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회사 동료들과 인근 스크린 골프장을 찾는 30대 중반 골프 마니아 A씨는 최근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다. 플레이를 위해 평소 자신이 선호하는 골프 코스를 선택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업소 측은 "그 코스는 저작권이 없어서 앞으로 사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스크린 골프장 내 시뮬레이터엔 수백 개 골프장의 골프코스가 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명문 골프장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최근 저작권 문제로 인해 A씨 같은 일을 겪는 골프 마니아들이 늘고 있다.

사연은 이렇다. 스크린 골프 시뮬레이터 기업 ‘골프존’은 지난 2008년부터 여러 골프장을 항공 촬영해 스크린 골프장에 제공해왔다. 국내외 유명 골프 클럽의 실제 모습을 촬영, 그 이미지를 기반으로 3D컴퓨터 그래픽 등을 이용해 구현하고 업체에 판매한 것이다.

골프존이 제작한 이 코스 영상은 자체 개발한 시스템에 탑재되어 개별 스크린 골프장 사업주에게 팔렸다. 방문객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코스를 선택해 경기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일부 골프장이 이를 문제 삼았다. A사 등 4곳의 골프장 업주들이 "고유 자산인 골프장 코스를 무단으로 도용했다"며 골프존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다.

1심에서 재판부는 "골프장 코스가 저작권법으로 보호되는 저작물에 해당된다"며 골프존은 골프장 측에 14억원 상당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골프존의 항소로 진행된 2심에서 재판부는 저작권에 근거한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했다. 배상금도 3억3000만원으로 줄었다. A사 등 골프장 업주들이 골프코스 설계자들로부터 저작권을 넘겨받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 골프존 측의 주장을 인용한 것이다.

최근 대법원은 해당 사건에 대해 3억3000만원을 배상하라는 원심 판결에 문제가 없다며 청구액을 인정했다. 배상 청구액 중 일부만 인정된 건 골프장이 골프코스 저작권의 소유 주체가 아니라는 점 때문이었다. 재판부는 골프 코스가 저작권법으로 보호되는 저작물이지만 설계자의 저작물이기 때문에 골프장 측이 그 저작권을 넘겨받지 않았다면 ‘권리는 설계자에게 있다’고 봤다.

쟁점은 '부정경쟁행위'였다. 골프 코스 자체는 설계자의 저작물이지만, A사 등이 구축한 골프장 전체 경관이나 조경 요소 등 종합적 이미지는 부정경쟁법이 보호하고 있는 '성과물'에 해당한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따라서 골프존이 허락 없이 골프장의 모습을 3D 골프 코스 영상으로 재현해 무단으로 사용한 건 골프장 측에 유무형적 피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승규 변호사는 "골프코스가 건축저작물에 해당한다고 판시하는 한편 최근 개정된 부정경쟁행위를 명백히 한 판결"이라며 "골프장의 종합적 이미지는 상당한 투자와 노력으로 생긴 성과이기 때문에 경쟁자인 스크린 골프사업자가 골프장의 종합적 이미지를 무단 사용하는 것은 부정경쟁방지행위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골프장의 코스 저작권이 별도의 권리 이양을 득하지 않는 한 골프장이 아닌 코스 제작자에 있다고 본 점도 의미가 크다"며 "향후 골프장의 코스 저작물 권리 관리는 물론 스크린 야구 등 경기장 및 명소 등 건축저작물이 인정될 건축물이 등장하는 각종 게임들의 개발 및 판매에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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