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용결제는 원래 신용이 있는 자의 점유물이었지만 간편결제의 등장으로 신용 없는 자에게도 문이 열렸다./사진=픽사베이
▲ 신용결제는 원래 신용이 있는 자의 점유물이었지만 간편결제의 등장으로 신용 없는 자에게도 문이 열렸다./사진=픽사베이

일명 ○○페이라 부르는 간편결제와 신용카드 결제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신용카드 결제는 물건을 산 뒤 나중에 돈을 내고 간편결제는 물건을 살 때 바로 돈을 낸다는 것, 즉 결제 시점의 차이일 것이다.

‘신용’의 사전적 의미는 ‘신뢰에 기초해 재화의 대가 지불을 연기할 수 있는 능력’이다. 신용카드는 그 능력을 갖춘 자들의 점유물이었다. 신용카드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물건을 살 때 신용 거래를 하지 못하거나 혹은 다소간 불편한 휴대폰 소액결제를 이용해왔다.

핀테크의 확대로 두 업권 간 경계는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 신용카드사들이 예전보다 더 편한 결제를 선보이면서 ‘기능적’ 간편결제는 사실상 보편화한 상태다. 그런데 반대로 간편결제 회사들이 신용카드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데 있어 최근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후불결제’의 도입이 그 단초가 됐다.

간편 후불결제, 왜 ‘뜨거운 감자’가 됐나

간편 후불결제는 2019년 1월경부터 금융당국에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당시 제로페이를 비롯한 간편결제 플랫폼에 후불 기능을 탑재한다는 말이 나왔고, 이에 신용카드사를 중심으로 금융권에서 반대 목소리가 터졌다.

금융위는 진작부터 간편 후불결제 허용을 준비해왔다. 2019년 중순 ‘전자금융거래법’ 상 대금지급업자(페이회사)에 후불 영업을 허용토록 법을 개정하는 쪽으로 군불을 지폈고, 지난해 12월 ‘핀테크 스케일업 추진전략’, 지난 7월 ‘디지털금융 종합혁신방안’으로 이를 공식화했다.

금융위 발표 자료에 따르면 후불결제는 최대 30만원까지 허용하며 개인별로 한도에 차등을 둔다. 후불 30만원은 신용카드사의 하이브리드 체크카드(체크+신용카드) 한도와 똑같으며 휴대폰 소액결제 한도(최대 100만원)보다는 약 3분의 1로 작다.

금융위는 현재 대손충당금 적립, 사업자 간 연체정보 공유, 사업자별 후불 결제 총액 제한 등을 놓고 업계와의 논의를 통해 세부 법안 내용을 조율하고 있다. 이번 3분기 안에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며, 빠르면 연내 시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사들도 페이의 후불결제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 ‘혁신’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에 따라야 하는 게 전통 금융사들의 숙명임은 틀림없다. 그럼에도 논란이 나오는 건 간단하다. ‘우리한테는 이 정도로 문을 닫았는데, 왜 저들에게는 문을 더 열어주느냐’는, 일종의 형평성 문제다.

금융사들이 말하는 바는 이렇다. 간편결제에 후불 기능을 넣는 건 크게 두 가지 규제 측면에서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자본금 규제(진입 규제)와 영업행위 규제가 바로 그것이다.

금융권과 핀테크 사이 ‘규제 크레바스’가 있다

자본금 규제부터 풀어보자. 통상 신용카드사들은 시장에 들어갈 때 200억원의 자본금을 낸다. 대규모로 이뤄지는 신용 거래의 특성상 이 정도의 자본력을 갖춰야 가능하다는 게 최초 법을 만들 때 생각이었다.

지금 페이회사들이 사업 진입에 필요한 최소 자본금은 업종별로 5억~50억원 수준이다. 금융당국은 이번 법 개정을 통해 이 상한선을 3억~20억원까지 줄일 계획이다. 간편결제에서 후불 신용 거래의 규모 자체가 크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도 기존 금융권엔 일종의 차별 요인으로 비칠 부분이다. 다만 대부분 금융사는 이 정도까진 괜찮다고 말한다. 조만간 정해질 대손충당금 규제를 통해 소비자 보호가 이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더 크게 문제삼는 건 영업행위 규제다. 30만원이라는 후불 한도가 신용카드사와 비교할 때 너무 높지 않냐는 것이다. 신용카드의 한도 자체가 높은 것과 별개로, 월평균 결제액으로 비교할 땐 얼마 차이가 안 난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한 신용카드사 관계자는 “신용카드 월평균 결제액이 60~80만원 수준이라 간편결제 회사에 30만원의 후불을 준다는 게 결코 적지 않아 보인다”라며 “금융당국에서 추후 이 한도를 더 늘린다고 하는데, 그럼 신용카드사와 다른 게 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간편 후불결제의 비교 대상으로 정한 하이브리드 체크카드와도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 쉽게 말해 하이브리드 체크카드는 전체 카드사에서 단 두 장만 발급 가능한데, 간편 후불결제의 경우 수많은 페이회사 모두에 허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간 신용카드사가 ‘틈새시장’으로 여겨온 하이브리드 카드의 경쟁력이 없어짐은 말할 것도 없어 보인다.

수수료율 이슈도 꼭 짚어봐야 한다. 서비스를 이용하는 금융소비자와 직접 연관이 되기 때문이다. 신용카드사는 연 매출 30억원 이하 영세사업자에 1.6% 아래의 수수료율을 책정한다. 전체 가맹점에서 이 비율은 96%에 달한다. 대손 비용과 망 관리비, 마케팅비 등을 빼면 카드사가 결제 부문에서 버는 돈은 ‘없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런데 간편결제 사업자는 이미 선불 결제에서 1.6% 이상의 수수료를 받고 있으며, 후불결제에선 이 수수료율이 얼마인지조차 정해지지 않았다. 혁신을 통해 이용자에게 혜택을 주는 게 핀테크 서비스인데, 정작 간편결제에선 혁신만 있을 뿐 이용자나 가맹점 주 어느 한쪽에 비용을 가중하는 것이다.

▲  금융사와 간편결제사가 형평성 논란으로 다투는 사이 금융소비자의 편익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픽사베이
▲ 금융사와 간편결제사가 형평성 논란으로 다투는 사이 금융소비자의 편익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픽사베이

고래 싸움에 소비자 등 터질까

후불 결제가 도입되면 소비자 편익은 늘어날 것이다. 페이 고객들은 간편결제를 이용할 때 선불로 결제할지 아니면 30만원 한도 내에서 추후 낼지를 선택할 수 있다. 신용카드를 발급받지 못하는 ‘씬파일러(thin-filer)’들이 간편결제로 신용거래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금융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소 기우인 부분도 있지만, 일견 타당한 지적도 있다. 특히 수수료율의 경우 네이버 카카오 등 플랫폼을 쥐고 있는 빅테크들이 주도권을 쥐고 정하는 형국이다. 관련 비용은 자연스럽게 가맹점으로, 또 소비자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후불 결제가 본래 취지와 다르게 형평성이라는 ‘함정’에 빠진 건 단순히 기득권(금융권)과 신흥 세력(핀테크)의 싸움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만 종합하면, 결국 이해관계자 중 어느 ‘누군가’의 희생이 수반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혹여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게 당국의 중요한 역할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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