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 AP 설계 회사인 ARM이 중국 지사의 '반란'이라는 돌발 악재에 휩싸였다./사진=flickr.com/iphonedigital
▲ 세계적 AP 설계 회사인 ARM이 중국 지사의 '반란'이라는 돌발 악재에 휩싸였다./사진=flickr.com/iphonedigital

현재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서 ARM의 위치는, 특히 전자기기의 ‘두뇌’에 해당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의 설계자산(IP) 분야에선 ‘대체 불가능’한 수준이다. 애플과 퀄컴, 삼성전자, 화웨이,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 등 굴지의 회사가 만드는 AP 설계를 이 회사가 맡고 있다. 이 분야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90%에 달한다.

그런 ARM이 최근 돌발 악재에 휘말렸다. ARM 중국 지사인 ARM 차이나 임직원들이 본사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는 서한을 중국 정부에 전달한 것이다. 세간에선 혹여 중국 정부가 ARM을 강제로 끌어안을 때 생길 기술유출 이슈나 M&A에서의 몸값 하락에 주목하고 있다.

ARM 차이나의 상식 밖 행보

ARM 본사와 중국 지사 간 갈등이 표면화된 시점은 지난 6월 4일경이다.  본사는 알렌 우(Allen Wu·중국 지사장) 지사장이 “거짓 정보를 퍼뜨리고 임직원들에게 공포감과 혼란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해임을 공식 발표했다.

본사는 성명을 통해 “알렌 우가 중국 파트너 사와 ARM 본사 간 중요한 커뮤니케이션과 지원을 막았다”라며 “자기 이익에만 신경 쓰면서 중국의 반도체 혁신을 리스크로 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중국 외신들은 ‘본사가 갑질을 한다’는 식으로 보도했지만, 파이낸셜타임즈는 지난 6월 26일(현지시각) 보도에서 이를 우 지사장의 ‘이해 충돌’ 문제로 해석했다. 그가 주요 고객들에게 기술 할인을 미끼로 개인 펀드 투자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ARM 본사는 이 밖에도 우 지사장과 관련된 여러 문제를 포착한 것으로 보인다.

우 지사장은 오히려 반격에 나섰다. 중국 내 ARM 경영의 최종 권한을 가진 그가 ARM 차이나를 본사로부터 분리해 소유하는 작업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우 지사장의 이 같은 행보는 애초에 의도된 것으로 보인다는 게 외신들의 공통된 보도다.

▲  ARM 차이나가 중국 정부에 보낸 서신에는 직원 200여명의 서명이 담겨있다.
▲ ARM 차이나가 중국 정부에 보낸 서신에는 직원 200여명의 서명이 담겨있다.

지난 7월 28일(현지시각) ARM 차이나는 중국 정부에 지사의 독립 경영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여기엔 전체 직원 3분의 1에 가까운 200여명의 서명도 함께 담겼다. 중국투자공사, 실크로드 펀드, 국제중국은행 등 정부 산하 기관들이 ARM 지사 지분의 51%를 가진 것을 악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ARM 차이나는 서한에서 “ARM과 호푸투자관리공사(HOPU Investment)가 공동으로 회장과 CEO를 제거하기를 원했다”라며 “주주와 이사회가 회사의 정상적 운영을 방해하지 않고 직원의 합리적 권리와 이익에 해를 끼치지 말 것을 요구한다”라고 사실상 본사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한 상태다.

기술 유출은 없겠지만... "매출은 타격 올 수도"

중국 지사의 ‘반란’은 ARM에 갑작스런 악재가 됐다. ARM 차이나는 중국 내 컴퓨터 칩 설계 IP 시장의 95%를 가진 독점적 사업자다. ARM의 중국 매출 비중은 전체 매출의 무려 5분의 1을 차지한다. 이에 당장 매출에 타격을 입음은 물론 ARM이 가진 설계 기술력이 중국으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ARM 차이나는 성명에서 “합작 회사는 ARM의 기술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중국 시장에서 ARM의 영구적이고 독점적인 제품 판매 권한과 독립적인 연구·개발 권한을 획득했다”고 밝혔다. ARM이 지금껏 AP 설계 분야에서 독보적 지위를 차지하게 만든 각종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ARM의 기술유출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ARM 본사 측에 문의했지만 “ARM 차이나 이사회는 정부 당국과 긴밀히 협력해 현 상황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있다”라고만 말했다. 기술유출 우려에 대한 유의미한 답변은 들을 수 없었다.

▲  ARM을 M&A 시장에 내놨던 소프트뱅크에 중국 지사 이슈가 악재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 ARM을 M&A 시장에 내놨던 소프트뱅크에 중국 지사 이슈가 악재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반도체 업계는 이번 사태가 ARM에 실질적 타격은 아니라 보고 있다. 별도의 공장을 안 두는 펩리스이면서 IP가 본사에 있는 만큼 기술 유출은 없을 것이란 분석이 대체적이다. 다만 중국에서의 IP 판매가 어려워지는 만큼 매출에는 단기적 타격이 있을 것이라는시각도 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ARM은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고 라이선스가 본사에 있으며, ARM 차이나 사실상 판매사라 기술을 가질 수 없는 구조”라며 “다만 ARM 차이나가 중국 내 상품 판매 독점권을 가지고 있어 ARM은 중국에 IP를 팔게 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ARM 기술을 대체할 기업이 없는 만큼 이는 결국 ARM을 쓰지 못하는 중국 기업에 타격을 주게 될 것”이라며 “ARM으로선 중국 말고 다른 나라에 IP를 파는 게 더 많아질 수 있어 손해라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만 업계에선 최근 ARM 매각을 추진 중인 대주주 소프트뱅크에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소프트뱅크는 글로벌 GPU 제조사 엔비디아, ARM 기반 자체 칩을 개발 중인 애플 등에 ARM 매각을 타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잠재 매수자로 시스템 반도체를 강화하려는 삼성전자나 파운드리의 최강자 TSMC 등도 거론되고 있다. ARM의 시가총액은 약 50조원 수준으로 평가된다.

 

저작권자 © 블로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