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로 인해 포털의 댓글창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최근 네이버와 다음은 스포츠뉴스 댓글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연예뉴스 댓글 서비스에 이어 스포츠뉴스 댓글까지 폐지되면서 이제 댓글창은 '종말의 시대'를 맞이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단순한 서비스 폐지보다는 사용자의 인식 개선 노력과 법적 처벌 등의 다양한 조치가 어우러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설리·구하라…댓글에 희생된 연예인들
댓글 서비스가 설 곳을 잃는 이유는 악플(악성 댓글)의 폐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최근 유명을 달리한 연예인들은 공통적으로 악플에 의한 피해를 호소했다.

▲  고(故) 설리와 구하라 /인스타그램 갈무리
▲ 고(故) 설리와 구하라 /인스타그램 갈무리

지난해 10월 세상을 떠난 가수 고(故) 설리는 악플 때문에 대인기피증과 공황장애를 앓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설리는 2019년 출연했던 JTBC '악플의 밤'에서 자신에게 쏟아진 댓글을 직접 읽고 해명하는 등 의연한 모습을 보였으나 속은 곪아 있었다. 그녀는 "실제 인간 최진리의 속은 어두운데 연예인 설리는 밖에서 밝은 척해야 할 때가 많다"며 "실제 내 생활은 구렁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하늘의 별이 된 가수 고(故) 구하라는 악성 댓글을 멈춰달라고 수차례에 걸쳐 호소했다. 그녀는 지난해 4월 쌍꺼풀 수술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안검하수(눈꺼풀처짐) 수술 사실을 밝히며 "어린 나이부터 활동하는 동안 수많은 악플과 심적인 고통으로 많이 상처받았다 "며 "어떤 모습이든 한 번이라도 곱게 예쁜 시선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설리와 구하라가 악플에 시달리다 세상을 등진 이후 댓글창을 닫으라는 여론이 눈덩이처럼 커지기 시작했다.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자 포털사이트는 차례로 연애 뉴스의 댓글 서비스를 중지했다. 카카오가 지난해 10월 최초로 연예 뉴스란의 댓글창을 닫은 뒤 네이버는 올해 3월, 네이트는 오늘 7월 댓글 서비스를 없앴다.

댓글은 이용자의 체류시간과 접속 횟수를 늘려주는 수단이기 때문에 포털이 쉽게 포기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사회적인 문제가 너무 커지자 칼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여민수 카카오 대표는 "댓글 서비스의 시작은 건강한 공론장을 마련한다는 목적이었으나, 지금은 부작용 역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며 "(댓글란 폐지로) 비즈니스 측면에서 보자면 리스크가 있을 수 있지만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실수하면 조리돌림…댓글창은 '감정의 배설구'
스포츠뉴스의 댓글 서비스 폐지 이유도 악플이었다. 지난 1일 세상을 떠난 고(故) 고유민 여자프로배구 선수는 생전의 인터뷰에서 "'네가 배구 선수냐' '내가 바로 해도 그것보다 잘하겠다' 등의 악플을 보면 운동하기 싫고, 시합도 나가기 싫었다"고 밝힌 바 있다.

▲  故 고유민 선수 인터뷰 /YTN 뉴스 갈무리
▲ 故 고유민 선수 인터뷰 /YTN 뉴스 갈무리

예전부터 스포츠 선수들에게 포털사이트의 댓글은 '봐서는 안 될' 기피 대상이였다. 조금이라도 부진하거나 실수가 벌어지면 어김없이 폭풍 같은 악플이 달렸다. 잘못해서 욕을 먹는 경우는 차라리 애교였다. 아무 근거도 없이 특정 선수의 기사를 따라다니며 지속적인 악플을 다는 이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프로야구 선수 박병호에게 지속적인 악플을 쓰던 네이버 이용자 '국거박'이 지난해 11월까지 쏟아낸 총 댓글 수는 자그마치 4만7000개에 이른다.

어느새 댓글란은 의견 개진의 순기능은 사라지고 '감정의 배설구'로 변질이 됐다. 포털의 스포츠뉴스 댓글 기능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그 와중에 일어난 고유민 선수의 극단적 선택은 여론에 불을 질렀다. 이에 네이버는 지난 7일 스포츠뉴스 댓글 서비스를 잠정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네이버는 "최근 악성댓글 수위와 그로 인해 상처받는 선수들의 고통이 간과할 수준을 넘었다고 판단했다"고 댓글 서비스 폐지 이유를 밝혔다. 같은 날 카카오도 스포츠뉴스 댓글 서비스를 폐지하면서 양대 포털사이트의 연예·스포츠 뉴스에는 더 이상 댓글을 달 수 없게 됐다.

◇유튜버 등 인플루언서 역시 '악플러의 먹잇감'
악플은 포털에만 달리지 않는다. 인기 유튜버나 BJ 역시 악플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으며 일부는 활동까지 중단했다.

스타 먹방 유튜버 쯔양은 최근 악플로 인해 방송을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6일 올린 영상에서 쯔양은 "잘못에 대한 질타가 아닌 '광고가 아닌 영상임에도 광고다', '탈세를 했다', '사기꾼' 등 허위 사실이 퍼지는 댓글 문화에 지쳐 더 이상 방송활동을 하고 싶지 않다"고 토로했다.

▲  /쯔양 유튜브 영상 갈무리
▲ /쯔양 유튜브 영상 갈무리

그러나 은퇴를 알리는 기사에도  악플이 달렸다. '돈 많이 벌었으니 은퇴해도 상관없냐', '분명히 돌아올 거면서 연기한다' 등의 비아냥이 뒤따랐다. 쯔양은 아프리카TV 공지를 통해 "댓글, 저에 대한 기사 등을 안보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보게 된다 "며 "너무 괴로워서 3일째 아무것도 못 먹고 잠도 한숨도 못 자고 있다. 제발 그만 좀 괴롭혀 달라"고 호소했다.

견디다 못한 일부 인플루언서는 '선플달기' 운동에 나섰다. 인기 유튜브 콘텐츠 '덕자의 전성시대'의 출연자 덕자는 지리산 둘레길 295㎞를 걷기로 했다. 지난달 29일 올린 영상에서 덕자는 "1㎞당 선플달기운동본부에 만원을 기부하고, 완주 시에는 200만원을 추가 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리산 둘레길 걷기를 시작한 이유는 도를 넘는 악플 때문이다. 덕자는 "정말 친했던 언니가 악플로 인해 하늘의 별이 되었다"며 "악플 대신 선플을 쓴다는 일이 힘든 일인지 알지만 걸어서 제 마음을 전달해보려고 한다.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한 분이라도 마음이 바뀐다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댓글창 사라지자 나타나는 풍선효과
이처럼 연예인과 스포츠 선수, 인플루언서 등 유명인을 향해 꼬리표처럼 달리는 악플로 인해 댓글창에 대한 시선은 차갑게 식어갔다.

댓글 서비스 폐지는 반발보다 큰 환영을 받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해 12월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연예인들의 극단적 선택에 악플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를 묻자 응답자의 절대 다수인 97.7%가 '악플의 영향이 있다'고 답했다. 또한 카카오의 다음 연예뉴스 댓글란 폐지 조치에 대한 입장에는 응답자의 80.8%가 '지지한다'고 밝혔다. '반대한다'는 응답은 8.6%에 불과했다.

올해 들어 포털은 악플과의 전쟁에 더 집중하고 있다. 일부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카카오는 지난 2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댓글의 욕설 및 비속어를 필터링해 음표 모양으로 바꿔주는 기능을 운영하고 있는데, 개편 후 음표 치환된 댓글이 20%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네이버는 지난 3월부터 댓글 작성자의 과거 댓글을 모두 공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네이버에 따르면 올해 1월 대비 6월 규정 위반으로 삭제된 악성 댓글 건수는 63.3% 줄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있다. 포털이 막히자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유튜브 또는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악플이 증가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해외 기반 서비스는 국내 포털사이트에 비해 계정 생성이 쉽기 때문에 여러 개의 계정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악플을 달거나 DM을 보내는 이들이 많다.

◇인식 개선·기술·법적 대응 동시에 이뤄져야
'악플은 줄어도 악플러는 남는다'는 말처럼 제도 개선으로 악플러를 엄벌해야 한다는 의견도 힘을 얻고 있다. 지난 7일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악성 댓글 처벌 강화를 골자로 한 정보통신망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  /픽사베이 제공
▲ /픽사베이 제공

개정안에는 온라인상 혐오·차별 표현 등 모욕에 대한 죄를 신설하고, 피해자를 자살하게 하거나 자살을 결의하게 한 사람에 대해서 형법상 자살방조죄와 같이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국회 통과 여부는 미지수다. 지난해도 이른바 '설리법'으로 불리는 악플방지법이 발의됐지만 20대 국회가 끝나면서 결국 폐기됐다. 만약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피부에 와닿는 악플 예방 효과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사실 표현의 자유와 악플의 근절을 병행하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단순히 사용자의 인식 개선만 바라고 기다리는 것은 너무 소극적이다. 따라서 악플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악플도 범죄'라는 이용자 각자의 인식 전환은 물론 플랫폼의 기술적 지원 및 악플러에 대한 법적 조치까지 동시에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드는 악성 댓글은 자살방조나 마찬가지"라며 "자유에는 그만큼 책임이 따르고, 이 문제에 대해서는 형법상 자살방조죄와 같은 수준으로 엄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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