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여파로 개봉이 연기된 영화들이 '넷플릭스'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무리한 개봉 진행보다는 전 세계 190개국에 작품을 알릴 수 있는 넷플릭스가 대안으로 떠오른 모습이다. 특히 수백억원 가량의 대규모 자금이 투입된 영화의 경우 손익분기점을 고려할 때 '극장 개봉보다 넷플릭스 같은 인터넷동영상서비스(OTT)가 낫다'는 판단이다.

넷플릭스 독점 공개작 넘칠까

지난 3월 개봉할 예정이던 이충현 감독의 영화 '콜'은 다음 달 27일 넷플릭스를 통해 단독 공개된다. 배급사인 뉴(NEW)는 "콜의 경우 기존 계약 관계를 마무리하고 넷플릭스 공개를 확정했다"고 밝혔다.

뉴 관계자는 <블로터>에 "작품을 기다리시는 관객들에게 보여드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고민한 끝에 넷플릭스에 공개하는 방안을 택했다"며 "해외 세일즈의 경우 계약이 다 이뤄지지 않아 원만하게 정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영화 콜에 이어 많은 작품들이 넷플릭스 입점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봉 일정을 연기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상영관을 잡았다가 또다시 지연되는 상황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어려운 현 상황을 피해가기 위해 넷플릭스와 손잡는 방안을 택하는 것.

▲  영화 승리호. /사진=메리크리스마스, 네이버 영화
▲ 영화 승리호. /사진=메리크리스마스, 네이버 영화

240억원을 들여 제작한 영화 '승리호'도 넷플릭스 공개로 선회한 경우다. 영화 승리호는 우주 쓰레기 청소선인 '승리호'의 선원들이 살상 무기로 알려진 로봇 '도로시'를 발견하고 위험한 거래에 휘말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송중기, 김태리, 유해진, 진선규 등이 출연해 기대를 모았지만 수차례 개봉 시기를 연기했고 올겨울 시즌에 공개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앞서 승리호는 개봉 지연 끝에 지난달 23일로 개봉일을 조정했지만 코로나19 확산 우려에 따라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다.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을 진행할 경우 상영일을 앞당길 수 있다는 점에서 유력한 차기 입점작으로 조명되고 있다.

'신세계'의 박훈정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엄태구, 전여빈, 차승원 등이 출연한 영화 '낙원의 밤'도 넷플릭스 공개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낙원의 밤은 제77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비경쟁 부문 초청작으로 선정돼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배급사인 뉴 측은 "낙원의 밤은 현재 다양한 방안을 논의 중"이라며 말을 아꼈지만 영화계 안팎에서는 넷플릭스 공개가 유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밖에도 배우 차인표가 출연하는 영화 '차인표' 역시 넷플릭스 공개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배급을 맡은 기업들은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영화계에서는 계약 관계에 대한 비밀 유지 조항 등에 따라 공개일 등에 대한 정보를 함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극장 개봉 후 넷플릭스에 입점한 영화 '살아있다'가 해외 각국에서 호평을 받은 사례가 더해지면서 지난 3월부터 개봉일을 연기해 온 영화들이 대거 넷플릭스에 합류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사냥의 시간'과 다른 '콜'

넷플릭스를 통해 영화를 공개할 경우 다양한 변수가 존재한다. 특히 극장 개봉을 기획했다가 넷플릭스로 선회하는 경우 기존에 체결한 계약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지난 4월 개봉한 영화 '사냥의 시간'은 해외 선판매 계약을 진행한 사례로, 법정 공방까지 이어졌다.

윤성현 감독의 '사냥의 시간'은 올 들어 한국영화가 넷플릭스로 배급처를 선회한 첫 번째 사례다. 지난 2월 26일 국내 극장에서 개봉할 예정이었던 사냥의 시간은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상영 일정을 연기했다.

당초 4월 10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개국에 공개될 예정이었으나 해외 배급 대행사인 콘텐츠판다가 '이중계약'임을 주장, 투자·배급사 리틀빅픽처스를 상대로 사냥의 시간 해외 판매금지 및 상영 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면서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다.

▲  극장 개봉 대신 넷플릭스 공개를 선택한 영화들. 사냥의 시간(왼쪽)과 콜. /사진=리틀빅픽처스, NEW, 넷플릭스
▲ 극장 개봉 대신 넷플릭스 공개를 선택한 영화들. 사냥의 시간(왼쪽)과 콜. /사진=리틀빅픽처스, NEW, 넷플릭스

당시 리틀빅픽처스는 "천재지변 등의 사유로 계약을 해지한다"고 주장했지만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콘텐츠판다의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결국 리틀빅픽처스는 콘텐츠판다와 합의를 진행했고 양측이 만족할 만한 결과를 도출한 끝에 넷플릭스 상영이 재개됐다.

사냥의 시간의 사례처럼 이미 해외 선판매 등의 계약이 체결됐을 경우 이를 해지하고 넷플릭스 개봉을 시도하기는 쉽지 않다. 다음 달 17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는 영화 '콜'은 사냥의 시간과는 다른 사례로 분류된다.

콘텐츠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과 맞물려 OTT 서비스 수요가 폭증함에 따라 배급사들 역시 넷플릭스로 눈을 돌리고 있다"며 "최근 디즈니도 극장 개봉 대신 디즈니 플러스에 독점 공개하는 작품을 늘려가는 등 OTT 플랫폼에 집중 투자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OTT 개봉 굳어지나, 침울한 극장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는 작품이 늘어날수록 극장 수익은 줄어들 전망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날 기준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KOBIS)이 집계한 총관객 수 및 매출액(1~10월)에 따르면 해당 기간 영화 상영을 통한 매출액은 4523억3224만원이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매출액인 1조5719억원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해당 기간 관객 수도 5291만여 명으로 지난해(1억8561명)의 30% 정도에 머물렀다.

▲  2020년 월별 상영관 매출액. /사진=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 2020년 월별 상영관 매출액. /사진=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멀티플랙스 프랜차이즈 업계는 관람료를 인상하는 한편 직영점 규모를 줄이는 형태로 자구책을 찾고 있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은 편이다. 넷플릭스로 연쇄 이동이 현실화 될 경우 새로운 생존 전략을 모색할 기로에 놓였다.

프랜차이즈 업계는 국내 영화계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극장을 찾지 않는 관객을 위해 '비대면 영화 개봉' 등 모바일에 맞춘 시스템 변화를 추구하는 등 프랜차이즈 업계의 자구책도 필요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영화 산업 생태계를 함께 발전시켜야 한다는 의견이다.

한 극장 프랜차이즈 업체 관계자는 <블로터>에 "배급, 투자, 상영 등 영화 산업에 종사하는 이해관계자들간의 협력이 필요한 시기"라며 "넷플릭스의 독점적 우위를 바탕으로 관련 생태계를 무시할 경우 (개봉을 한다는 점에서) 당장은 좋겠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국내 영화계가 해당 업체에 의해 좌우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블로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