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분기 국내 반도체 업계 실적발표에선 하반기 가격 변동성이 큰 화두였다. 상반기 코로나19 변동성에 고객사들이 반도체를 선제적으로 사둔 탓에 하반기 가격 하락이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컨퍼런스콜에서 모두 관련 질문들이 쏟아졌다.

이에 두 회사는 ‘탄력적 수급 관리를 하고 있다’는, 비교적 원론적 답변을 냈다. 특히 SK하이닉스는 하반기 반도체 가격이 저점을 찍을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그리고 8월 들어 서버향, PC향 D램의 거래량 부진으로 고정가격과 현물가격이 모두 연저점 수준으로 하락했다. 증권가 예상이 맞아떨어진 것으로, 이에 중국발 치킨게임이 벌어졌던 2018~2019년이 재현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더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0일 삼성전자가 평택 반도체 파운드리 P3를 오는 9월 착공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P3는 축구장 7개 크기의 세계 최대 규모 반도체 공장으로 오는 2023년에 첫 생산에 돌입할 것이란 전망이다. 반도체의 수급이 계속 불안정한데 삼성전자는 오히려 투자를 더 벌이는 것이다.

 

삼성전자 컨콜에서도 이와 관련한 질문이 나왔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하반기 메모리 업황이 상당히 불투명한데 연초 세웠던 계획은 그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 알고 싶다”라며 하반기 생산 계획이나 설비투자에 변동성이 있는지를 물었다. 코로나19로 인해 공장 신규건설이 불확실성에 휘말릴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맥락이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선제적으로 인프라 투자를 진행하고 설비투자는 시황에 따라 최대한 탄력적으로 진행하는 투자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인프라는 구축하되 설비투자는 탄력적으로 한다는 건 지난 1월 열린 2019년 결산 컨콜에서의 입장과 똑같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 시설 투자에 22조6000억원을 투입했는데 올해 상반기에는 벌써 14조7000억원을 집행했다. 비율로 따지면 지난해 대비 65% 수준이며, 수십조원에 달하는 자금이 들어가는 P3 공장이 본격적으로 착공하면 올해 투자액은 전년을 크게 뛰어넘을 전망이다.

코로나19라는 불확실성에도 인프라 투자를 조절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 삼성전자도 컨콜에서 “최근에 불확실성이 매우 커 당사가 선제적 인프라 투자를 말씀드리는 부분에 있어 의아함을 느끼는 분들이 있을 것”같다며 부연설명을 했다.

삼성전자 측은 “코로나19 사태가 디지털 전환의 새로운 변곡점이 될 수 있다”라며 “중장기적으로 견고한 성장세가 예상되는 클라우드 등 가격 탄력성이 높은 시장을 중심으로 하반기 고객수요에 적극 대응하고자 하며, 이런 관점에서 선제적 인프라 투자를 지속할 것”이라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코로나19라는 재난 상황을 ‘방아쇠’로 중장기적으로 기술적, 사회적 트랜드가 바뀐다고 보고, 이에 따라 반도체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시장을 전망한다. 실제로 이날 컨퍼런스콜에서 삼성전자는 코로나19가 확산하며 언택트 문화 확산을 바탕으로 하반기 모바일과 그래픽 수요가 더 늘어날 것이라 예상했다.

 

▲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반도체 생산라인(평택 1라인) 외경./사진= 삼성전자
▲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반도체 생산라인(평택 1라인) 외경./사진=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 체제에서 공장 증설은 필연적

수급 관점을 넘어 P3 공장의 특성에 대해서도 예상해볼 필요가 있다. P3 공장에 어떤 설비가 들어설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다만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2030년까지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는 ‘반도체 비전 2030’의 기치 하에 시스템반도체를 중심으로 운영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전 세계 반도체 시장 매출에서 시스템반도체 비중은 70%에 달한다. 5G와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자율주행차 등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접어들면서 시스템반도체 시장은 더 가파른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기본적으로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들어내는 메모리와는 다르게 시스템반도체는 고객사 수요에 맞게 다양한 형태와 콘텐츠를 담아야 한다. 시스템반도체를 주력으로 할 때 삼성전자의 생산 전략이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바뀔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에 반도체 업계는 시스템반도체 관점에서 파운드리 점유율을 올리려면 추가 라인 확보가 필수라 강조한다. 한 라인에서 이 제품 저 제품을 생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파운드리 공장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관점에서, 최근의 수급 불안에도 P3 공장의 투자는 삼성전자엔 필연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블로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