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규모나 복잡성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년마다 유사 이래 인간 역사가 축적한 모든 것과 동일한 양의 데이터가 추가되고 이 속도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하지만 실리콘 칩을 축소하는 칩 제조사들의 능력은 점차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인텔의 PC 마이크로프로세서 트랜지스터 수는 2010년까지 매년 약 40%씩 증가했지만 2017년부터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인텔은 2년 주기로 진행해왔던 제조공정 개선 주기를 3-4년으로 연장시킨 상태다. 삼성전자 D램 트랜지스터 수는 2000년대 초반까지 연평균 45%씩 증가해왔지만 2016년 이후에는 성장률이 20%로 둔화됐다.

인간 두뇌를 모방 '뉴로모픽 컴퓨팅'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현재로서는 상상조차할 수 없는 데이터 세트와 분석 작업을 처리하는 대안으로 주목되는 기술이 양자 컴퓨팅과 뉴로모픽 컴퓨팅, 광자 컴퓨팅 등이다. 인텔은 뇌를 닮은 뉴로모픽 칩 '로이히(Loihi)' 여러 개를 연결하는 시스템 ‘포호이키 스프링스' 현황을 3월19일 공개했다.

뉴로모픽 컴퓨팅은 인간 두뇌 작동 방식을 모델로 한 컴퓨터 설계 모델이다. 인간 두뇌는 계산에 있어서는 컴퓨터와 경쟁이 안된다. 그렇지만 컴퓨터의 인지 능력은 아직 인간을 추월하지 못한다. 컴퓨터는 학습을 통해 강아지와 자동차를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지만 강아지가 자동차를 뛰어넘는 영상을 설명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는다.

▲  | 재프로그래밍이 가능한 FPGA 타입의 인텔의 뉴로모픽칩 '로이히'
▲ | 재프로그래밍이 가능한 FPGA 타입의 인텔의 뉴로모픽칩 '로이히'

로이히는 128개 코어로 구성되며, 각 코어는 1024개의 인공 신경세포(뉴런)을 갖고 있다. 13만개 신경세포와 1억3천만 시냅스를 갖춘 랍스터 뇌보다 복잡하다는 게 인텔의 설명이다. 그러나 800억개의 신경세포로 구성된 인간의 뇌에는 한참 뒤처진다. 그렇지만 뇌의 신경세포가 스파이크 형태의 신호를 주고받고 시냅스 연결 강도를 조절해 정보를 처리한다는데 영감을 얻은 로이히의 정보 전달 구조는 놀랍다. 인간의 뇌신경 구조를 현재의 칩 설계 기술로 모방한다.

768개의 로이히 칩이 내장되는 포호이키 스프링스는 두뇌에서 뉴런이 일하는 것처럼 큰 문제를 동시에 실행 가능한 작은 작업들로 나누는 병렬처리를 한다. 코로나19와 같은 의학적 과제를 빨리 진단하고, 정교한 컴퓨터 보안 공격을 수 초안에 감지할 수 있다. 컴퓨터가 더 자주 작업을 수행할수록, 인간의 개입 없이 더 정확하고 더 빨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또 신경세포끼리의 스파이크에 의한 정보 전달은 기존 칩대비 에너지 효율을 크게 높인다.

인텔 연구진들은 로이히 아키텍처를 확장한 극한 병렬과 비동기 신호를 갖춘 포호이키 스프링스를 통해 현재 최고 성능의 전통적인 컴퓨터 대비 낮은 전력 소모와 향상된 성능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 마이크 데이비스 인텔 뉴로모픽 컴퓨팅 랩 디렉터는 “포호이키 스프링스는 500와트 미만의 전력을 소비하면서 로이히 칩을 750배 이상 확장할 수 있다"라며 "이 시스템을 통해 고성능 컴퓨팅(HPC) 시스템을 포함한 기존 아키텍처에서 느리게 실행되는 워크로드를 더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12GW(기가와트)라는 어마어마한 전력을 잡아먹는 알파고와 엄청 비교되는 고효율이다. 알파고는 CPU, GPU 같은 전통적인 컴퓨팅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  | 포호이키 스프링스는 일반 서버 5대 크기의 물리적 프레임(섀시) 안에 768개의 로이히 칩이 내장된다. 작동 전력은 500와트가 안 된다. 고성능 데스크톱 PC 수준에 불과하다.
▲ | 포호이키 스프링스는 일반 서버 5대 크기의 물리적 프레임(섀시) 안에 768개의 로이히 칩이 내장된다. 작동 전력은 500와트가 안 된다. 고성능 데스크톱 PC 수준에 불과하다.

'냄새 구별' 포유류 뇌 수준 업그레이드


1억개의 뉴런을 가진 포호이키 스프링스는 현재 로이히 칩의 신경 능력을 작은 포유류 뇌의 수준으로 증가시켜 훨씬 크고 정교한 워크로드를 처리하도록 업그레이드되는 과정이다. 신경망에서 영감을 받은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특성화할 수 있는 도구를 통해 연구원들은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처리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적응하고 학습할 수 있다.

코가 없는 컴퓨터 칩이 냄새를 맡는다고 상상해보자. 인텔은 코넬대 신경 생리학자들과 인간과 동물들이 냄새를 맡을 때 뇌에서 일어나는 전기적 반응에 기초한 알고리즘을 구성하고 이를 로이히 칩이 연산하는 새로운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마주칠 모든 상황에 대처하는 집약적 프로그래밍 대신, 칩이 인간과 동물처럼 학습하는 것이다.

로이히는 72개의 화학 감지 센서를 통해 수집된 정보를 분석해 아세톤, 암모니아, 메탄 등 10가지의 냄새에 대한 신경 표현들을 습득했고, 간섭을 강하게 받는 상황 속에서도 냄새들을 식별한다. 우리 주변의 연기 감지기와 일산화탄소 감지기는 냄새를 감지하지만 어떻게 다른지는 구별하지 못한다. 유해 분자가 감지되면 경고음이 울릴 뿐 분자들을 지능적인 방법으로 분류하지는 못한다.

▲  | 인텔 랩 뉴로모픽 컴퓨팅 그룹 선임 연구 과학자 '나빌 이맘'
▲ | 인텔 랩 뉴로모픽 컴퓨팅 그룹 선임 연구 과학자 '나빌 이맘'

나빌 이맘 인텔 랩 뉴로모픽 컴퓨팅 그룹 선임 연구 과학자는 "로이히가 장착된 두뇌를 가진 로봇들이 환경 모니터링, 유해 물질 탐지, 공장에서의 품질 관리 허드렛일 등에서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라며 특정 냄새를 발산하는 질병들을 발견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로이히를 장착한 로봇이 공항 보안 검색대에서 위험 물질을 식별하는 것이 예가 될 수 있다.

아직 극복해야 할 과제도 있다. 딸기는 블루베리나 바나나 냄새와 비슷하다. 사람들도 때때로 헷갈린다. 이탈리아산 딸기와 캘리포니아산 딸기의 향기는 다를 수 있으나 동일한 딸기로 구분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시스템에 오류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맘은 “이것이 바로 우리가 연구하고 있는 후각적 신호 감지 연구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이며, 향후 시스템이 상용화되기 전에 현실 세계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기를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고집적 반도체 칩 구현도 넘어서야 하는 과제다. 현재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집적회로(IC)의 총면적은 줄이고 메모리 셀의 개수는 늘리는 고집적 신경망 모방회로 및 하드웨어 구조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인텔은 2015년 세계적인 FPGA(프로그래밍이 가능한 비메모리 반도체) 전문 기업 알테라를 167억달러(21조원)에 인수했고, 2018년에는 인공지능 플랫폼 너바나를 4억달러(5천억원)에 인수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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