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까지만 해도 'IT 강국 대한민국'은 우리나라 산업을 표현해 주는 문구였다. 그 당시 IT 강국은 초고속인터넷 속도와 갓 도입한 스마트폰 보급률 확산 속도만으로 평가하던 때였다. 사실 우리나라가 실리콘밸리의 글로벌 IT기업이나 스타트업을 능가했던 적은 없다. 마음속으로 무시하던 중국과 인도의 IT인력들 보다 더 뛰어난 인재가 많았던 적도 없다. 좁은 땅덩어리에 잘 구축된 인터넷망을 통해 빠른 소통이 가능했고, 유행에 민감한 젊은이들과 얼리어댑터들을 통해 IT기술 활용도가 뛰어난 수준이었다.

물론 이러한 장점이 현재 대한민국 IT 산업의 잠재력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현재 한국의 IT산업 경쟁력은 일본과 대등한 수준이거나 이미 뛰어넘었다. IT 수출입 현황과 같은 통계치에서 앞섰다는 것이 아니라, 산업 기술력 측면에서 일본기업을 월등히 앞서는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가 그렇고, 현대자동차가 대표적이다. 네이버와 카카오도 있고, 다양한 산업군에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사례를 통해 등장하는 기술기반 기업들이 많다. 다들 글로벌에서 통하는 기술력을 가지고 있기에 해외진출에도 성과를 내고 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지난 10년 동안 IT는 모든 산업에 영향을 끼쳤다. 우리나라도 IT 혁신을 통해서 빠른 산업 발전이 전개됐다. 삼성전자의 휴대폰은 애플과 경쟁하고, 네이버는 라인과 같은 글로벌 메신저와 콘텐츠를 통해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 카카오는 생활밀착형 서비스로 전국민의 디지털화를 이끌고 있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는 세계최초 5G 상용화를 해냈다. 자율주행차 역시 해외 못지 않게 연구개발이 활발하다.

▲  지난 2017년 CES 당시 라스베이거스에서 현대차그룹 정의선 수석부회장(오른쪽)이 아이오닉 자율주행에 탑승, 성능을 점검하고 있는 모습.
▲ 지난 2017년 CES 당시 라스베이거스에서 현대차그룹 정의선 수석부회장(오른쪽)이 아이오닉 자율주행에 탑승, 성능을 점검하고 있는 모습.

우리나라 제조산업을 대표하는 현대자동차 역시 발빠르게 전기차 시장 공략에 나섰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이 최근 한국판 뉴딜 발표에 나서 2025년까지 전기차 100만대 판매, 10% 이상의 시장점유율 확보를 통해 미래차 부분 글로벌 리더가 되겠다고 공언했다. 시대 흐름을 잘 파악하고 계획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는다. 실제 현대차 주식은 정 부회장의 발표 이후 7거래일동안 상승했다. 외국인 순매수도 한 몫했다.

지난 21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만났다. 현대차그룹 남양기술연구소에서 미래 모빌리티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둘은 함께 현대의 자율주행차와 수소전기차를 시승하기도 했다.

양사는 단순히 전기차에 들어갈 배터리만 이야기 한 것은 아니다. 미래 자동차에 적용되는 전자장비에 대한 폭넓은 논의가 이뤄졌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전장부품이 4대 신성장 사업 중 하나다. 현대차 역시 미래 자동차 부문에서 글로벌 리더를 목표로 하고 있다.

IT를 품은 자동차, 더 나아가 IT를 품은 이동수단은 포스트 스마트폰 혁명을 선사할 것임을 장담한다. 테슬라의 약진이 좋은 본보기다. 그리고 최종소비자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접점은 전자기기화 된 미래차에서 꽃을 피울 것으로 기대된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이 미래 자동차 협의를 위해 회동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이 미래 자동차 협의를 위해 회동했다.

이날 이재용 부회장과 동행한 삼성 경영진은 현대의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외에도 도심항공모빌리티(UAM)과 로보틱스 등 현대차그룹의 미래기술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고 한다. 업계에서는 양사가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서 협업이 가능하다고 전망하고 있다.

오는 2030년에는 자율주행차 및 전기차가 전체 자동차 판매량의 20%를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IHS 및 블룸버그 동향자료). 2020년 글로벌 전장 부품 시장 규모는 3033억달러(한화 약 362조2000억원) 규모다. 자율주행 ADAS 센서 시장 규모는 238억달러(약 28조 4220억원) 규모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만남은 다양한 산업 파급효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 디스플레이, 모바일 기기, 자동차, 자율주행, 5G와 6G 통신, 소재부품 등 핵심 산업 모두를 부흥시킬 수 있다. 이들 산업의 수출 물꼬를 열어줄 수도 있다. 초고속인터넷의 빠름이 아닌, 핵심 IT 기술력의 발전으로 진짜 IT 강국 타이틀을 우리나라에 가져다 줄 수도 있다.

▲  현대기아차 자율주차 콘셉트 차량이 전기차 무선충전을 진행하고 있다.
▲ 현대기아차 자율주차 콘셉트 차량이 전기차 무선충전을 진행하고 있다.

현대차는 2021년부터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의 배터리를 공급 받아 E-GMP 전기차 양산을 하게 된다. 현대차가 SK와 LG에 이어 삼성SDI와도 배터리 협력에 나설 가능성도 점쳐진다.

정의선 부회장은 이번 회동에 앞서 이재용 부회장을 먼저 찾은 바 있고, 이어 구광모 LG그룹 대표와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찾아 배터리 등에 대한 협력 방안을 모색한 바 있다. 그리고 역으로 이 부회장이 현대차를 찾아 보다 깊은 사업협력에 대한 논의가 추진됐다. 이 때문에 구광모 대표와 최태원 회장도 정 부회장과 2차 회동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다.

젊은 재계 총수, 특히 우리나라의 미래 먹거리를 '자동차'라는 매개체를 통해 만들어 나갈 능력을 갖춘 기업의 총수들이 힘을 모으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시그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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