해 현재보다 훨씬 빠르게 양자 실용성이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큐비트 자체에 대한 강조는 많이 있었지만, 다수의 큐비트를 동시에 제어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업계 전체의 도전과제였다. 인텔은 대규모 상용 양자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양자 제어가 풀어야 할 퍼즐의 필수 조각임을 인식했다”라며 “인텔이 양자 오류 수정과 제어에 투자하고 있는 이유이다. 호스 리지로 인텔은 확실하게 빠른 양자 컴퓨팅 테스트를 가능케 하고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게 돕는 확장 가능한 제어 시스템을 개발해 왔다”라고 덧붙였다.

AWS, “양자 컴퓨팅, 클라우드 퍼스트 기술될 것”


다른 기업과 비교하면 AWS는 양자 컴퓨팅 경쟁에 조금 늦게 뛰어든 편이다. AWS는 지난해 12월 아마존 브라켓, AWS 양자 컴퓨팅 센터, 아마존 양자 솔루션 랩 프로그램 등을 공개하며 양자 컴퓨팅 기술 전략을 밝혔다. 자체적인 기술 개발보다는 기업의 양자 컴퓨팅 도입을 도와주는 프로그램과 학교 등 연구기관과의 협력 방안 등에 좀 더 집중했다.

AWS가 공개한 아마존 브라켓은 양자 알고리즘을 구축하고, 이를 양자 컴퓨터에서 테스트하고, 양자 하드웨어에서 사용해 볼 수 있는 완전 관리형 서비스다. 양자 컴퓨팅을 처음 도입하는 기업을 겨냥했다. 디웨이브, 아이온큐, 리게티 등 양자 컴퓨터를 한 곳에서 실험할 수 있다. 선택한 양자 하드웨어에서 양자 알고리즘을 실행할 수 있으며, 사용한 시간에 대해서만 비용을 내면 된다.

▲  | AWS 브라켓 작동 방식
▲ | AWS 브라켓 작동 방식

AWS 양자 솔루션 랩은 양자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기업과 아마존 양자 컴퓨팅 전문가, 관련 기술 및 컨설팅 파트너들을 연계하여, 양자 컴퓨팅의 기업 내부적 활용 범위를 발굴하여 실제적 활용방안을 제시한다. AWS는 캘리포니아 공대에 AWS 양자 컴퓨팅 센터를 설립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양자 컴퓨팅 전문가가 모여 최신 양자 컴퓨팅 기술을 연구 및 개발하게 된다.

찰리 벨 AWS 유틸리티 컴퓨팅 수석 부사장은 “양자 공학이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기업들은 양자 컴퓨팅을 실험해보고 그 잠재력을 연구할 방법을 모색 중이다. AWS는 양자 컴퓨팅이 클라우드 퍼스트 기술이 될 것으로 믿으며, 클라우드가 하드웨어를 사용하는 주된 방식이 되리라 생각한다”라며 “아마존 브라켓 서비스와 아마존 양자 솔루션 랩을 통해 기업들은 양자 컴퓨팅 경험치를 쌓을 수 있을 것이며, AWS와 전문가들은 서로 협력하여 이 새로운 기술을 어떻게 잘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할 것이다. 또한, AWS 양자 컴퓨팅 센터와 학계를 연계하여, 양자 컴퓨팅의 구현을 위한 산학 협력에 동참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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