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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미 감독은 언제나 파격적인 캐릭터 설정으로 주목받았다. 영화 '미쓰 홍당무'의 '양미숙(공효진 분)'은 사랑을 위해 처참하게 망가졌고, '비밀은 없다'에서는 '김연홍(손예진 분)'과 '김민진(신지훈 분)'을 통해 신뢰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페르소나'의 두 번째 이야기 '러브 세트'에서는 아빠의 애인에게 질투심을 느끼는 사춘기 소녀 '지은(이지은 분)'을 통해 반항적인 아이유의 이미지를 이끌어냈다.

▲  /사진=넷플릭스
▲ /사진=넷플릭스

지난 25일 이 감독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을 통해 다시 한번 자신만의 색다른 캐릭터를 공개했다. 타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젤리'를 제거하며 학교의 평화를 지키는 보건교사라니.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 듯한 무지개 색 요술봉과 플라스틱 비비탄 총이 전부인 안은영은 또 어떤 캐릭터로 그려질지 사뭇 궁금했다.

전지적 안은영 시점

히어로 장르의 콘텐츠는 대개 '특별한 능력을 지닌 주인공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고 세상을 지켜내는' 서사로 구성된다. 보건교사 안은영도 큰 틀에서 보면 히어로 장르 클리셰(진부한 표현)를 답습하지만, 캐릭터와 세부적인 에피소드 면에서는 꽤 엉뚱한 구석이 있다.

주인공 안은영은 어릴 때부터 남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젤리를 본다. 젤리는 귀여운 문어의 모습이었다가 어느날은 끔찍한 몰골로 은영 앞에 다가선다. 성인이 된 은영에게 필요한 것은 선한 기운과 젤리를 무찌를 수 있는 무지개 요술봉이다. 눈 깜짝하지 않고 젤리를 베어내는 은영이 정작 무서워하는 것은 '존재의 소멸'이다.

처음 보건교사 안은영이 소개될 때만 해도 '명랑 판타지'라는 소개 문구에 상큼 발랄한 분위기를 기대했다. 귀신이나 인간의 욕망으로 대변되는 젤리를 무찌르며 긍정의 힘으로 악의 근원에 맞서는 안은영을 상상했지만 6화까지 정주행한 결과 서사의 본질은 존재에 있음을 느꼈다.

▲  /사진=넷플릭스
▲ /사진=넷플릭스

전지적 안은영 시점으로 볼 때 젤리는 커다란 맥거핀(영화에서 중요한 것처럼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줄거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극적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은영은 자신의 눈앞에서 소중한 존재가 젤리가 되고, 그마저도 소멸되는 아픈 경험을 두 번이나 겪는다. 사랑하는 엄마가 젤리처럼 녹아내리는가 하면 성장기 정체성에 큰 변화를 준 소중한 친구가 가루처럼 산산이 부서지는 장면을 목도한다.

특별한 능력 때문에 외롭고 어둡게 살아왔던 은영에게 한 줄기 빛처럼 다가온 존재들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젤리가 돼 자신의 곁을 떠나는 장면은 히어로의 사명감과 책임감마저 잊게 만드는 결정적 요소가 된다. 은영은 자신을 일깨워준 친구 강선이 죽은 영혼의 모습으로 찾아왔다가 소멸된 후 더 이상 젤리를 보지 못하고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간다. 존재의 상실을 겪은 은영은 봉숭아물이 든 손톱을 고민없이 깎아내린다.

그랬던 은영이 압지석이 치워진 자리를 몸으로 막은 후 다시 젤리를 볼 수 있게 된 것은 순전히 '홍인표(남주혁 분)'에 대한 미안함과 책임으로 볼 수 있다. 은영의 뇌리 속에는 인표의 경고를 무시한 채 지하실에 무단 침입했다가 압지석을 건드려 두꺼비 괴물을 깨운 경험이 있다. 선한 기운을 충전해 주며 위기 때마다 도움을 주는 인표의 존재가 압지석에 대한 미안함을 매개로 은영에게 깊이 새겨진 때가 아닐까.

주변 인물을 들여다보니

여기까지는 안은영의 서사만을 분석해 본 시선이다. 뿌려진 떡밥 대비 회수된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아 6화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체 시즌2에서 어떻게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이렇게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인지.

극을 관통하는 주제 역시 '권선징악'이나 '주인공의 성장'과는 거리가 멀다. 매번 발생하는 사건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극에 개연성을 매끄럽게 이어가는 구조도 아니다. '안은영 비긴즈'라고 불릴 만한 단서도, '화수(문소리 분)'의 정체와 목적, 사학재단과 사이비종교의 연관성도 안갯속에 가려졌다. 전체적인 스토리를 통해 극을 분석하고 이해하기에는 난해하면서도 엉뚱하다.

대신 주변 인물들의 성격을 보면 나름의 독특한 설정이 눈에 띈다. 1화부터 농구부 주장의 사랑을 독차지 한 '성아라(박혜은 분)'는 대표적인 선역으로 평가할 만한 캐릭터다.

▲  승권이 빨려 들어가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는 아라. /사진=보건교사 안은영 방송 화면 갈무리
▲ 승권이 빨려 들어가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는 아라. /사진=보건교사 안은영 방송 화면 갈무리

아라는 학생들이 좀비처럼 철조망에 매달릴 때나 방석을 뺏긴 영혼에 의해 빙의될 때까지 제정신으로 버틸 만큼 '외유내강'의 모습을 보였다. 은영과 인표가 젤리를 없애기 위해 대책을 세울 때 언제나 그들을 돕는 보조자로 등장하는가 하면 남자친구인 '오승권'을 지켜줄 만큼 강한 모습을 보인다. 물론 압지석이 크게 흔들린 후 쓰나미 같은 젤리 파도가 휘몰아칠 때는 함께 빙의돼 주먹을 휘두르기도 했다. 이는 젤리 파도를 이겨낸 인표만큼의 강하고 선한 기운은 아니지만 그에 버금가는 긍정적 영향력이 있음을 뜻한다. 주변 인물인 만큼 세계관 최강자 타이틀은 획득하지 못했다.

또 주목할 캐릭터가 있다면 '메켄지(유태오 분)'다. 원어민 영어 교사인 메켄지는 은영과 인표 앞에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며 대립각을 세우는 인물이다. 메켄지는 악의 축이자 사이비 종교 집단 '안전한 행복(HSP)'의 연결고리로 표면화 되지만 끝내 속을 알 수 없는 캐릭터로 설정됐다. 갈등 요소를 부각시키기 위한 기폭제로 활용되는데 이지형을 괴롭힌 이들에게 복수를 선물하는 야누스적 매력을 선보이기도 한다. HSP 관련 인물이기에 시즌2가 진행된다면 중심 인물로 그려질 가능성이 높다.

줄거리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넷플릭스 오리지널 보건교사 안은영은 이대로 모든 스토리를 마무리 하는 것일까. 막바지 가정 방문을 통해 새로운 사건을 예고한 보건교사 안은영의 시즌2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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