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막을 내린 CES 2020에서 스마트시티가 전시된 웨스트게이트(Westgate)를 둘러보았을 때 다소 당황스러웠다.

스마트시티 솔루션 업체들도 일부 눈에 띄었지만, 한국의 토드드라이브, 올리(olli), 레보노(Revlo bertrandt), 메이 모빌리티(may mobility), 타타(TATA) 등 자율주행차와 셔틀들이 대다수 전시관을 채웠기 때문이다.

오히려 모빌리티 디바이스들에 초점이 맞춰진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노스홀(Las Vegas Convention Center North Hall)이 스마트시티에 걸맞는 콘텐츠가 많아 보였다. 현대차가 전시한 도심 항공 모빌리티(Urban Air Mobility), 중심 미래 도시 모빌리티 솔루션과 토요타가 선보인 우븐시티(Woven City)도 이곳에서 컨벤션센터 노스홀에서 공개됐다.

CES가 열리는 목적이  미래 기술과 비전의 제시임을 생각하면  CES를 주최하는 CTA 는 일부 자율주행 기술과 셔틀들은 미래가 아닌 현재의 스마트시티 핵심 기술과 디바이스로 판단했고, 현대차와 도요타의 새로운 도시와 관련 모빌리티 콘셉트를 미래로 판단하지 않았나 싶다. 두 회사가 글로벌 대기업이란 점도 감안하지 않을 순 없다.

▲  현대차는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 업체로의 미래를 강조하고 있다.
▲ 현대차는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 업체로의 미래를 강조하고 있다.

현대차와 도요타의 인간중심은 ‘연결의 공간'

현대차는 도심 항공 모빌리티, 목적 기반 모빌리티, 모빌리티 환승 거점을 소개해 관심을 받았다. 전시공간 벽면에 적힌 인간 중심 도시의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자(Smart Mobility Solution Provider for Human-Centered Cities) 란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인간중심'이란 단어가 ‘이것이다'라고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미디어 행사에서 언급한 내용(현대차는 이동 시간의 혁신적 단축으로 도시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 시간을 의미 있게 활용하도록 도울 것이며, 새로운 커뮤니티를 통해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는 역동적인 인간중심의 미래 도시 구현에 기여할 것)을 요약하면, ‘인간중심’은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를 통해 효율적으로 연결된 시공간에서 경험할 수 있는 삶의 편의와 의미’를 이야기하는 듯 하다. 현대차의 역할은 모빌리티 플랫폼을 활용해 위와 같은 ‘인간중심'을 가능하게 하는 인에이블러(enabler)다.

▲  우븐시티 전략은 도요타가 개발하는 기술을 실제 거주환경에서 구현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 우븐시티 전략은 도요타가 개발하는 기술을 실제 거주환경에서 구현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도요타가 2021년 착공하기로 발표한 우븐 시티(Woven City) 콘셉트는 좀 더 구체적이다. 핵심 키워드는 ‘완전히 연결된 에코시스템(Fully Connected Ecosystem)’이다. 도요타의 발표에서 우븐 시티는 수소연료전지를 기반으로 자율주행, 로봇, 퍼스널 모빌리티, 스마트홈 등을 활용하고, 2000여 명의 도요타 직원과 가족, 연구진들이 상주하는 살아있는 실험실로 표현됐다.

도요타의 슬로건인 ‘모두를 위한 모빌리티(Mobilty for All)’의 개념도 담겼다. 일본 정부가 지향하는 ‘소사이어티 5.0(Society 5.0)’인 다양한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해 연령, 성별, 장소, 언어 등의 한계를 넘어 모든 사람들이 필요한 제품과 서비스를 원하는 시간에 필요한 만큼 공급받아 만족스럽고 편안한 생활을 유지하는 사회와도 연결된다.

 ‘인간중심’이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기존 완성차 기업들이 내건 핵심 키워드 중 하나도 ‘인간중심’이었다. 정확히는 ‘운전자'의 안전한 조작과 운전자 혹은 탑승자를 위한 편리한 기능 제공에 초점이 맞춰졌다. 전통적으로 버튼위치, 시트 디자인, 시야각 설계, 전방시선 집중 관련 설계  등이 선보였는데, 디자인과 휴먼-머신 인터페이스(Human-Machine Interface) 조직에서 담당하는 분야들이다.

주요 목표는 자동차 사고 원인의 90%가 넘는 휴먼에러(Human Error) 방지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자동차가 인터넷과 연결된 콘텐츠 및 차량 상태 정보 제공하는 등 IT 와의 연결과 전자화가 가속화됐다.  자동차 내에서 정보와 일부 조작은 차량용 인포테인먼트(In-Vehicle Infotainment) 디스플레이로 넘어가고, 휴먼-머신 인터페이스는 전자와 IT업계 추세에 맞춰 사용자경험(User-eXperience) 이라는 단어가 붙은 조직으로 대체되고 있다. 이들 조직 업무는 운전자와 탑승자에 유용한 서비스를 제고하고 정보를 설계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인터넷과의 연결이 사용자경험을 부각시켰다면, 최근 자율주행기술의 발전은 인간중심의 대상을 운전자와 탑승자에게 두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다.

현대차의 목적 기반 모빌리티 콘셉트는 도요타가 2019년 10월 개최한 제46회 도쿄모터쇼(Tokyo Motor Show)에서 제시한 이포미(e-4me)와 유사하다(도요타는 CES 2020에서 이팔렛( e-Pallet), 마이크로팔렛(micro-Pallet) 등은 전시했으나, 이포미는 전시하지 않았다). 현대차 목적 기반 모빌리티와 이포미는 물리적 이동을 담당했던 자동차의 기능을 생활과 서비스가 가능한 ‘‘움직이는 공간(moving space)’이라는 새로운 모빌리티 디바이스로 확대한 개념이다. 현재 우리가 헬스장, 미용실, 병원, 약국, 스튜디오 등에 찾아가서 받아야 하는 서비스와 경험들을 움직이는 공간에서 받을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온디맨드 형태로 움직이는 공간에서 소비자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서비스 제공자는 고정된 공간을 유지할 필요도 없다. 운전석이 없는 자율주행차의 탑승자를 위해 제공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경험이 새롭게 떠오르는 모빌리티 경험(Mobility eXperience)이다.

뿐만 아니라 모빌리티 디바이스가 자동차를 넘어 다양한 전동스쿠터(e-scooter), 다양한 자율주행수단, 항공 등으로 공간적 범위가 확대되면서 이제 연결은 다양한 모빌리티 디바이스, 즉 ‘움직이는 공간’들과의 연결도 새로운 ‘인간중심’ 핵심 키워드가 됐다. 결국 모빌리티 관점에서 ‘인간중심’은 조작과 기능 중심에서 새로운 공간 활용, 궁극적으로는 움직이는 공간과 주변 공간 전체 연결을 아우르는 공간경험(Space eXpereince)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잊고 있는 인간중심 - 도시화의 그늘과 모빌리티 디바이드

CES 2020에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현대, 도요타 등 완성차 기업들이 모빌리티 서비스 플랫폼 제공자로 변신하려고  적극 나섰다는 것과 모빌리티 플랫폼 솔루션 적용을 위한 공간인 ‘도시'에 대한 관심이었다. 자율과 공유라는 키워드는 자동차 판매가 피크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고개를 들기 시작한 가운데, 완성차 업체들이 새로운 변화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상징하는 게 아닐까 싶다.

아마존, 바이두, 애플, 구글 등의 테크 거인들, 우버, 디디추싱 등 차량공유 업체들과의 경쟁과 협력, 완성차 업체들간의 합종연횡도 최근 모빌리티 업계에 눈에 띄는 변화다.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Alphabet)도 토론토에 자회사 사이드워크랩스(Sidewalk Labs)를 설립해 캐나다 정부기관인 워터프론트 토론토(Waterfront Toronto)와 함께 스마트시티 사업을 시작했다. ‘도시’를 둘러싼 기업들간 솔루션 경쟁이 달아오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우려되는 점은 도시라는 공간이 본격적으로 모빌리티와 교통 등 다양한 첨단기술들과 결합하면서 예상되는 모빌리티 디바이드(Mobility Divide)다. 모빌리티 디바이드는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언급되기 시작한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과 연장선상에 있다.

이미 전세계적으로 도시화(urbanification)가 가속화되고 있다. 하지만 모든 도시에 교육, 의료, 금융, 복지, 기술 등 인간이 삶을 영위하며 경제활동을 하기 위한 서비스 인프라와 인력들이 골고루 있는 것은 아니다. 모빌리티도 마찬가지다. 모든 인프라를 갖추 기에는 적지 않은 재원이 필요하고, 경제성 문제도 있다.

이런 가운데, 모빌리티 서비스들에 대한 접근성은 인간의 경제활동, 그리고 도시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떠오를 것이다.

정부가 주도했던 도시라는 공간 계획의 주체가 서서히 민간기업으로 바뀌는 흐름이 빨라지고 있다. 그런만큼,  모빌리티 디바이드(Mobility Divide)에 대한 논의도 서두를 필요가 있다.  이 같은 논의 과정에는 정부는 물론이고 모빌리티와 새로운 인간중심 도시 설계를 꿈꾸는 기업들도 중요한 논의 주체로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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