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일 그라운드X가 공개한 가상자산 지갑 서비스 '클립'
▲ 지난 3일 그라운드X가 공개한 가상자산 지갑 서비스 '클립'

지난 3일, 그라운드X의 가상자산 지갑 서비스 ‘클립(Klip)’이 카카오톡 기본 서비스로 출시됐다. 클립의 강점은 높은 접근성과, 직관적인 사용자 경험이다. 그라운드X도 이 점을 강조하며 블록체인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어도 누구나 쓸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럼 과연 클립은 정말 블록체인 문외한들도 쓸 수 있을까? 직접 검증해봤다.

 

실험은 대상이 내가 보낸 클레이(KLAY) 토큰을 받아 확인하고, 다시 내게 전송하는 과정까지다. 기존 블록체인 토큰 거래의 장벽은 대개 ‘0x16AC….Xxc’ 처럼 수십 개의 문자로 이뤄진 개인별 지갑 주소를 알아야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11자리 핸드폰 번호도 외우기 귀찮은 현대인들에게 컴퓨터 암호 같은 지갑 주소는 시작부터 거부감을 주는 요소다.

클립도 주소기반 토큰 전송을 지원한다. 하지만 접근성 극대화를 위해 클립에 가입한 카카오톡 친구라면 주소를 몰라도 토큰을 전송할 수 있는 기능을 전면에 내세웠다. 실제 토큰 구입과 사용까지는 추가적인 과정이 필요하지만, 우선은 기초적인 사용성부터 확인해보기로 한다.

백문이불여일견

실험 대상으론 누나를 골랐다. 똑똑하지만 디지털 기술에 왠지 약한 모습을 보여온 우리 누나다. 저녁 무렵 아무런 사전설명 없이 대뜸 클립 가입 링크를 전송하고 설치를 요구했다. 피싱이 판을 치는 세상인데 일단 동생 요청이라고 따라주는 누나가 고맙지만 한편으론 걱정됐다.

어쨌든 카카오톡 계정 연동을 무사히 마친 누나가 질문한다. “토큰이 뭐임?” “토큰 이름을 왜 내가 정함?” 다시 강조하지만, 누나는 블록체인 개념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블알못)이다. 토큰 이름을 왜 정해야 되냐는 말이 대체 뭘 보고 나온 질문인지는 모르겠다. 사실, 구태여 알아보지 않기로 했다.

대충 설명하고 누나에게 무작정 10클레이를 전송했다. 방법은 아주 쉽다. 메인 화면에서 '토큰 보내기' 버튼을 누르고 수량을 입력한 뒤, 채팅방 초대 기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구 선택화면에서 보낼 대상을 정하면 된다. 클립에 가입한 사람이 우선 표시되므로 더욱 편하다.

토큰을 보내자마자 다시 내놓으라고 했다. 이번에도 흔쾌히 알았다는 누나. 그런데 불과 몇 초 만에 10클레이가 내게 다시 돌아왔다. 솔직히 놀랐다. 그리고 이어지는 누나의 여유로운 한 마디. “쉬운데”.

▲  실제 누나와 주고받은 카카오톡 대화 갈무리
▲ 실제 누나와 주고받은 카카오톡 대화 갈무리

실험을 마치고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실제 사용성은 어땠는지 물어봤다. 무슨 서비스인지도 모르고 일단 썼지만 일반 간편송금 앱과 비슷해 토큰을 받고 보내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블알못도 클립으로 토큰을 교환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의 답은 ‘Yes’다.

이처럼 그라운드X는 클립을 출시하며 노렸던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듯하다. 카카오톡이란 국민적 허브와 결합해 누구나 손쉽게 가상자산 지갑을 만들 수 있게 했고, 기술적 기반을 전혀 몰라도 토큰 거래를 가능케 했다. 게다가 자산을 소수점 단위로 쪼개 버리던 수수료는 무료화해 심리적 만족감도 제공했다. 작지만 깔끔한 배려다. 그럼 다음은 클립의 내일을 생각해볼 차례다. 클립은 이대로 국민 서비스가 될 수 있을까?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자.

긍정적인 관점

먼저 클립은 출신이 남다르다. 지금껏 대부분의 블록체인 응용 서비스는 낮은 접근성 탓에 고배를 마셨지만, 클립은 사실상 카카오의 자식이나 다름없다. 첫 둥지를 카카오톡에 튼 덕분에 심리적 저항선은 낮아지고 접근성은 높아졌다. 지갑 생성도 카카오톡 계정만 있으면 되니 일사천리다. 여기에 선착순 50클레이 증정 이벤트를 진행하며 단박에 10만 가입자까지 확보했다.

물론, 당장은 혜택만 받고 서비스는 이용하지 않는 체리 피커(Cherry picker)의 비중도 적지 않을 터다. 하지만 카카오톡이란 뒷배는 언제든 대중이 클립에 관심을 갖도록 만들 수 있는 영향력을 갖고 있다. 게다가 아무리 좋은 서비스라도 손 가는 곳에 있어야 한 번이라도 더 쓰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클립은 어떤 어떤 블록체인 서비스보다 널리, 장수할 가능성이 높은 조건을 갖고 있다.

▲  '클립'은 카카오톡 더보기-전체서비스 하단에 있다. 향후에는 별도의 독립 앱이 출시될 것으로 보인다.
▲ '클립'은 카카오톡 더보기-전체서비스 하단에 있다. 향후에는 별도의 독립 앱이 출시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클립은 그 자체로 ‘관문’ 역할을 할 가능성도 기대된다. 수년 전 ‘카카오 게임하기’는 잘 나가는 모바일 게임으로 나아가기 위한 등용문으로 위세를 떨쳤다. 그 역시 카카오톡이란 접근성 높은 채널을 기반으로 지인 기반의 커뮤니티 확장성까지 제공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클립 역시 향후 토큰 거래의 대중화뿐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았던 양질의 비앱(bApp, 블록체인 응용 서비스) 접근성을 높여줄 등용문이 될 수 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현재 블록체인 업계의 아킬레스건은 고정 사용자층을 유지할 킬러 앱이 없다는 점이다. 혹은 좋은 앱이 있어도 유통 채널의 한계로 널리 확산되기 어려운 환경이다.

부정적인 관점

그러나 비판적인 시각에서 볼 때 문제는 아직 클립에도 딱히 킬러 앱으로 부를 만한 연계 서비스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상 △건강 △게임/엔터테인먼트 △쇼핑 카테고리에서 몇몇 블록체인 기반 앱들을 확인할 수 있지만 특별히 시선을 사로잡는 특별함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추후 더 많은 서비스가 클립에 입점하겠지만, 관심도가 가장 높은 이 시기 묵직한 한방을 보여주지 못한 건 아쉽다.

지갑으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한 부분도 아쉬움이 남는다. 클립을 매개로 블록체인 문외한들까지 신규 사용자로 유입시킬 생각이었다면, 그들이 새로운 생태계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가이드’의 역할도 겸했으면 좋았을 터다. 가령 누나는 내게 ‘토큰을 어떻게 충전하냐’처럼, 서비스 가입 후 자연스레 따르는 질문을 던졌다.

그 부분에서 쉽진 않겠지만, 현재 그라운드X가 국내 거래소 상장을 반대하는 클레이를 제외하더라도 입점 토큰들에 대한 구체적인 사용처 명시, 거래소 활용법 등을 함께 제시했다면 더 많은 잠재적 사용자를 확보할 수 있지 않았을까?

결국 몇몇 추가적인 장벽을 넘지 못 한다면 클립도 카카오의 비주류 서비스 중 하나로 전락할 수 있다. 게다가 클립의 메인 토큰인 클레이는 투기 우려까지 낳았다. 코인원에 상장된 클레이 가격은 첫날 180원대로 시작해 단시간에 2배 가까운 346원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이후 열기가 다소 사그라들며 현재는 다시 269원으로 급락한 상태다.

현재 클레이의 실사용처가 넓지 않은 상황에서 단순한 기대심리에 기대 가격이 널뛰기하는 상황은 이전까지 많은 가상자산들이 겪은 가치 불안정 문제와 다르지 않다.

▲  코인원에 나타난 클레이 가격 변동 현황(11일 오후 6시48분 기준)
▲ 코인원에 나타난 클레이 가격 변동 현황(11일 오후 6시48분 기준)

한재선 그라운드X 대표는 7일 자신의 브런치에서 “가장 경계하는 것은 토큰의 시세차익에만 관심을 갖고, 클립보다 클레이 토큰이 주목받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클립의 근본적인 목표는 다양한 디지털 자산 유통과 더불어 여러 블록체인 서비스가 클립을 통해 가치를 증명받는 환경”이라고 밝혔다.

이는 즉, 지금 클립이 당면한 문제와 나아갈 방향에 대해 한 대표 본인도 이미 잘 알고 있다는 의미다. 남은 과제는 이제 그 의지를 증명해내는 일이다. 다행히 접근성과 사용성 확보란 중요한 첫걸음에선 충분히 합격점을 줄 만하다. 다만, 사용자가 클립에 느낀 매력을 지속하기 위한 당근책은 다소 부족해 보이는 실정이다. 과연 이 기대가 꺼지기 전에 클립은 결정적인 ‘한방’을 더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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