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사용자를 상대로한 B2C IT업계 판세는 구글,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으로 대표되는 공룡 기업들이 들었다놨다 하는 구도가 뿌리를 내렸다. 판을 흔들만한 스타트업이 파고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거대 테크 기업들을 쪼개야 한다는 주장이 대선 담론으로까지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반면 '흥행파워'에서 B2C IT 회사들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기업용 솔루션 업계 풍경은 최근 1~2년사이에 확 달라졌다. 전통적인 IT인프라에서 클라우드 컴퓨팅으로 세대 교체가 이뤄지는 가운데, 분야별로 유니콘 기업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예전에 보기 힘들었던 역동적인 장면들이 여기저기에서 연출되고 있다.

인프라쪽은 IBM이나 HPE 같은 컴퓨팅 명가들이 아니라 아마존웹서비스(AWS)나 마이크로소프트 애저가 이슈 메이커로 자리를 잡았고 SAP나 오라클이 호령하던 비즈니스 소프트웨어 시장도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회사들의 부상이 두드러진다. 스타트업 투자 흐름을 봐도 개인 사용자가 아니라 기업을 겨냥한 B2B 스타트업들로 무게 중심이 넘어갔다. 특히 기업들을 상대로하는 SaaS 스타트업들에 대한 벤처캐피털 (VC)들의 관심이 늘었다.

데이터 분석 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2019년 엔터프라이즈 기술 스타트업들은 304억2천만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개인 사용자들에 초점을 맞춘 컨슈머 스타트업들보다 3분의 1 가량 많은 금액이다. 지난해 엔터프라이즈 스타트업들이 유치한 투자금은 전년대비 두배에 달했다. 반면 컨슈머 스타트업들에 투입된 돈은 2018년과 2019년 사이에 거의 4분의 1 가량 떨어진 232억6천만달러 수준에 그쳤다.

세일즈포스-워크데이 이어 서비스나우 등 블루칩 부상

SaaS는 기업들이 소프트웨어를 내부에 구축하는 게 아니라 넷플릭스처럼 월정액을 내고 서비스 방식으로 비즈니스 애플리케이션을 쓰도록 해주는 개념이다. 2000년대 영업과 마케팅 소프트웨어를 내세운 세일즈포스, 인적자원관리(HR)을 주특기로 하는 워크데이 등이 초기 SaaS 시장을 개척했다. 세일즈포스의 경우 현재 기업 가치가 1천300억달러가 넘고, 워크데이도 시가총액이 300억달러가 넘는다.

세일즈포스와 워크데이가 비즈니스 애플리케이션도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로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자 뉴페이스들의 출사표가 쏟아졌다. 최근에는 클라우드 기반 워크플로우 관리 소프트웨어 업체인 서비스나우의 행보가 눈에 띈다.

서비스나우는 지난해 매출이 34억달러인데도 현재 시가총액은 500억달러 규모에 이른다. 존 도나호 서비스나우 전 CEO는 기업 가치가 급증한 것에 대해 지난해 파이낸셜타임스에서 "(SaaS는) 핵심적이고 근본적인 플랫폼이다. 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구글이 가정에서 한 것처럼 SaaS는 작업장에 같은 충격을 몰고 오고 있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매출 대비 기업 가치가 큰 SaaS 회사들이 서비스나우 뿐만은 아니다. 매출 대비 6~7배의 시가총액을 가진 회사들이 증시에 수십여개 상장돼 있다.

투자자들이 SaaS 회사들이 후한 점수를 주는 것은 예측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졌다는 점이 요인으로 꼽힌다. SaaS 회사들은 일괄 구매 성격인 라이선스가 아니라 월정액 기반 서브스크립션(Subscription: 구독)을 판매한다. 여기에다 매출의 50% 가량을 영업과 마케팅에 쓰기 때문에, 창업 후 일정 시점까지는 성장한다고 해도 적자를 볼 수 밖에 없다. 서비스나우도 2018년까지는 적자였다.

그럼에도 기업 가치가 늘어나는 것은 강력한 현금 흐름과 한번 가입한 고객들은 불황이라고 해도 계속 해당 서비스를 쓸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많이 반영됐다. 매드로나벤처스그룹의 다니엘 라이 벤처 캐피털리스트는 "VC들은 투자한 돈에 최고의 보상을 찾고 있다. SaaS 스타트업에 투자한다면 한 회사에 1억달러를 투자하고 1억 달러 이상의 연간 반복 매출(ARR: Annual Recurring Revenue)에 이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같은 보상을 비 SaaS 회사에서 얻으려면 투자자들은 1 억 달러 투자로 크게 빠른 성장을 보거나 낮은 마진과 수익을 고려해 투자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25년차 SW 기업 CEO, 왜 B2B SaaS에 올인하려 하나

틈새 시장에서 격전지로 부상...시장 통합 주목

마이크로소프트와 어도비, 오라클, SAP 등 거물급 기업용 소프트웨어 회사들까지 가세하면서 SaaS를 둘러싼 판은 점점 달아오르는 모양새다.

SaaS 영역도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기업 관계자들이 특정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서비스부터 광범위한 협업 및 커뮤니케이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일들이 SaaS와 융합되고 있다. 메시징 앱인 슬랙은 협업, 아틀라시안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에게 필수적인 도구가 됐다.

서비스나우는 기업 현업 담당자들이 IT부서에 요청하는 것들을 자동화하는 소프트웨어 툴로 시작해, 지금은 기업내 다양한 워크플로우를 다루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서비스나우는 자사가 확보할 수 있는 시장을 5천750억달러 규모로 보고 있다. 여기에는 지금은 소프트웨어로 할 수 없는 업무들도 포함됐다. 이 같은 미래가 투자자들에게 먹혀들면서 서비스나우는 상대적으로 적은 매출에도 높은 기업 가치를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다.

다양한 업무 영역에서 다양한 SaaS 스타트업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양적 팽창이 앞으로도 계속될지는 미지수다. 많은 관측자들은 다수의 베스트오브브리드(best of breed:  특정 영역에 특화된 솔루션을 의미) 솔루션들이 경쟁하는 구도로 시작했다가 소수 회사들에 의해 통합된 기존 비즈니스 소프트웨어의 역사를 돌아보면 SaaS 시장도 때가 되면 마찬가지 코스를 밟을 것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전했다. [관련 기사]  “기업용 클라우드 SW, 최소 한중일은 단일 시장으로 봐야 지속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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