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의민족이 국내 플랫폼 기업 최초로 플랫폼 종사자와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6개월 ‘줄다리기’ 협상 끝에 맺은 결실이다. ‘사장님’ 신분인 플랫폼 종사자들의 노동조합을 기업이 자발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플랫폼 노동에 미칠 영향력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사는 라이더(배달대행기사)가 부담하던 배차중개수수료 폐지를 비롯해 건강검진비와 휴식지원비 지급 등 라이더 권익을 위한 다양한 방안에 대해 합의했다.

22일 오후 배민라이더스 운영사 우아한청년들과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동조합(이하 조합)은 서울 송파구에서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이같이 밝혔다.

배차중개수수료 철폐부터 ‘명절선물’까지

이번 단체협약은 노사 양측이 6개월간 20여차례나 만나 의견을 좁힌 끝에 ‘무쟁의’로 타결에 이르렀다. 이는 해외에서도 찾기 어려운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협약안에서 우아한청년들은 조합을 배송환경과 더불어 배송조건, 조합원 안전, 라이더 인권보호 등에 관해 교섭하는 ‘노동단체’로 인정했다. 라이더 노조는 사실상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회사가 단체교섭 요구에 응할 법적 의무는 없지만 이를 자발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협약안에는 ▲회사의 지속성장 ▲조합원이 안전하게 일할 권리 ▲복지 강화를 통한 라이더 처우 개선 ▲라이더의 사회적 인식개선 등을 위한 노사 공동노력 등 배달업 전반을 아우르는 내용이 두루 담겼다.

우선 라이더들이 부담하던 배차중개수수료(건당 200~300원)를 면제한다. 회사는 라이더들이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배달료 지급명세서를 앱에 자세하게 기재해야 한다. 기본 배달료는 현행대로 유지된다. 다만 주문금액 10만원당, 음료수(커피 등) 13잔 이상에 대해서는 추가배차한다. 도착지 엘리베이터 고장 시 10층 이상일 경우 라이더의 요청에 따라 추가배차하고 5층당 500원을 추가 지급한다는 문구도 포함했다. ‘강제배차’는 제한하기로 했다. 회사는 일반모드, 인공지능(AI)모드 등 어느 한쪽에 우선해 배차하지 않을 예정이다. 아울러 주당 배송시간은 탄력적으로 운영한다.

복지도 약속했다. 회사는 라이더에게 건강검진 비용과 더불어 피복비를 지원한다. 특히 장기계약한 라이더에겐 휴식지원비, 명절선물 등을 제공한다. 안전장치도 확대할 예정이다. 정기적으로 라이더 안전교육을 의무 시행하는 한편 심각한 악천후에는 회사가 배송업무를 중지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안전배송’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방침이다. 이외에도 카드결제기 도입, 고객센터 개선, ‘감정노동’을 요구하는 업주와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 마련 등 현장의 요구가 다수 반영됐다.

라이더도 하나의 직업…첫 발 뗀 것”…라이더유니온은 ‘반발’

협약식에서 양측 대표는 이번 협약이 플랫폼 산업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기대했다. 이선규 민주노총 서비스일반노조위원장은 “이번 협약은 라이더가 사회적으로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받기 위한 조항들을 노사가 합의했다는데 의의가 있다”며 “앞으로도 라이더 안전 확보와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우아한청년들 김병우 대표는 “업계 선도 기업으로 책임감을 갖고 임한 이번 단체협상이 국내 플랫폼 업계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마중물이 되길 기대한다”며 “앞으로도 라이더 분들이 배달 산업의 동반자라는 인식을 갖고 세심하게 챙기겠다”고 말했다.

앞서 조합 산하 배민라이더스지회는 지난 2월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통해 교섭 대표노조로 확정됐다. 우아한청년들은 개인사업자 신분인 라이더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응할 법적 의무는 없으나 플랫폼 노동이 국내에 양질의 일자리로 뿌리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차원에서 성실하게 교섭에 참여해왔다고 밝혔다.

우아한청년들의 모회사인 우아한형제들도 플랫폼 노동에 관한 사회적 대화에 참여해 왔다. 우아한형제들과 고용노동부 등 정부 부처, 노동계, 학계 전문가들이 두루 참여한 ‘플랫폼 노동 대안 마련을 위한 사회적 대화 포럼’은 최근 플랫폼 종사자의 안정적 업무 환경을 위한 사회적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정부와 민간이 머리를 맞대고 플랫폼 노동을 제도화한 이 협약 역시, 해외에서 유사사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이날 복수노조인 라이더유니온은 협약에 반발하며 재교섭을 요구하고 나섰다. 교섭과정에서 라이더유니온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다. 라이더유니온은 ▲재교섭 시 공동 교섭위원 구성 ▲배달료 실거리 책정 ▲배달완료시간 연장 ▲배차지연 평가 기준 공개 ▲기본배달료 인상 등을 요구했다. 라이더유니온측은 “현장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협약이 첫 협약으로서 과연 의미가 있을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재교섭을 추진하지 않을 시 협약의 문제점을 공개 지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조합은 즉각 “단 한 번도 사전논의가 없다가 이제야 공동교섭단을 요구하는 것은 황당한 주장”이라며 “라이더유니온은 잠정합의안의 부결을 선언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재교섭 요구는 과도한 ‘억지’라는 비판이다.

조합은 단체협약이 갖는 의미를 강조했다. 조합측은 “라이더가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잡기 위한 첫발을 뗀 것”이라며 “더 많은 라이더가 노조를 통해 노동조건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집단적 협상력을 가지고 안정적인 직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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