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안보와 경제적 위기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 기술 굴기의 대표 기업 화웨이가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15일(현지시간)부터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반도체 제재가 시작되면 그야말로 치명적입니다.

미국 상무부는 이날부터 미국의 소프트웨어나 장비를 사용해 생산하는 반도체를 사전 승인 없이 화웨에 공급하지 못하게 합니다. 사실상 미국의 기술이 들어가지 않은 반도체는 없다고 하니, 화웨이는 앞으로 반도체를 구할 수 없게 됩니다. 그들의 통신장비나 스마트폰 등 주요 제품 생산이 막히는 겁니다.

업계에서는 화웨이가 미국의 제재를 대비해 6~8개월 어치의 반도체 재고와 2년 어치의 핵심 반도체 부품을 확보해 놨다고 합니다. 내년 상반기까지는 그럭저럭 버틸 수 있다지만, 공급 자체가 불안해지는 상황에서 화웨이 통신장비를 구매해 사용할 고객들은 떨어져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화웨이로서는 참으로 난감한 일입니다. 전세계적으로 5G 인프라 구축이 시작되고 있는 상황에서 화웨이의 통신장비 점유율은 급락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스마트폰 시장 역시 점유율 하락이 예상됩니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는 화웨이의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이 올해 15.1%에서 내년 4.3%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화웨이 제재는 전세계 기술 패권을 두고 암투를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기싸움에서 기인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미국이 내세우는 표면상 이유는 보안 문제지만, 그 근거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죠. 오히려 화웨이는 다양한 공신력 있는 기관을 통해 보안인증을 받고 있습니다.

위기가 기회로...한국 소부장 자립 이끌어 낸 일본 수출규제

이러한 사태를 보고 있자니, 지난해 7월 벌어졌던 한국과 일본 간의 수출규제 갈등이 겹쳐서 떠오릅니다. 일본 정부가 보안 문제를 운운하며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 소재·부품·장비(소부장)의 한국 수출을 제재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보안 이슈를 핑계로 삼았지만, 사실상 정치적 논리에 따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한 것입니다.

삼성과 LG, SK 등 우리나라 반도체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반도체 공정에 꼭 필요한 불화수소와 포토레지스트, 플로오린 폴리이미드 등 일본 기업의 의존성이 거의 절대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몇몇 기업에 국한된 제재 였지만, 우리나라에서 해당 기업이 차지하는 영향력이 워낙 크기 때문에 국가적인 경제 공황 사태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가 컸습니다.

1년여가 지난 지금 일본과의 대치 상황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들 품목에 대해 공급처 다양화와 국산화를 빠르게 추진했습니다. 일본의 전략물자 수출규제는 오히려 국내 소부장 국산화를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됐습니다. 일본에 대한 수출 의존도도 소폭이지만 줄어들었습니다. 호불호를 떠나 'NO 재팬' 운동 같은 국민적 단합의 계기도 마련됐습니다. 위기를 기회를 만든 성공사례였다고 봐도 좋습니다.

미중 경제 전쟁에 중국 반도체 자급률 향상 앞당겨 질까

화웨이 역시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을까요? 아니 중국 역시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을까요?

여기서부터는 한일 수출규제와는 사뭇 다른 결이 존재합니다. 미국의 기술이 들어가지 않은 중국산 반도체도 존재합니다만, 현존하는 첨단 반도체 기술력을 따라가려면 수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반도체는 이미 고도의 글로벌화와 분업화가 진척된 국제화 사업이기 때문에 한일 수출규제 사태와는 격차가 존재합니다.

미중 갈등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중국에 반도체를 수출하는 국내 기업과 일본/대만 등 반도체 부품 업체 역시 타격이 예상됩니다. '큰 고객' 화웨이와의 거래와 수출이 막히게 된 상태기 때문입니다. 이들 기업들은 미국 상무부에 승인을 요청했지만, 승인 가능성이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미국 기술 이외의 기술력을 활용하거나 중국 반도체의 자급률을 끌어올리기에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결국 미국의 제재가 완화되지 않는 이상 화웨이 단일 기업의 추락을 막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더구나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 더 많은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를 시사하기도 했죠.

앞서 언급했듯이, 미중 갈등은 기술 패권 다툼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표면상 내세우는 보안 문제는 이제 듣기조차 거북할 정도입니다. 한일 수출규제에서도 느꼈던 바입니다. 미국은 화웨이 제재를 발판 삼아 '5G 인프라 구축'이라는 미래 핵심 인프라 주도권을 뺏어오려는 심산입니다.

중국도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중국 정부는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아마 미국의 제재로 인해 좀더 앞당겨 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국 반도체 기업에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반도체 기술을 확보해야 미중 경제 전쟁에서 무릎 꿇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죠.

또한 압도적 규모의 경제를 자랑하는 중국 내수 위주의 자립경제를 강화하고 나섰습니다. 향후 중국의 외교적 강경책의 향방에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글로벌 경제 패권을 다투는 미중 양국 탓에 새우등이 터지는 국가들이 존재합니다. 우리나라 역시 그 중 한 국가입니다. 특히나 지정학적 위치상 더 큰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과거 미국의 사드( THAAD) 배치 때 처럼, 미중 사이에 끼어서 '누구편을 들래?'와 같은 선택의 기로에 설 수도 있습니다.

상투적인 결론이지만, 우리나라는 하루빨리 경제적 자립을 가능케 하는 기술력 확보와 외교력 강화가 필요합니다. 삼성전자의 5G 장비가 화웨이 제재 덕에 반사이익을 얻었다는 식의 보도 보다는, 한국 기업에 미국 중국과 같은 거대 시장의 러브콜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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