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차의 핵심이자 ‘제2의 반도체’로 불리는 배터리 시장을 둘러싸고 세계 각국의 주도권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일본, 중국과 함께 우리나라의 기술 도약이 두드러지는데, 국내에선 LG화학과 삼성SDI, SK이노베이션이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한·중·일 배터리 삼국지와 우리의 과제’ 보고서를 지난 14일 발간했다. 연구소는 향후 배터리 시장이 5개 미만 업체로 독과점화할 수 있는 만큼 국내 업체들이 지속적 투자를 통해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배터리 수출은 2014~2019년 사이 연평균 12.8%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에 지난해 국내 배터리 품목 수출은 46억8300만 달러(5조5600억원)에 달했고, 지난 상반기 기준 우리 기업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34.5%(10대 배터리 업체, 출하량 기준)로 경쟁국인 중국(32.9%)과 일본(26.4%)보다 앞섰다.

이 같은 성장세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커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누적 판매량은 700만대를 넘었는데, 이는 2014년 판매량 대비 10배 수준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오는 2025년까지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이 최대 1963만대까지 늘 것으로 내다본다.

전기차 생산비를 주도하는 리튬이온 배터리팩의 평균 단가가 낮아지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2010년 1킬로와트시 당 1000달러였던 배터리팩은 2019년 150달러 선까지 내려왔는데, 이에 2024년 배터리팩 가격은 킬로와트시 당 100달러로 이하로 내려갈 전망이다. 배터리 원가 하락은 생산 원가 절감을 위한 기술력 선점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업계의 혁신을 강요한다.

이에 주요 플레이어들의 투자도 공격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대차는 국내 배터리 3사와 공급계약을 논의하고 있고 완성차 업계에선 폭스바겐과 GM이, 배터리 업게에선 CATL과 파나소닉 등이 관련 투자를 크게 벌이고 있다.

몇몇 완성차 회사는 자체적으로 배터리를 생산하는 수직계열화를 준비 중이다. 테슬라가 대표적으로, 배터리 셀 제조업체 ‘멕스웰 테크놀로지스’와 배터리 제조업체 ‘하이바 시스템즈’를 인수해 리튬이온 배터리를 독자적으로 생산하는 ‘로드러너’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다.

BMW는 최근 독일 뮌헨에 ‘배터리 셀 경쟁력 센터’라는 R&D시설을 설치했고, 도요타는 일본 후지산 인근에 1조5000억엔(약 15조원)을 투자해 연구소를 만들고 자체 배터리를 개발 중이다.

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 글로벌 배터리 시장 선도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글로벌 배터리 시장을 일본-한국-중국이 주도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보고서는 “일본이 ‘퍼스트 무버’로 시장을 개척하면 한국이 ‘패스트 팔로워’로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중국이 규모의 경제를 앞세워 ‘매스 프로듀서’가 됐다”고 설명했다.

▲  2020년 상반기 배터리 시장 점유율. LG화학이 1위, 삼성SDI가 4위, SK이노베이션이 6위에 각각 올랐다./ 자료=국제무역통상연구원 리포트 갈무리, SNE Research.
▲ 2020년 상반기 배터리 시장 점유율. LG화학이 1위, 삼성SDI가 4위, SK이노베이션이 6위에 각각 올랐다./ 자료=국제무역통상연구원 리포트 갈무리, SNE Research.

국내 배터리 회사 중에선 LG화학이 가장 두드러진다. 지난해 상반기 글로벌 점유율에서 10.4%로 4위였던 LG화학은 올해 점유율을 14.2%포인트나 끌어올리며 중국 CATL과 일본 파나소닉을 제치고 올해 상반기 점유율 24.6%로 1위를 차지했다. 2008년부터 매년 수천억원을 연구개발비로 투자한 게 빛을 보고 있다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일반 파나소닉이 테슬라에, 중국 CATL이 중국 내수시장에 각각 치우친 반면 LG화학은 폭스바겐, 포드, 르노, 볼보, GM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 고루 납품하면서 안정적 수요를 확보했다”라며 “기술 유출 우려로 그간 협력을 꺼려온 중국 완성차 업체와도 합작 법인을 설립하는 등 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2위이자 글로벌 4위인 삼성SDI도 서서히 치고 올라오고 있다. 같은 기간 3.4%에 6.0%로 점유율을 2.6%포인트 끌어올렸다. “주요 타깃 시장을 중국과 유럽으로 설정하고 무리한 저가 수주 대신 안정적 수익을 내는 계약 위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게 연구원의 분석이다.

특히 삼성SDI는 2차 전지의 차세대 기술인 ‘전고체 전지’를 개발 중으로 2027년까지 상용화를 예고한 상태다. 전고체 배터리는 리튬이온에 비해 수명과 안정성이 크게 높아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로 평가받고 있다. 연구원은 “급격히 생산 시설을 늘리기 보단 차세대 배터리와 양극재 생산 등 기술력 확보에 주력할 것”이라 내다봤다.

SK이노베이션의 약진도 두드러진다. 지난해 1.8%의 점유율을 3.9%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는데, 국내 배터리 3사 중 후발주자임에도 지난 8년간 10조원 이상의 공격적 투자를 통해 기술력 확보에 주력해왔다. SK에노베이션은 중국 창저우와 헝가리, 미국 조지아 주에 공장을 세움으로써 배터리 생산 현지화도 추진 중이다.

연구소는 향후 국내 기업의 경쟁력 제고 방안으로 △기술 수준 향상 △시장 점유율 확대 △안정적 원자재 공급을 내세웠다. 이와 함께 정부의 역할로 △인프라 확충 등 관련 산업 육성 △혁신 선도 생태계 조성 등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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