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디스플레이가 중국 쑤저우 LCD(액정표시장치) 공장을 현지 디스플레이 제조사 CSOT에 팔았다. 2013년부터 가동한 쑤저우 LCD 공장은 삼성이 2010년대 글로벌 디스플레이 시장 리더로 발돋움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이자 최후의 보루였다. 이 공장을 매각했다는 건 삼성디스플레이가 20년여에 걸친 LCD 시대의 종언을 고했다는 것을 뜻한다.

▲  삼성디스플레이가 쑤저우 공장 잔여지분 60%을 중국 CSOT에 1조2000억원에 매각했다. 이로서 20여년에 걸친 삼성의 LCD 시대는 사실상 종언을 고하게 됐다./사진=삼성디스플레이
▲ 삼성디스플레이가 쑤저우 공장 잔여지분 60%을 중국 CSOT에 1조2000억원에 매각했다. 이로서 20여년에 걸친 삼성의 LCD 시대는 사실상 종언을 고하게 됐다./사진=삼성디스플레이

알려진 데로 삼성은 지난해 공식적으로 LCD 사업 포기를 선언했다. 중국의 가격 공세 앞에 LCD로는 더이상 승산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포스트 LCD 시장에서 LG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에 올인하는 쪽으로 승부수를 걸었는데, 삼성은 그와 다르게 ‘투트랙’ 전략을 취하고 있다. 한쪽은 ‘QD(퀀텀닷)디스플레이’고, 다른 한쪽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QNED(퀀텀닷나노LED)다. QD디스플레이가 차기 먹거리라면, QNED는 더 먼 미래를 바라보는 선제적 투자다.

삼성디스플레이의 QD 제작은 천안 아산캠퍼스에서 이뤄진다. 기존 LCD라인을 드러내고 2025년까지 무려 13조원의 돈을 투입하기로 했는데, 이는 당초 시장 예상(2025년)보다도 무려 5년이나 이른 시점이다. QD로의 전환과 더불어 삼성은 QD디스플레이로, 나아가 QNED로 디스플레이 초격차를 도모하고 있다.

▲  지난 7월 1일 삼성디스플레이 천안캠퍼스에서 열린 ‘QD 설비 반입식’에 이동훈(가운데) 사장을  비롯한 삼성디스플레이 경영진들과 협력사 관계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사진=삼성디스플레이
▲ 지난 7월 1일 삼성디스플레이 천안캠퍼스에서 열린 ‘QD 설비 반입식’에 이동훈(가운데) 사장을  비롯한 삼성디스플레이 경영진들과 협력사 관계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사진=삼성디스플레이

LCD, OLED, QLED, QD, 그리고 QNED

QNED는 ‘퀀텀닷’과 ‘나노 LED’를 합친 말이다. 이 기술을 이해하려면 다소 복잡한 디스플레이 용어들을 정리해야 한다.

‘두꺼운 네모 상자’(CRT)를 없앤 LCD부터 이야기해보자. LCD는 백라이트-액정-컬러필터를 통과하는 구조를 가진다. 아주 쉽게 말해 백라이트에서 나오는 빛이 액정을 통과해 밝기가 조절되고, 삼원색(RGB)으로 구성된 컬러필터를 거치며 색이 입혀지는 구조다.

2000년대를 풍미한 LCD는 2010년대 초 본격적인 점유율 경쟁에 돌입힌다. 특히 중국 정부 차원의 대규모 투자 속에 등장한 BOE, CSOT 등이 중저가 패널을 내놓으며 ‘치킨게임’이 벌어졌다. 국내 기업들이 가격 경쟁에서 속수무책으로 밀렸음은 물론이다.

이에 LCD의 단점을 메우는 프리미엄 디스플레이가 속속 등장했는데, 대표적인 게 바로 OLED다. 전기를 가하면 스스로 빛을 내는 유기물 소자에 형광 색소를 입혀 디스플레이로 만든 OLED는 색감이 뛰어나고 얇으며 소비전력이 낮다. 재료에 따라 휠 수 있다는 장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다만 OLED 시장을 선점한 쪽은 LG였고, 수율 문제로 OLED 시장에 늦게 진입한 삼성은 머지않아 OLED를 접고 퀀텀닷으로 눈을 돌렸다. 삼성과 LG가 서로 디스플레이 기술을 놓고 말싸움을 벌이기 시작한 게 바로 이 시점부터다.

▲  QNED는 OLED의 장점과 OLED를 쓰지 않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장점을 모두 취할 수 있다./사진=KTB투자증권
▲ QNED는 OLED의 장점과 OLED를 쓰지 않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장점을 모두 취할 수 있다./사진=KTB투자증권

‘양자점’을 뜻하는 퀀텀닷은 머리카락보다도 얇은 나노미터 단위 반도체 입자를 말한다. QD는 양자 물질의 입자 크기가 작아지면서 색을 갖는 에너지를 내뿜는 물리 현상을 이용한 기술이다. 삼성은 2015년부터 퀀텀닷을 ‘적용한’ QLED TV를 만들어 ‘대박’을 쳤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판 QLED TV만 530만 대에 달할 정도다.

여기서 당황스러운 지점이 나온다. 앞서 언급했듯 퀀텀닷은 자체발광에 기초한 기술인데, QLED는 뒤에 백라이트가 붙는 것이다. 액정과 백라이트 사이에 ‘퀀텀닷 필터’를 붙여 색 재현율을 끌어올렸다는 것인데, 이에 일각에선 ‘QLED는 진정한 QD가 아니다’라는 말이 나왔다.

또 한가지 주목할 부분은 삼성이 지난해 선보인 QD디스플레이가 사실상 OLED와 같은 범주란 점이다. LG디스플레이의 OELD는 화이트 OLED를 발광원으로 RGB 필터를 통과해 색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QD디스플레이는 블루 OLED 위에 퀀텀닷 컬러 필터를 얹었다. 서로 발광원의 색만 다를 뿐 OLED를 쓰는 건 매한가지인 셈이다.

그간 LG와 대립각을 세워온 삼성은 QD디스플레이를 선보이면서 애써 OLED를 지운 것으로 보인다. 이에 증권가에선 QD디스플레이를 ‘QD-OLED’라고 부르고 있고, 윤부근 삼성전자 전 부회장에게 기자들이 ‘OLED를 왜 작명에서 뺐느냐’고 묻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QNED, 만들어지면 中과 기술격차 “최소 5년”

용어가 어찌 됐든 QLED를 이을 삼성의 차기작은 QD디스플레이다. 다만 QD디스플레이는 자발광 퀀텀닷을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QD의 장점을 온전히 취하지 못했고, OLED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OLED의 고질적 문제인 짧은 수명과 번인 문제도 상존한다.

▲  삼성디스플레이 천안 아산캠퍼스는 삼성의 차세대 디스플레이 생산 전초기지다./사진=삼성디스플레이
▲ 삼성디스플레이 천안 아산캠퍼스는 삼성의 차세대 디스플레이 생산 전초기지다./사진=삼성디스플레이

이에 삼성이 개발 중인 기술이 바로 맨 처음 언급한 QNED다. 퀀텀닷 필터를 쓰면서 발광원을 블루 OLED에서 ‘블루 나노로드(Nanorods) LED’로 바꾸는 게 핵심이다. 진공 상태에서 색을 증기로 붙여야 하는 OLED와 달리 LED는 잉크젯 프린터로 찍어낼 수 있어 공정 비용이 훨씬 저렴하며, 또한 OLED의 번인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혹여 QD디스플레이가 늦어질 경우 아예 빠르게 QNED로 도약할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다. QD디스플레이 생산 방식과 큰 차이가 없어 라인을 거의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기술적으로 준비만 된다면 QD디스플레이보다 QNED가 성능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  2019년 8월 26일 이재용 부회장이 충남 아산 삼성디스플레이 사업장에서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사진=삼성전자
▲ 2019년 8월 26일 이재용 부회장이 충남 아산 삼성디스플레이 사업장에서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사진=삼성전자

QNED는 중국 중저가 업체들과의 경쟁에서도 중요하다. OLED의 기술적 난도가 높다고 하지만 이미 중국에서 OLED TV를 파는 곳들이 속속 나오는 상황이다. 지난해 82%였던 우리나라의 글로벌 OLED 마켓쉐어(생산능력 기준)는 2025년 50%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이에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벌리면서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기술로 QNED가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디스플레이 시장 분석업체 유비리서치의 이충훈 대표는 “업계 투자 패턴으로 봤을 때 삼성디스플레이는 이르면 2021년 2분기 QNED 투자에 나설 것으로 보이며, 이미 기술적으로도 상당 수준까지 올라와 있다"며 "QNED가 개발되면 중국에서 이를 따라오는 데 최소 5년은 걸리며, 10년까지도 벌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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