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가 곧 금(Gold)인 시대다. 나라와 분야를 막론하고 모든 기업이 데이터 기반 산업 혁신의 중요성을 외친다. 정부도 올해 ‘데이터3법’ 시행, ‘데이터 댐’ 구축 발표를 통해 국가 경쟁력 재고를 위한 지원사격에 나서고 있다.

데이터 산업의 특징은 ‘무경계’다. 데이터는 어디에나 있기 때문이다. 여타 기술들처럼 특정 영역에 한정될 필요가 없다.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A 산업과 B라는 산업의 데이터가 만나면 새로운 부가산업 C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융복합’이란 키워드 최상단에 데이터가 있다는 이야기다.

▲  김명진 이노그리드 대표
▲ 김명진 이노그리드 대표

협회 대신 협동조합을 선택한 이유

‘K-DA’(한국 데이터 허브 얼라이언스)는 광범위한 국내 데이터 융복합 생태계의 밑그림을 그리기 위해 결성된 단체다. 민간에서 주도하지만 그 흔한 ‘협회’가 아니다. 대신 이들은 올해 연말까지 이미 참여 의사를 밝힌 50개 이상의 데이터 기업을 한데 모은 ‘협동조합’을 출범시킬 계획이다. K-DA 간사 기업인 이노그리드의 김명진 대표는 '협회가 아닌 협동조합'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기존 협·단체들은 기업보다는 공공적 성격이 강합니다. 반면, K-DA 데이터협동조합(가칭)은 순수 민간기업들이 모인 단체인 만큼 빠른 의사 결정과, 기술 리딩을 기반으로 실제적인 사업 협력 및 공동이익 실현을 목표로 합니다. 또 협동조합은 구성원 모두가 수평적 관계이므로 보다 자유로운 활동 참여가 가능한 것도 장점이고요.”

‘처음에는 이런 시도가 통할까?’라는 생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데이터와 기술력은 갖췄지만 이를 새로운 영역의 사업으로 확장하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기업들이 예상보다 적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들이 K-DA에서 본 기회는 민간이 주도하는 기업 중심의 얼라이언스, 그리고 비즈니스 드라이브다. 협동조합은 사실상 하나의 사업체다. 수직적인 구조의 협회보다 공동사업을 영위하는 기업들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 역할에 더 적합하다. ‘이익 실현’이라는 기업 최대의 목표와도 일치한다. 김명진 대표 역시 “K-DA의 목표는 데이터 기반 생태계에서 참여 기업 모두가 이익을 실현하는 것”이란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이를 위해 K-DA에서 창출된 이익 일부은 회원사들에 재투자될 계획이다. 궁극적으로는 다양한 산업군의 회원사들이 지닌 각각의 특징과 장점, 데이터를 십분 활용해 대규모 사업 과제를 수행하고, 내부 기업 간에도 적극적인 기술교류 및 비즈니스의 장을 만드는 것이 K-DA가 그리는 기업 중심 데이터 산업 얼라이언스의 이상향이다.

K-DA 기업들이 공동 참여하는 대규모 사업 계획

조합 출범 전이지만 앞서 거둔 성과도 적지 않다. 4~5개 기업 컨소시엄으로 작년부터 올해까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해양수산부 R&D 사업 등 21건의 크고 작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융복합 사업을 진행했다. 이런 성과가 알려지며 최근에는 관망세에 있던 대기업들도 속속 K-DA의 문을 두드리는 추세다.

김 대표는 “지금은 분야별로 우수한 K-DA 내 업체 간 컨소시엄을 통해 소규모 활동을 하고 있지만 정식으로 조합이 설립된 뒤에는 보다 큰 대형 사업들을 만들어나갈 것”이라며 “내년에는 최소 10개 이상의 K-DA 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과제를 2~3건 이상 수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K-DA의 ‘테크스택’ / 자료=이노그리드
▲ K-DA의 ‘테크스택’ / 자료=이노그리드

‘끼리끼리’의 한계…투명성 확보로 해결하겠다

이렇게 보면 기존 협회나 정부기관들과 비교해 능동적이고 장점도 많아 보인다. ‘이상적’이란 말이 딱 알맞다. 그럼 왜 지금까지 K-DA 같은 협의체를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걸까? 한마디로 어렵기 때문이다. 영리를 추구하는 수십 개 이상의 기업이 모두 평등하게 활동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이익 확보 다툼이나 의사결정 등의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김명진 대표도 “합리적인 예상 선에서 제기할 수 있는 질문”이라며 “사실 지금도 내부에 일부 ‘끼리끼리’를 형성하는 기업들이 있어 문제로 보고 있다”고 솔직히 답했다. 몇몇 기업들이 비밀리에 따로 행동하거나 사업을 숨기는 등의 부작용이 있다는 얘기다.

김 대표는 “관련 문제를 인지하고 있는 만큼 조합 출범까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로 투명성 확보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체계를 갖추기 전이지만 K-DA 결성 후에는 내부로 들어오는 모든 사업을 공개하고, 어느 기업이 참여하고 협조할 것인지에 대한 열린 협의 구조를 만든다는 방침이다.

▲  지난 8월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K-DA 4차 기업 협정식 및 기술 공유 세미나
▲ 지난 8월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K-DA 4차 기업 협정식 및 기술 공유 세미나

유대감은 높이고, 동상이몽은 배척하고

추후 K-DA는 하나의 엔터프라이즈 기업이 되는 그림도 구상하고 있다. 이를 위해 단순한 비즈니스 파트너를 넘어 회원사들 사이에 인간적인 유대감을 형성하는 일에도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지금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중단됐지만, 원래는 두 달에 한 번 내부 기술공유 행사나 체육대회 등을 진행했다고 한다. 김명진 대표가 바라는 것도 그런 과정 속에서 회원사들이 서로를 더 깊게 이해하는 것이다.

그는 “작지만 이런 교류가 회원사들이 서로의 기술과 입장에 대해 더 깊게 이해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며 “이를 통해 하나의 큰 사업 흐름을 공유하게 되는 신뢰 관계도 형성된다”고 말했다. 나아가 “명확한 원가산정을 통한 이익 배분으로 하나의 사업체 구조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K-DA 참여사들은 전반적인 사업 형태에 대해 대부분 만족스럽다는 반응이다. 또 데이터3법과 디지털 뉴딜 정책 등과 맞물려 K-DA의 성장에도 탄력이 붙을 것이란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상황이다. 다만 어디든 동상이몽(同床異夢)은 없지 않다. K-DA를 활용하고 좋은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제안하는 참여사가 있는가 하면, 어떤 기업들은 관망하며 정보만 얻기도 한다.

김명진 대표는 “일부 기업에 대해선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공동사업체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이유겠지만, K-DA 전체 분위기를 흐리는 기업들은 체제 정비 과정에서 모두 제외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아울러 “모든 산업의 밑단이 되는 클라우드 사업자로서, 저희는 K-DA를 묵묵히 이끌기 위해 노력하는 밑동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역할은 세심한 관리 감독과 ‘데이터 트리거링’

한편, 정부의 데이터 육성 전략을 향한 정책 제언도 있었다. 김명진 대표는 크게 두 가지를 강조했다. 하나는 높은 이해도가 바탕이 된 데이터 공급이다. 그는 “데이터를 무조건 모아 놓는 사업 방식은 비효율적”이라며 “무엇을 만들지 먼저 서비스를 결정한 뒤, 합당한 데이터를 찾아 공급하는 데이터 트리거링(Data triggering)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현재 많은 데이터 관련 정부 예산이 집행되고 있는데, 중간자적 입장에서 실효성 있는 관리 체계와 평가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소위 ‘돈만 받아 챙기는’ 기업들을 솎아내고 예산을 보다 효율적으로 집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어 “국민이 데이터 주권 사업의 실제를 체감할 수 있는 2차 산업 육성에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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