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력이 큰 차세대 사업으로 주목받아온  증강현실(AR) 기기를 둘러싸고 회의적인 시선이 여기저기에서 엿보인다. 몇몇 회사들의 부침이 외신을 통해 흘러 나오면서 회의론은 점점 힘을 받는 양상이다. 20년 넘게 스마트글래스를 개발해오던 독일 ODG (Osterhout Design Group)는 계속되는 적자를 버티지 못하고 2019년 파산했고 2013년에 설립된 미국 메타(Meta), 2010년 창업한 다큐리(Daqri) 역시 같은 해 파산했다.

하지만 필자는 몇개 기업의 파산을 전체 산업의 하락세로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ODG가 파산하며 남긴 많은 특허는 GAFAM과 같은 대기업들에 곧바로 인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ODG가 개발한 전통적인 버드배스(Birdbath) 광학 구조를 바탕으로 중국 엔리얼(Nreal) 등의 기업이 새로 설립됐다.

엔리얼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그동안 모두 합쳐 368억 원 가량의 투자를 유치했고 영국 EE, 보다폰(Vodafone), 일본 KDDI, 독일 도이치텔레콤(Deutsche Telekom), LG유플러스 등과 협업하며 5G 네트워크에서 증강현실 활용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엔리얼은 CES 2020에서도 크게 주목을 받았다. 엔리얼 외에 필자가 몸담고 있는 레티널, 리얼맥스(Realmax), '아이언맨 수트'로 유명한 테슬라수트(Teslasuit) 등 120개가 넘는 AR, VR 기업들이 CES2020에 제품을 선보였다.

CES 2021에는 2020년 대비 두 배가량 넓은 면적이 AR/VR 전시 공간으로 구성되는데, 미래 산업 잠재력 측면에서 AR/VR의 위상이 보여주는 대목이다. 시장조사 업체 디지캐피털(Digicapital)은 2019년 말 기준 AR/VR 스타트업들 기업가치 합산이 450억 달러 (한화 53조 원 상당)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AR 분야 성장세는 미국 광학 관련 단체인 SPIE에서 주관하는 AR/VR/MR 컨퍼런스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SPIE에서 매년 주관하는 광학 분야 학회 중 하나인 포토닉스웨스트(Photonics West)와 공동 개최되는 SPIE 컨퍼런스는, 3년 전 포토닉스웨스트와 같은 공간에서 처음으로 개최됐으나 올해부터는 별도 독립 공간에서 열렸다.

증강현실 산업 트렌드를 총망라하는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 '홀로렌즈' 팀과 구글 '데이드림 팀' 총괄 책임자 등이 참석, 최신 기술 동향을 공유했고 매직리프, 마이크로소프트 등 관련 기업들도 최신 기술을 발표하고 전시 부스를 차렸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 3년간의 기술 발전은 그 이전의 기술 발전을 다 합한 것만큼 급격했다”라며 “이는 매우 고무적이며, 앞으로 이른 시일 내에 상용화된 스마트글래스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20년 AR 스마트 글래스 시장은 어떻게 형성될까? 아직 스마트글래스가 스마트폰처럼 대중화되기에는 기술적인 한계가 있다. 스마트글래스를 구성하는 프로세싱, 센서, 광학 기술 등에 한계가 있어서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만큼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높은 성능을 가진 다양한 센서를 내장하면서도, 안경처럼 가벼워야 하며, 종일 쓸 수 있는 배터리를 가진 기기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지금 사용하는 휴대폰 이상의 성능을 안경테 안에 넣는다고 생각하면 그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기술 격차는 빠른 속도로 극복되고 있다. 먼저, 스마트폰, 스마트워치 등의 발달로 저전력 고성능 칩이 개발되고 있다. 초기 스마트워치 배터리가 하루도 버티기 힘들었던 것에 반해, 최근에는 2~3일 이상 러닝타임을 가진 스마트워치들이 속속들이 출시되고 있는 것이 사례다. 이에 더해 퀄컴은 2019년부터 AR/VR 전용 칩셋인 'XR' 시리즈를 발표해왔고 최근 2세대 제품군을 선보였다. 광학 업계 역시 마찬가지다. 90년대 HMD 붐 이후 주춤하던 증강현실 광학계 개발은, 2012년 이후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대기업과 디지렌즈 (Digilens), 웨이브옵틱스 (Waveoptics)와 같은 스타트업에 의해 다시 활성화됐다.

2016년 레티널 (LetinAR) 핀 미러(PinMR), 2020년 우림 (Oolym) SPS 등 새로운 방식의 광학계도 등장하고 있다. 각각의 기업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소비자들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수준의 광학계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 발맞춰 많은 디스플레이 업체도 증강현실 광학계 구현에 필요한 초소형 OLED 마이크로 디스플레이 개발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기존 활용되던 LCoS, DLP 방식 디스플레이 역시 성능이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당장 만족스러울 만한 완제품을 보기는 힘들지만, 앞으로 2~3년 이내에 스마트글래스가 상용화될 것이라고 업계가 예측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증강현실은 곧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2018년에 방영되었던 '알함브라 궁전'이라는 드라마를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드라마가 방영된 이후, 알함브라 궁전과 같은 현실이 언제 즈음 이루어질 것 같냐는 질문을 참으로 많이 받았다. 쏟아지는 질문들에, 다음과 같이 답을 드리고자 한다.

"콘택트렌즈 형태로서는 시간이 조금 많이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스마트글래스 형태로는 곧 우리 현실에 나타날 것입니다. 먼 미래로만 느껴졌던 2020년을 이미 살고 있지 않습니까? 스마트글래스는 2020년대 이루어질 변화 중 가장 큰 변화가 될 것입니다."

▲  글=김재혁 레티널 대표
▲ 글=김재혁 레티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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