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잖아요.” 대학생 김성윤(21)씨는 젠리를 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이렇게 말했다. 그는 30여명의 동기, 후배들과 젠리로 소통한다. 습관처럼 지인들의 위치를 확인하고, 근처에 있으면 연락하는 식이다. 박종연(15)군은 친구의 요청으로 젠리를 내려 받았다. 열성 이용자는 아니지만, 박 군의 친구목록에는 약 2~30명이 있다. 만나기로 한 친구가 어디쯤 오고 있는지 볼 때 주로 쓴다. 이민주(21·가명)씨는 단체대화는 카카오톡에서 한다. 개인적인 대화는 페이스북 메시지가 주요 창구다. 친구와 약속이 있거나 약속을 잡고 싶을 땐 젠리를 켠다. “엄청 편해요. 사생활 침해는 딱히 생각해본 적 없어요.”

‘젠리(Zenly)’는 Z세대 사이에서 알음알음 퍼지고 있는 실시간 위치정보공유 앱이다. 젠리를 통해 이용자들은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위치를 주변인과 공유한다. ‘친구’를 맺으면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볼 수 있다. 2015년 프랑스 개발자 앙투안 마틴(Antoine Martin)과 알렉시스 보닐로(Alexis Bonillo)가 내놓은 젠리는 2017년 스냅챗에 2억1330만달러에 인수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  | 젠리는 Z세대를 정조준하고 있다. 10대 사이에서 인지도가 있지만 40대 이용자도 많다. 지난해 11월을 기점으로 40대 젠리 MAU(19만6384명)는 10대 MAU(18만2758명)를 넘어섰다. 전 연령대 1위다.
▲ | 젠리는 Z세대를 정조준하고 있다. 10대 사이에서 인지도가 있지만 40대 이용자도 많다. 지난해 11월을 기점으로 40대 젠리 MAU(19만6384명)는 10대 MAU(18만2758명)를 넘어섰다. 전 연령대 1위다.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젠리는 국내에서도 조용히 덩치를 키워왔다. 관련업계는 2019년 젠리의 국내 가입자 규모가 10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모바일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IGAWorks)가 내놓은 모바일인덱스 자료에 따르면 젠리 국내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2020년 1월 기준 약 70만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30만명이 1020세대다. 안드로이드 기준 데이터로, iOS 기기 데이터는 포함되지 않은 숫자다.

나는 네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

“충무로네?” 친구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젠리를 열고 확인했다. 친구는 5시간 동안 충무로에 있었고, 배터리를 충전 중이었다. 프로필 사진 옆에는 ‘노트북’ 단추가 떠 있었다. 회사에 있다는 표시였다. 경로안내를 누르니 친구의 회사는 불과 5분 거리에 있었다. 그에게 답장을 보냈다. “일 끝났으면 밥이나 먹자.”

지나친 사생활 공유는 낯설었다. 앱만 열면 친구들의 행방을 지도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젠리는 현재 위치와 함께 해당 장소에 머무른 시간도 보여준다. 집인지, 학교(회사)인지 또는 이동 중인지 알 수 있다. 심지어 이동속도까지도 보여준다. 친구의 프로필을 누르면 내 위치로부터 친구가 있는 곳까지의 거리와 소요시간도 확인할 수 있다. 배터리 상태가 뜨는 탓에 멀리 있는 친구들로부터도 충전 좀 해두라는 잔소리를 수차례 들었다. 충전을 하면 충전 중인 것도 표시된다. ‘TMI’의 정점이다. 지각자의 변명(“지금 나왔어”, “거의 다 왔어”, “택시 탔어”)이 존재할 수 없는 ‘투명한’ 세계다.

▲  | 휴대폰이 충전 중으로 표시돼 있다. ‘내가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 싶은 정보가 있다. 지난해 이용할 땐 와이파이 연결 요청도 가능했다.
▲ | 휴대폰이 충전 중으로 표시돼 있다. ‘내가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 싶은 정보가 있다. 지난해 이용할 땐 와이파이 연결 요청도 가능했다.

집, 학교(회사)는 따로 지정하는 게 아니다. 젠리는 사용자로부터 수집한 정보를 이용해 사용자 중심 정보를 추론한다. 집이나 회사, 학교를 따로 기록하지 않아도 며칠만 이용하면 낮에 정기적으로 가는 곳은 회사, 밤을 자주 보내는 곳은 집으로 구분해 ‘표시’해준다. 가보지도, 알려주지도 않은 친구 집주소를 알 수 있게 된다. 이쯤 되니 오싹했다.

젠리 친구를 오프라인에서 만나면 화면에 불꽃이 표시된다. ‘불타는 사이’라는 의미다. 집이나 학교, 직장에서 만나는 경우는 제외된다. 예를 들어 형제자매가 집에 있을 때는 젠리 이용자들이라 해도 ‘모임’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모임을 자주 갖는 친구는 추후 젠리가 ‘영혼의 단짝’으로 지정해준다. 이때 휴대폰을 흔들면 공통으로 친구관계인 이들에게 “☆☆님과 ●●님이 함께 있다”라는 알림이 간다. ‘범프(Bump)’ 기능이다. 별 걸 다 알린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같이 여럿이서 즐길 수 있는 기능 때문에 Z세대의 ‘인싸’앱으로 불린다. 친구로 추가하고 싶은 친구와 만나 동시에 젠리를 켜고 범프를 하면 친구추가도 가능하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현재 범프 기능은 차단된 상태다.

▲  | 친구 3명을 데려오면 열리는 기능이다. ‘인싸’들만 가능하다. 조회 기능은 끝내 열지 못했다.
▲ | 친구 3명을 데려오면 열리는 기능이다. ‘인싸’들만 가능하다. 조회 기능은 끝내 열지 못했다.

이 밖에 젠리 곳곳에 배치된 오락적 요소들은 젠리가 Z세대를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친구초대 숫자에 따라 랭킹을 매기고,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친구들이 내 위치를 조회한 횟수를 알려주는 등 게임화(Gamification)’ 기법을 적용한 대목이 눈에 띈다. 메신저에는 이모티콘이 지원되는데, 친구를 모아오면 더 많은 이모티콘을 쓸 수 있다. 이모티콘마다 우스꽝스러운 소리가 나서 흥미를 유발한다.

왜 위치를 공유하나

실시간 위치추적 앱은 흔하다. 대부분 안전에 대한 우려나 신뢰 등의 이유로 이 같은 앱을 쓴다. 젠리 앱스토어 리뷰에서도 가족, 연인끼리 젠리를 쓰는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광고나 별도 결제가 필요 없는 무료 앱이라는 점에서 자녀의 위치추적 앱으로 추천하는 게시글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다만 젠리는 1020세대 중심의 이용자들이 위치공유 자체를 즐긴다는 점에서 달랐다. 또 여느 실시간 위치추적 앱과는 달리 사생활을 보호하는 기능이 마련돼 있어 차별화되는 측면도 있었다.

▲  | 친구들은 위치를 보고, 관련된 메시지를 보내왔다. 편리한 동시에 섬뜩하기도 했다. 지인은 외근이 많은 영업직원에게 사용을 강요하는 디스토피아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 | 친구들은 위치를 보고, 관련된 메시지를 보내왔다. 편리한 동시에 섬뜩하기도 했다. 지인은 외근이 많은 영업직원에게 사용을 강요하는 디스토피아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젠리는 기본적으로 모든 위치정보를 공개하는 투명모드다. 하지만 사생활을 지킬 수 있는 유령모드도 존재한다. △안개모드(대략적인 범위의 위치정보 임의 공개) △얼음모드(설정 이전의 마지막 실시간 위치정보에서 업데이트 멈춤) 등이다. 공개대상도 선택 가능하다. 특정친구 또는 전체친구에게 적용할 수 있고, ‘유령모드’ 해제시간을 지정할 수 있다. 2시간, 8시간, 24시간, 최대 ‘영원히’도 가능하다. 실험 삼아 퇴근하면서 동료에게는 8시간 동안 내 위치가 회사로 표시되게 해놨다. 예상대로 동료는 “밤이 늦었는데 왜 집에 안 가냐”며 의아해했다.

사실 이용 초반에는 진입장벽이 있었다. 주변의 20대 후반 직장인들을 젠리로 끌어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직장상사나 불편한 관계에 있는 이들이 젠리를 할까봐 두려움에 떨었다. 이처럼 위치정보 같은 민감한 사생활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관계의 친밀도가 중요하다. ‘절친’끼리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폐쇄형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전제조건도 어느정도 갖춰져야 한다. 우선 사생활 개방에 긍정적이어야 하며, 만남의 빈도가 높아야 한다. 젠리의 제 기능을 다 쓰려면 ‘함께 아는 친구’ 그룹이 많을수록 좋다. 수시로 반짝 모임이 가능해야 서로의 위치를 공유할 동기가 부여되기 때문이다. 앱 소개에도 ““어디야?”라고 지겹게 묻는 문자 메시지는 이제 그만. 근처에 있는 친구나 가족을 찾아 헤매며 답이 오지 않아 애타는 순간도 이제 그만”이라 돼 있듯, 젠리는 어디냐는 질문을 자주 건네는 이들끼리 써야 재미있는 앱이다. 학교, 학원, 동아리 등 또래집단과 비슷한 생활반경을 공유하는 Z세대 사이에서 특히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보인다. 이들이 ‘자발적으로’ 젠리에 친구들을 끌어오고 있는 배경이다.

▲  | 친구들과 만나고 있음을 알리는 불꽃 표시.
▲ | 친구들과 만나고 있음을 알리는 불꽃 표시.

젠리에서 우려되는 것은 개인정보 보호 문제다. 특히 젠리가 수집하는 데이터의 종류가 과도해, 이용자의 주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젠리는 헤드폰 연결 여부, 배터리 수준 및 플러그 상태, 와이파이 단말기의 BSSID, 무선 네트워크 이름, 타임 스탬프와 같은 위치 데이터와 자이로 스코프, 가속도계 및 컴퍼스와 같은 센서의 좌표(위도, 경도, 속도, 고도, 수평 및 수직 정밀도 등), 사용자 이름, 사용자명, 전화번호, 주소록 등 무수한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

젠리는 스스로 “이렇게 수집한 정보를 사용해 사용자 중심 정보를 추론한다”라고 밝힌다. “가장 자주 있는 위치, 장소, 추천친구, 인기친구, 수면상태, 사용자의 실제 상호작용 등”을 분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종합하면 젠리는 사용자의 위치, 동선, 친구와의 만남 빈도, 활동시간, 자주 이용하는 교통수단 등 무수한 행태정보를 모으고 있다. 막강한 수준의 빅데이터다. 이를 통해 추후 Z세대를 대상으로 한 광고 및 수익사업 등을 연계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젠리는 “위치 데이터는 비공개이며 이용자가 요청하지 않는 한, 또는 법으로 요구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되거나 판매되지 않는다”라고 안내했다. 1년 동안 젠리를 사용하지 않으면 자동 비활성화되며 탈퇴 시 데이터 대부분은 표시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다만 일부 데이터는 연구 및 통계 목적으로 익명화한다고 밝혔다.

• 총평

장점 : 친한 친구나 가족끼리 어디냐고 묻지 않아도 된다.
단점 : 그래서 서로 어디에 있는지 다 안다.
결론 : 나는 Z세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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