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세계 최대 온라인 결제 기업인 페이팔(Paypal)이 가상자산(암호화폐) 결제 지원 방침을 밝혔다. 3억명 이상의 사용자를 보유한 페이팔의 이번 발표는 추후 가상자산 대중화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며, 이 같은 결정을 내린 배경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가상자산은 일종의 화폐로도 쓰이는 만큼, 대중화를 위해선 충분한 사용처를 갖춰야 한다. 또 생태계를 조성할 조력자들과 접근성 높은 플랫폼도 필요하다. 비트코인 이후 등장한 수천 개의 코인이 대부분 실패한 이유도 이런 기초적인 인프라조차 마련하지 못한 탓이 크다.

‘리브라’ 시작은 창대했으나…

2019년 페이스북이 주도한 리브라(Libra) 프로젝트가 큰 반향을 일으킨 배경에는 ‘리브라라면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두려움이 깔려 있었다. 리브라 프로젝트는 당초 25억명의 사용자를 보유한 페이스북과 함께 페이팔, 마스터, 비자, 이베이 등 전세계 전자상거래 영역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들이 파트너사로 참여해 출범한 거대 프로젝트였다.

▲  리브라 출범 당시 파트너십, 현재 일부 기업은 탈퇴한 상태다
▲ 리브라 출범 당시 파트너십, 현재 일부 기업은 탈퇴한 상태다

하지만 리브라가 전세계 통합 가상자산으로 달러나 유로 등 법정화폐의 지위를 위협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자, 곧장 리브라를 도태시키려는 각국 정부의 규제가 뒤따르기 시작했다.

주요 7개국(G7)은 금융당국자들은 지난 12일까지도 “글로벌 스테이블 코인들이 세계 금융 시스템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며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구체적인 규제가 마련되기 전까지 서비스를 시작하면 안 된다”는 내용의 성명서 초안을 작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스테이블 코인은 개당 가치가 미국 1달러에 연동된 가상자산으로, 리브라도 스테이블 코인에 해당되며 이 성명 역시 리브라를 겨냥했다는 것이 업계의 판단이다. 리브라에 대한 정부의 압박이 예상보다 거세자 이에 부담을 느낀 주요 협력사들은 작년 말 리브라 연합 탈퇴를 선언했다. 페이팔도 그중 하나다.

작년 11월 댄 슐먼(Dan Schulman) 페이팔 CEO는 포천과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압박으로 탈퇴한 것이 아니다”라며 외압에 의한 탈퇴 의혹을 일축했다. 반면, 올해 3월 페이팔의 CTO인 스리 시바난다(Sri Shivananda)는 한 행사에서 페이팔의 리브라 탈퇴 이유 중 정부의 규제 문제도 주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고 밝혔다. 크든 작든, 규제에 따른 영향과 부담이 아예 없지는 않았던 셈이다.

페이팔 독립 선언…비트코인부터

이에 페이팔은 글로벌 통합 스테이블 코인으로서 정부의 심기를 건드리는 리브라보다 비트코인 등 이미 널리 쓰이는 가상자산 지원 사업에 초점을 맞추려는 것으로 보인다.

▲  사진=픽사베이
▲ 사진=픽사베이

이번에 페이팔이 지원을 발표한 가상자산은 비트코인, 이더리움, 비트코인 캐시, 라이트 코인으로 모두 시가총액 최상단을 차지하고 있다. 이 중 리브라와 같은 스테이블 코인은 없으며 시장에 출시된 초기 자산으로서 상대적으로 가치 및 유통 안정성이 높은 코인들이기도 하다. 또 이미 비트코인·이더리움 결제를 지원하는 유통 채널도 적지 않으므로 페이팔 입장에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결제 지원은 추후 가상자산 사업 확대를 위한 발판으로 삼기에 부담이 적다.

페이팔의 결제 사업자로서의 역량 강화, 시장 확대를 위한 포석이란 분석도 있다. 가상자산 공시 포털을 운영하는 쟁글은 마켓 분석을 통해 ‘페이팔이 가상자산 시장에 안착하면 비자·마스터 카드에 의존하지 않는 자체 결제 시스템 구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개발 도상국에 대한 금융 시장 선점 효과, 가상자산 지갑을 활용한 금융상품 서비스 제공 등 핀테크 비즈니스로의 확장도 용이하다는 판단이다.

2600만 페이팔 가맹점 비트코인 결제 지원, 파급력 주목돼

한편, 페이팔의 가상자산 비즈니스 진출은 지난 3월 예고됐다. 당시 페이팔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보낸 서한에서 ‘페이팔은 핀테크 기업으로서 가상자산 업계의 성장을 주시해왔으며, 관련 역량을 키우기 위해 가시적인 조치들을 취해왔다’고 밝혔다. 6월에는 주요 외신들이 페이팔이 가상자산 지갑을 내장한 간편송금 자회사 ‘벤모’와 함께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란 보도가 나왔다.

페이팔은 수주 내에 모든 고객이 페이팔 지갑과 연동해 가상자산을 거래하고 보관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내년 상반기 중에는 해외까지 서비스를 확대할 예정이다. 나아가 2600만개에 달하는 페이팔 가맹점에서 비트코인 결제를 지원할 시, 파급력은 상당할 전망이다. 페이팔의 가상자산 지원 발표 소식이 전해진 뒤, 비트코인 가격은 하루 만에 10% 급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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