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위선양은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이라 생각한다. 최근 설문조사를 보면 대중문화예술인들을 병역특례에 포함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본다…e스포츠는 미국에서 농구나 야구보다 시청률이 높으니 이들(e스포츠 선수들)에 대한 입영 연기도 함께 고려하겠다." -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는 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질의한 내용에 박 장관이 답변한 내용이다. 대중문화예술계 종사자와 e스포츠 선수 등의 국위선양 및 국가 기여도에 따라 병역 의무를 유예하자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가수 '방탄소년단(BTS)'과 e스포츠 선수인 '페이커(본명 이상혁)'가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개정안이 실제로 통과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대중문화예술 및 e스포츠 종사자에 대한 특례를 부여할 대회 및 수상 이력 기준이 명확치 않은 데다, 또 다른 특혜로 비춰질 여지가 있다. 이미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이 느낄 상대적 박탈감 등 국민 정서 또한 중요하게 고려할 요소다.

특례 기준, 어떻게 정하나

실제로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3일 대중문화예술 분야 우수자의 경우 만 30세까지 입영을 연기할 수 있는 병역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대중문화예술 분야 우수자로 문체부 장관이 대내외적 국가 위상과 품격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인정해 추천한 사람에 대하여 기존 대학생과 같은 수준으로 징집 및 소집 연기가 가능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통과될 경우 문체부 장관의 추천을 받은 우수자는 병무청장과 협의를 통해 만 30세까지 입영을 연기할 수 있게 된다.

▲  /사진=방탄소년단 페이스북 갈무리
▲ /사진=방탄소년단 페이스북 갈무리

그러나 '국위선양'과 '장관의 추천을 받은 우수자'를 어디까지 인정해야 할지는 아직까지 불분명하다. 현행 병역법 제60조 제2항에 따르면 병역판정검사 및 재검을 받은 대상자 중 대학·대학원생, 연수기관 연수생, 국위선양을 위한 체육 분야 우수자 등에게만 입영 연기를 허가하고 있다. 이어 병역법 제60조 제5항에서는 "제2항에 따른 학교·연수기관 및 체육 분야 우수자의 범위와 연기의 제한 등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명시했다.

관련 대통령령을 보면 국위선양에 따른 체육 우수자의 입영 연기 기준을 찾아볼 수 있다. 병역법 시행령(대통령령 제31058호) 제124조의3에 명시된 체육 분야 우수자에 대한 기준은 △경기 단체에 선수로 등록된 사람으로서 대한체육회장이 추천한 국가대표 선수 △국민체육진흥법 시행령 제2조 제2호에 따른 우수 선수 중 국내 전국대회에서 한국 신기록을 수립한 선수 △국위선양에 현저한 공이 있는 선수로서 문체부 장관이 추천한 사람 등이다.

해당 법적 근거를 통해 국제 대회에서 입상하거나 한국 신기록을 세운 선수들이 병역특례를 받은 사례도 있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룬 축구 국가대표팀,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에 오른 야구 국가대표팀이 각각 군 면제를 받았다. 예술계에서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2009년 하마마쓰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해 2013년부터 예술요원으로 복무한 바 있다.

물론 이번 개정안의 경우 군 면제나 사회복무요원 같은 특례를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병역법에 명시한 국위선양을 위한 체육 분야 우수자에 대중문화예술 분야를 포함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여전히 형평성 여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견이 팽배한 상황이다.

박 장관 역시 이를 우려한 듯 입영 연기 기준을 확대하는 것에는 동의하면서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그는 국감에서 "입영연기는 좁은 의미의 병역특례"라며 "국방부와 병무청 등 관계 기관과 국민 정서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빌보드·롤드컵이 기준 될까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대중문화예술 분야는 단적으로 '빌보드 차트'가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방탄소년단은 싱글 '다이너마이트' 발매 첫 주인 지난 8월 31일 빌보드 싱글 핫 100차트 1위를 기록한 후 6주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 가수로는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같은 차트에서 2위를 기록했지만 정상을 차지한 것은 방탄소년단이 최초다. 미국 빌보드 메인 차트에서 한국 가수가 1위를 차지한 것은 신기록이자 국위선양으로 볼 수 있다.

관건은 BTS가 세운 기록 이후의 일인데 빌보드 차트의 종류, 순위, 기간 등이 고려돼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방탄소년단이 빌보드라는 공신력 높은 차트에서 최고 기록을 세운 만큼 다른 가수들의 입영 연기 기준도 까다로워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e스포츠는 대중문화예술 분야보다 접근이 어렵다. 현재 명성이 높은 국제 대회는 '리그 오브 레전드(LoL)'을 활용한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이 유일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국제e스포츠연맹이 주최하는 'e스포츠 월드 챔피언십' 등의 대회가 있지만 참가국 규모 및 공신력 면에서 영향력이 미미한 것으로 평가된다. 롤드컵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개발사 라이엇 게임즈가 주최한다는 점에서 공신력을 담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  '페이커' 이상혁 선수. /사진=T1 페이스북 갈무리
▲ '페이커' 이상혁 선수. /사진=T1 페이스북 갈무리

변수가 있다면 올림픽 등 스포츠 범주에 e스포츠가 포함되는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뉴주에 따르면 글로벌 e스포츠 산업은 2013년부터 5년간 약 28.0%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뉴주는 올해 10억9600만달러 수준의 e스포츠 시장 규모가 오는 2022년 17억9000만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몇 년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F1, 미국 프로풋볼(NFL) 구단들이 e스포츠 구단에 투자하거나 자체적으로 팀을 만드는 등 관련 산업은 고속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이런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2018년 열린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6개 게임이 e스포츠 시범 종목으로 채택된 데 이어 IOC도 관련 논의를 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림픽 등 국제 대회의 정식 종목으로 편입될 경우 입상 성적이 입영 연기 등을 판단할 주요 기준이 될 수 있다. 다만 해당 계획이 실행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며, 기존 e스포츠 선수에 대한 형평성을 따져야 한다. 병역 혜택이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는가 역시 따져볼 부분이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e스포츠 선수들은 10대 중후반에 프로에 입문해 20대 초반에 전성기를 맞는다"며 "사실상 병역법이 개정되더라도 20대 후반까지 입영을 미루는 것이 큰 실효성을 발휘할 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블로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